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형균 May 14. 2023

단순해지려면 복잡을 거쳐야

심플의 미학

심플(simple)해지려면 반드시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미학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건 단순하다. 잘 쓴 글은 간결한 문장이다. 잘하는 말은 핵심만 간결하게 하는 말이다. 학생들이 발표 후 학생들이나 내 질문에 대답할 때 스마트한 학생일수록 답변이 간결하다. 그러나 핵심 keyword는 포함하고 있다. 질문은 한 문장인데 답변은 10분을 넘는 경우도 있다. 변죽을 울리지만 정작 핵심에는 접근하지 못한다. 내  질문뿐만 아니라 자신이 발표한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유명한 철학자가 그런 말을 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걸 한 마디로 말하지 못한다면 그건 잘 모르고 있는 거라고.

'심플해지려면 반드시 복잡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건 집안 정리를 하면서 느낀 점이다. 정리정돈이 잘 되기 위해서는 이사 후 박스 안에 잡동사니로 뒤엉켜 있던 물건들을 꺼내야 한다. 정리 과정에서 집안은 난장판이 된다. 이사 직후 집에 와 봤던 친구가 하는 말이 "그때는 집이 깔끔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어지럽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본다. 난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땐 겉보기만 깔끔했지 실상은 지금보다 더 복잡했어. 지금 밖으로 나간 박스와 버린 물건이 얼마나 많은데?" 친구는 분명 그때가 더 깔끔해 보였는데 지금이 그때보다 더 나은 상태라는 내 말을 언뜻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얼마나 많은 필요 없거나 있으면 안 될 것들이 많이 버려졌는지. 그 과정에서 진짜 필요한 물건들을 많이 찾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쇼핑을 할 때 카드결제 금액이 반 어떤 경우는 반의반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사고 싶은 충동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고, 살까 말까 싶을 땐 일단 사지 않는다. 그러다 생활하면서 꼭 필요한 물건이다 싶으면 그때 산다. 세일한다고 사지 않고 1+1이라고 사지 않는다. 꼭 필요한 물건은 세일을 하지 않아도, 비싸도 최고로 좋은 걸로 산다. 그게 오히려 돈을 아끼게 된다. 내구성도 좋아 오래 쓰게 되고, 더 좋은 걸 원해서 비슷한 걸 또 구매하는 일도 없게 된다. 그리고 내가 애용하게 된다. 물건도 일단 내가 구매하면 책임이 있다. 아끼고 사랑하고 활용해줘야 한다. 그래서 구매할 때부터 애정이 가는 물건을 사는 것이 좋다. 물건도 사랑을 주지 않으면 불행하고, 그 불행은 그 물건을 지니고 있는 내게도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생물체에만 에너지가 있는 게 아니라 무생물에도 존재한다. 내가 사는 공간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채우려면 그 공간의 사람이든 물건이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너무 많은 대상은 내가 감당하기 곤란하므로 단순함이 요구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복잡한 과정을 거칠 것 없이 처음부터 심플한 게 좋은 게 아니냐고. 내 생각은 그렇다. 복잡함을 거쳐서 심플해진 것과 처음부터 심플한 건 보기엔 똑같이 보여도 내재한 가치는 다르다. 오래전 중국의 선사가 말했다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山是山 水是水)'가 떠오른다. 이후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가 되었다가 이후 다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가 된다. 그러나 그 산은 과거의 그 산이 아니고, 그 물은 과거의 그 물이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이 글을 적는 과정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발표가 길고 답변도 긴 학생도 어쩌면 단순해지기 전의 복잡한 단계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다만 그 복잡함이 가진 방향(vector)이 중요하다. 질서정연해 지기 위한 일시적인 무질서라야 한다. 그 방향을 결정하는 건 본인의 개선하려는 의지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단순한 것보다는 복잡함을 거친 후 단순해지는 것이 훨씬 낫다.


나도 이렇게 주절주절 긴 글을 적는 건 글쓰기에서 복잡의 과정을 겪고 있다고 본다. 그러고 보니 집안정리를 하면서부터 글의 빈도와 길이가 늘었다. 이제 집안정리의 막바지 단계로 들어서니 이제 내 글도 간결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수준이 되면 더 이상 말을 할 필요도 없는 경지에 이를지 모른다. 이렇게 글을 적는 것도 집 정리정돈을 하면서 집안만큼이나 복잡해진 내 머릿속의 생각들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단순함. 그것이 가야 할 길이다.

작가의 이전글 좋고 나쁨은 내가 만드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