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대로 된다? 천만에.... 느낌대로 되는거야!!

감정이 더 중요하다!

by 코치 루아

삶은 아이를 낳는 진통보다 더 심할 때가 있다.

72시간의 진통 끝에 큰 아이를 낳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냥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자궁입구에 큰 아이의 머리가 끼어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더 이상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제발 나를 죽여달라고, 그냥 이대로 죽겠다고 의사에게 간청했다.


쫌만 더 힘을 줘보라는데, 이미 젖먹은 힘까지 다 쏟아내서 어떻게 힘을 줘야하는 건지도 잊었다. 아이의 머리가 1/3정도 끼인 상태로 몇 시간이고 있을 수 있지만, 아이가 견딜 수 없을 거라는 의사의 말에 조금의 여지도 없이 의사가 하자는대로 했다.

자연분만 하려고 애쓴 흔적은 온데 간데 없다. 속상하다. 외계인도 아이고 아이의 머리는 삐쭉.....


인생이란 것도 그렇다.

있는 힘을 다해서 용케 살아가 보지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것 같다.

누군가가 손을 뻗어 내 팔을 잡아줬으면 좋겠는데, 말할 힘도 없다. 내 안에 버틸 힘이 없다. 손을 뻗을 만한 곳도 손을 뻗어 줄 누구도 없을 땐, 정말 죽고 싶은 마음 뿐이다.

흡입기라도 사용해 보자는 의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그 때만 견디면 어찌 살아가질텐데 말이지. 견뎌 낼 수 있는 힘을 조금만이라도 보태주면 더 좋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있을텐데.


아이러니하게 삶의 기적이란,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찾아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적인 순간을 맞이하더라도 길게 가져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희망을 찾으려고 애쓴다. 절망의 늪에 허우적댈지라도 순간 순간 희망을 찾는다. 그런 기적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나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볼 수 있다면...

만약, 감정을 보는 연습을 많이 한다면 탄력은 더더욱 세게 튀어오를 것이다.



감정을 외면하는 사람은 그 감정이 쓸데 없고 지금 하는 일에 방해받는다고 생각한다. 마이너스 감정을 보는 연습이 안되어 있다면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외면해버리면 언젠가는 더 큰 낭패를 볼 것이다. 원하는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향해 가는데, 상대방의 감정이 도움되지 않기 때문에 방해자로 여겨진다면 그 사람은 감정을 외면하는 것이다.


과거의 감정 경험을 충분히 꺼내 보고 그것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인지를 하고,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도 에너지를 많이 소진시키지 않고, 충분히 감정을 다독이며 더한 탁월성으로 살아갈 수 있다. 감정을 외면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을 수용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존중할 수 있다.


배우가 진정한 연기를 하기 위해 역할을 맡게 되면 극 속의 인물이 되려고 무진 연습한다. 극 중 캐릭터가 평소의 배우의 내면과 성격이 일치하면 극 중 인물을 더 잘 소화해 낼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도 진짜 자신처럼 연기하기 위해 평생을 연습하는 것이 아닐까?


감정이란 것은 아주 어릴 때 저축되어진 것이다. 과거의 나의 감정은 내가 원해서 쌓아진 것이 아니다. 어릴 적 원치 않은 감정의 자극은 의식하지 못한 채로 깊숙이 숨어 있다가 원치 않을 때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내가 스스로 만든 감정이 아닌데, 그 과거의 감정에 놀아난다.

과거의 감정이 다른 사람에 의해 쓰여졌다면 이제 그것을 탐색하고 내가 원하는 감정으로 다시 써가야 한다. 그게 진짜 내 감정이다. 내가 주도하고 내가 다스릴 수 있는 감정의 지도를 그려야 한다.


우리는 생각으로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다. 인간은 본능이 이성보다 더 빠르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본능은 이성보다 0.195초 빠르다. 특히 위기의 순간에는 더더욱 그렇다. 위협을 당한다고 느끼거나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다면 신체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본능이 먼저 움직이다. 감정은 본능에 해당된다. 부정적인 상황에서 본능의 감정을 이해해야만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감정을 거부하지 않고 진짜 탁월성을 가질 수가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내 감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는 아이가 원치 않는 감정을 아이들의 뇌지도에 내 멋대로 새기지 않게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넘어진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내 안의 죄책감을 갖지 않기 위해 '괜찮아. 싱글맘인데, 혼자서 다 해야햐는데, 양육비 줄 사람도 없고, 혼자서 다 해야하는데, 나도 지치잖아' 하면서 합리화 한다. 그런 마음을 어루 만지며, 조금이라도 포근한 마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따뜻한 감정 뿐이다. 최소한 양가감정에서 벗어나 좀 더 바람직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감정을 다시 써나간다.


감정에 대한 글은 나를 위한 것이고, 감정을 공부하고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한 줄 한줄이 읽는이의 마음에 진심으로 와닿고 누군가는 치유가 되기 바라는 마음이다.





힐톡쑈1회 (1).jpg




동서양심리전문가. 힐러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유란 내 감정을 보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