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겪는 고통이나 불행은 과거 잘못 보낸 시간의 결과이다. 고통이나 불행은 하나의 signal이고 sign이다. 잘못해 오던 것을 멈추라는 신호이다. 변화의 신호이다. 고통이나 불행이 변하면 쾌락과 행복이 된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해야 할 때 변한다. 시기가 있다. 그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변할 수 있는 힘은 과거 잘 보낸 시간에 의해 축적되어 있다. 잘못 보내기만 한 시간도, 잘 보내기만 한 시간도 없다. 세상 모든 건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혼재되어 있고, 같은 것도 보는 관점에 따라 그 성질이 달라진다. 중요한 건 그걸 내가 어떻게 보느냐이고, 더 중요한 건 일단 내가 그걸 보는 것이다. 나를 지켜보자. 명상을 하자.
명상을 하면서 내 마음의 독버섯과 잡초를 뽑고, 꽃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풀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자. 내 마음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면 내 심신이 아름다워지고 아름다운 생을 살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상황은 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 위기는 기회를 만날 기회이다. 위기를 단순한 불운으로만 보면 불운을 맞이하지만, 위기 뒤에 숨은 기회를 볼 수 있다면 평소 쉽게 보지 못하던 기회를 만날 수 있다. 그 기회와 단순히 만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 것이 되게 하려면 내가 먼저 인사하고 손 내밀고 다가가야 한다. 운명의 여신은 용기 있는 자를 좋아한다. 용기와 더불어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지금의 고통과 불행조차도 품고 사랑할 때, 그 이면의 쾌락과 행운도 품을 수 있다. 그 둘은 본래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통과 불행이라는 보자기에 싸인 쾌락과 행복은 신의 선물이다. 포장지만 보고 선물을 거절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신은 중요한 선물을 줄 때는 아무나 쉽게 알아볼 수 없게 포장을 해서 준다. 고통과 불행을 대하는 태도를 본다. 불평하는 자에겐 더 불평할 거리를 준다. 반면 겸허하게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을 고치려는 자가 그렇게 해준 신에게 감사하면 더 감사할 거리를 만들어 준다. 일종의 시험이다. 그 시험에 통과하면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 불평은 오답이고 감사는 정답임을 명심하고 시험에 임하자. 외워서 답을 적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답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학여등산(學如登山). 배움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했다. 오늘도 나는 산을 오른다. 산을 오르는 이유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