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이 '스승의 날'이었다.
오늘 아버지 방의 레이아웃을 바꾸고 정리정돈 후 청소를 하다가 '스승의 은혜'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부분이 떠올랐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버이는 몸과 마음과 인생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이. 부모는 내게 말을 가르쳐주셨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면 안 되는지 가르쳐주셨다.
나는 말뿐만 아니라 글자도 어머니한테서 배웠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한글도 안 배우고 입학을 해서 등교 첫날 친구들은 한글을 아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몰라서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한옥 마루에 상을 펴고 같이 앉아서 어머니께서 한 글자 한 글자 쓰시면서 가르쳐주셨다. 내가 으 모음을 짧게 쓰니 옆으로 더 길게 쓰라고 직접 연필로 써서 보여주시던 기억이 선명하다. 하루 만에 어머니한테서 한글을 배웠다. 이후로도 어머니께서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의 패널과 다름없으셨다. 학교에 다녀오면 그날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리고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쭈어 보았다. 어머니는 내 가장 친한 친구시자 상담자이자 스승이셨다. 어머니께서는 경북여고를 졸업하시고 이화여대 약학과를 졸업하신 약사지만, 남편과 자녀들 뒷바라지를 위해 파트타임(거의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출근하시는)으로만 잠깐 일하시고 전업주부 역할을 하셨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외할아버지처럼 교수가 되고 싶으셨지만 아버지께서 의학박사 과정 중이라 경제적 이유로 포기하셨다. 사실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공부에 더 적성이 맞고 재능이 있었다. 나는 어느 정도 크고 나서 두고두고 그 결정은 잘못된 결정이라 말씀드렸다. 진정한 사랑은 희생이 아니라면서. 하지만 당신의 뜻과 성품이 그러하였으니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지 2학년 때 처음 과외라는 걸 했다. 일대일은 아니고 그룹과외였는데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과외를 받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다. 어머니께서도 학부형 모임에서 다들 과외를 받고 있다고 다른 학부형이 권해서 나도 과외란 걸 받게 되었다. 두어 번 가봤는데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 과외를 가다가 동네 친구를 만나 놀다가 그만 과외를 못 가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집에 들어왔는데 어머니께 죄송해서 솔직하게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이미 아시고 계셨다. 과외 선생님한테서 전화연락을 받으셨던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내게 부드럽게 물어보셨다. 어머니께서는 여자지만 무척 젠틀하셨다. 어린 시절부터 '젊잖다."라는 말을 많이 들으셨다고 한다. "형균아, 과외 가기가 싫니?" 난 솔직하게 싫다고 말씀드렸고 사실 지난번에도 과외를 가지 않았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서는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이제부턴 하기 싫은 건 솔직히 말하면 돼."라고 말씀하시고 즉시 과외 선생님한테 전화를 걸어서 그만둔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후로 과외를 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어머니께서 방송에 출연하실 일이 생겼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대구의 공영 TV방송에서 시사토론 프로그램이 있었다. 과외를 하는 것이 좋냐 안 하는 것이 좋냐는 토론 방송이었다. 거기에는 교사와 교수 등 교육전문가 외에도, 과외를 하는 학생의 부모와 하지 않는 학생의 부모가 한 분씩 토론자로 참석하게 되어 있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국립이다 보니 방송출연 섭외가 왔었나 보다. 교장 선생님께서 내 어머니께 방송 출연을 제의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처음엔 고사하셨다. 그런데 학업 성적이 전 과목 수를 받은 학생들 중에 과외를 받지 않는 학생이 전교에서 내가 유일하다고 해서 출연하시게 되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 담임 선생님께서 전 과목 수를 받은 사람 손 들라고 하니 몇 명이 손을 들었고 과외받는 사람은 손을 내리라고 하니 나 혼자 남았었다. 어머니께선 내 덕분에 방송출연을 하셨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셨고, 나는 웃으면서 과외하기 싫다고 할 때 쿨하게 하지 말라고 하신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서는 평생 단 한 번도 자녀들한테 공부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시험 전날 밤늦게까지 안 자고 공부하고 있으면 부모님이 교대로 내 방에 오셔서 자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내 친구 누나 하나(내 누나 친구이기도 하고 공부를 잘 하진 못했지만 착하고 예뻤고 후에 판사인지 검사와 결혼해서 잘 살았다.)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잠이 많아서 시험 전날 초저녁부터 책상에 엎드려 자니 그 부모님이 길게 땋은 머리카락을 천장에 매달아 놓으셨다고 한다. 실화이다. 그 친구 부모님은 우리 부모님도 잘 아시는 분들이다. 난 그 얘기를 하면서 다른 부모님들은 자지 말고 공부하라고 하는데 왜 자꾸 자라고 하시냐고 진지하게 여쭤보았다. "몸 상할까 봐 그러지." 그게 부모님의 대답이었다. 부모님 걱정하실까 봐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공부하곤 했었다. 그때가 그립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유일하게 하라고 잔소리하신 게 있다. 바로 결혼하라는 말씀이었다. 그 소원을 풀어드리지도 못하고 어머니께서는 다른 세상으로 떠나셨다. 어머니께서는 평소 건강하셨기에 갑자기 그렇게 떠나실 줄 몰랐다. 그럴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어머니 때문에라도 결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께서는 "넌 결혼만 하면 성공하는 거다."라고 말씀하셨고 나의 성공의 기준은 달랐다. 그런 얘기를 하면 어머니께서는 "평범한 게 행복한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아버지께 잘하려고 노력하는 건 어머니를 갑자기 잃고 후회를 해봤기 때문이다. 다행인진 모르겠지만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와는 달리 결혼하라는 말씀을 안 하신다. 아버지께서는 성격상 이래라저래라 말씀을 안 하신다. 내가 의대생 때 정신과와 피부과 전공을 희망할 때 반대하신 것 외에는 간섭을 안 하신다. 그 부분이 내게 미친 영향이 크긴 하지만. 아버지께선 자식들한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해보신 적이 없는데 유일하게 내가 하고 싶어 하던 전공을 못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부모의 반대가 있어도 최종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고 결국은 자신의 책임이다. 내가 간절히 하고 싶었으면 가출을 해서라도 했을 것이다. 아버지와의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다. 사랑은 잃은 후에야 알지만 잃기 전에 알 수 있으면 현명하다. 잃기 전에 잘할 수 있으면 잘 사는 것이다. 잘 살고 싶다. 부모나 연인과의 사랑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나와의 사랑이다. 잃기 전에 알고 잘하자.
밤하늘의 별을 보니 어머니가 더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