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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의 빛글 Aug 12. 2021

과대자기&이상화자기,중독&좋은자기대상

건강한 자기애_건강한 자기대상_ 이대로도 괜찮아!


'자기애'가 자만이나 병적인 상태가 아닌 상태로 적절하게 유지된다면, 자존감과 자긍심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자기애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건강한 자기애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대상관계이론가인 하인즈코헛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건강한 자기애를 갖기 위해서 좋은 자기대상이 필요한데, 어떤 자기대상을 가지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자칫 중독에 빠질 수 있다.


는 과거에 힘든 일을 겪고 칩거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내가 괜찮다는 생각을 못하고 사는구나!'

자기애가 없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너 괜찮아. 참 괜찮아. 이대로도 충분해. 너니까 이렇게 견디고 있는거야. 괜찮아. 잘했어..'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곤, 심적으로 에너지 소진된 상태를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이 조금씩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나에게 해주고 싶다고 해서 즉시 나오진 않았다. 왜냐면, 상처가 불거졌기 때문에 한동안 애를 먹었었다.

그렇다치고,




자기애는 프로이트가 만든 단어다.


프로이트는 일차적 자기애와 이차적 자기애로 구분했다. 일차적 자기애는 유아기의 자기중심성이며, 인생의 필수과정이라고 했다. 반면, 성인이 된 후에 자기중심성이 강화되는 것을 병리적으로 보았고 이차적 자기애로 구분했다. 이차적 자기애는 외부대상에 대한 사랑을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에 반해,

대상관계이론가인 코헛은 일차적 자기애 뿐 아니라, 이차적 자기애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았다. 단지, 건강한 자기애와 건강하지 않는 자기애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라고 했다. 건강하지 않은 자기애는 자기애적 나르시즘이다. 자기애는 평생토록 가지고 살아야 할 심리적 동반자로 보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코헛의 이론은 당시에 굉장히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코헛이 내담자들을 만나보니,

'나'의 의미가 없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타주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담자들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타인들에게 봉사하죠?' 라고 했다.


즉,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터닝포인트가 필요한데,

'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라는 발견이다.

그걸 발견하고 나서야 비로서 남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나'가 없는 사람에게 '헌신해라' '봉사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희생과 봉사라는 것은 전체주의 시대에는 가능했지만,

개인주의가 팽배한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불가능한 얘기가 되어 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상담이론도 변화되니,

지금은 코헛의 이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



과거의 많은 사람들은 부모님이 원하는 것, 가족들이 원하는 것이 자기가 원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요구할 수 없었고, 부모와 주변 눈치만 살폈었다.


하지만, 요즘 젊은층들은

'부모님이 반대해도 내가 가야할 길 가겠습니다.'라고 한다.

우리 딸만 봐도 그렇다. 자기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문화학자나 철학자들도 과거에는 동일하게 찍어낸 제품이 유행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지금은 자기만의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시대다.


나의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상처를 받는다.

        





나는 건강한 자기애를 갖고 있는가? 건강하지 않는 자기애를 갖고 있는가?


자기애는 이상화 자기와 과대자기 두 축으로 되어 있다.

이상화 자기와 과대자기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야 건강한 자기애가 형성되는데,


이상화 자기로 치우치면, 다른 사람만 대단하게 보고,

과대자기로 치우치면, 자기를 우상화 시키게 된다.


이상화 자기는 현실에 힘있는 사람 만나면 엄청 잘하게 되지만, 건강하지 않은 이상화자기는 건강하지 않는 목회자를 찾고 그런 목회자의 수족이 된다.

과대자기가 너무 빈약하면, 강한 사람을 찾게 된다. 그렇게 후광효과를 누리려고 한다.

이를 인식하고 적절히 조절하면 건강한 것이다.








코헛은

이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비현실적인 인물이나 사상에 몰두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상화 전이의 문제라고 했다.

과대자기는 어른과 비교하게 되니까 '나는 슈퍼맨이다'하거나, 자신이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것인데, 자기를 최고로 여겨주지 않으면 좌절감을 느끼고 지나치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청소년의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는 과대자기가 꺽여서 그렇다. 과대자기는 무의식적인 것이다. 학업경쟁이 심한 청소년들이 겪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이전에 부모로부터 인정받고. 초등학교 다니면서 스스로 차츰 좌절을 알게 되면서 괜찮아질 수 있다.



누가 잘난 것 같으면 나는 못난 것 같다. 건강하지 않는 자기애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사람만 없애면, 자기가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그런 행동을 취한다.


나도 몇년 전에 그런 일을 겪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여러차례 사건을 겪다보니, 트라우마가 되었었다.

우울감이 찾아왔고, 사람이 싫어졌다.


동료강사였는데, 기업강의, 산업강의를 처음해보는 여자강사였다.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이름을 말하면 알만한 명강사와 동거하는 여자였고, 그들은 유부녀 유부남이었다. 그거야 그들의 사생활이니, 나랑 관계 없다. 그런데, 그들은 처음에 얼마나 선한 얼굴을 하고 나를 찾아왔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노후에 옆집에 같이 살자고까지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이유도 모르고, 영문도 모른채 그들에게서 왕따를 당했다. 그들과 함께 했던 모임에서 나는 격리되었다. 한입으로 두말 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병리적 자기애인 사람은 병리적 자기애끼리 만난다.

그여자는 과대자기의 좌절로 인해, 이상화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과도한 이상화로 그 남자에게 빠져 있었고, 그 남자가 자기 인생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자신을 과대자기로 만들어주지 못하면,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사이였다. 남이 아프고 힘든 것에 공감하는 척 하지만, 진정한 공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왜냐면, 상대를 밟아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고, 자신이 가장 공감받아야 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타인을 공감할 수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비교되는 세상을 살아간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무한경쟁시대가 되다보니, 더더욱 그렇다. 각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전문가들이 나오고 권위자들이 나온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올라오는 영상들을 보다 보면, 과대자기가 빈약해진다. 그리고, 무한 비교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다보면, 자기비하, 좌절에 빠져 든다. 건강한 자기애가 어렵다.

이런 시대이다보니, 과도한 자기애로 가장하거나, 자기비난과 자기비하로 자기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극과 극에 존재한다.

종교계의 자기애적 성격장애인 사람들은 과대망상 교주. 이단. 내 말이 최대권위인 목회자. 내가 대단하고 남보다 우월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건강한 자기는 이상화하지만, 극단으로 가지 않는다.

사람을 보면, 장점도 있고, 약점도 있구나~ 하고 인정하게 된다.


이상화자기와 과대자기를 충족시켜주려면, 자기대상이 필요하다. 건강한 자기 대상이 필요하다.



기도한다거나,  때로는 같이 아파하고 바른 조언 해줄 수 있는 친구 등 훌륭한 자기대상이 평생 필요하다.

건강한 자기대상을 갖는 습관이 필요하다. 좋은 문학책이 자기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병리적이지 않으면, 자기대상의 도움 통해서 자기를 건강하게 유지 할 수 있다.



건강한 자기대상은 관계에서 찾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 안에서 자기대상 찾지 못하게 되면서

사물하고 자기대상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중독이 된다.

담배, 술, 본드 중독, 등.

또는 힘이 없는 애들을 때리고, 힘을 행사함으로써 폭력을 자기대상으로 삼거나, 권력을 자기대상으로 삼게 되는 경우가 건강하지 못한 자기대상이다.


나는 어떤 자기 대상을 가지고 있는가?


코헛은 산에도 갈 수 있고 취미생활도 좋지만, 인격적인 대상과 인터렉션하는 게 더 좋다고 했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

크리스찬은 하나님과 관계하고, 기도를 통해서 은혜받는다.

그렇게 좋은 관계로서의 자기대상이 생기면,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내가 괜찮다 내가 가치가 있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 이렇게 해낼 수 있는 것은~~~나니까 가능한거야..'


하는.. 자기격려와 자기위로를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크리스찬이라면, 주님의 은혜고, 주님이 그렇게 해주셔서 가능한 것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자녀이기 때문에 가능하며, 그런 힘든 것 또한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라고 한다.)


때때로, 힘든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보는 것도 필요하다.

까페에 가서 차를 마신다거나, 자기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거나, 백화점 아이쇼핑을 한다거나, 마트에 시식코너를 가본다거나(코로나로 시식코너가 사라져서 안타깝다)... 등등..

과대자기가 없거나 너무 빈약하다면... 약간 포장된 행동으로 채워줄 필요도 있다.

..


건강한 자기는 고독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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