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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의 빛글 Mar 30. 2016

아버지가 준 무서운 유전

아빠의 책임

진화심리학에서 이혼한 가정의 딸은 사춘기를 일찍 겪는다고 밝힌다. 

아버지 없이 자란 딸은 '남자란 여자와의 관계를 영원히 해나가지도 자식에게 투자하지도 않는다'고 깨닫는단다. 어느 정도 일리있는 말이다. 남자가 한 여자에게 헌신하거나 책임지지 않는 유전자를 물려주게 되니, 아이는 부모의 무책임함을 눈치채고, 훨씬 더 성에 문란한 번식전략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자녀가 5세 이하에 이혼한 경우라면 특히 더 그렇다.


나도 유전적이거나 환경적으로 문란함을 배우게 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이혼한 가정의 자녀는 이혼을 경험할 확률도 높다. 보고 자란 환경도 있겠지만, 그런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거다. 

대조적으로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딸은, '남자는 여자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고 하고 자식에게도 적극 투자한다'는 것을 배운다.

유전이든 환경이든 모두 인간에게 영향을 주니까 그런 근거는 받아들여진다. 


이성과의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실패를 하다보니 아버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아빠를 집에서 볼 수 있는 날은 극히 드물었다. 부모님께서 이혼하진 않으셨지만, 우리 집은 아빠의 부재상태가 오래 지속됐다. 이혼보다 더한 충격이었을지 모르겠다. 아빠의 부재와 무책임함.

특히 외할머니댁에 더부살이 했던 4학년 때부터 아빠 얼굴을 보기는 더더욱 힘들어졌다. 

한달에 한 두번? 1년에 몇 번 밖에 보지 못했다. 

엄마는 어떻게 견디고 사셨을까? 엄마는 아빠의 무책임함과 권위적이면서 방종하는 모습에서 아빠에게 실망했다. 그것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 되었다.

난 그런 생활 속에서 '정말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거 아니라면 결혼은 절대 안해야지.' 다짐했다. 결혼한다면 이왕 한다면 정말 잘 살고 싶었다. 





결국 나는 결혼을 선택했다. 하지만, 건강한 가족 생활을 유지하지 못했다. 결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늦게 시작한 결혼생활은 10년만에 파경을 맞았다. 그것은 첫번째 이혼에 불과하다.

진화심리학에서 여자는 남자의 능력을 원한다고 하는데, 나는 능력과 미래가치를 따지지 않았다. 무의식에서 익숙한 사람을 원한다고 하니 아마 무책임한 아빠와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변화되는 삶을 보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내 결혼 생활을 어릴 적 생활의 재현으로 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와서 드는 생각이다. 애들 아빠는 가정적이었다. 하지만, 비전과 목표가 없었다. 결국 궁핍한 환경에서 아이들 케어는 힘들어졌다. 애들 아빠는 미래를 위한 대비는 커녕 현재를 버텨나가기도 힘들어했다. 내가 선택한 남자.  결국 난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해 줄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을 선택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 남자의 그림자에도 내 아버지의 모습이 있었던건지 모르겠다. 


이혼이라는 상처를 치유하고 나는 정말 사랑해도 될 사람을 만났다. 도전과 목표가 있는 남자였지만,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능력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뜬구름 잡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의 과거의 결혼 생활에 대한 얘기를 종합한 결과 책임감도 있어 보였다. 그가 이혼한 이유는 사업에 실패해서 별거할 수 밖에 없었고 그 기간이 길어지다보니 이혼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 사람은 믿어도 되겠구나. 2년 반 이라는 기간 동안 '만나고 동거하고 결혼'까지 이르러 함께 사는 추억을 만들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이혼을 요구해왔다. 구속당하는 결혼제도가 답답하고 싫다고 말했다. 특히 자기 아이들을 케어하지 못한 죄책감이 우리 아이들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가정은 그에게는 가정이 아니었다. 책임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고 우리는 그에게 짐이 되었다. 아무런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았을 때와 경제적인 부담을 요청했을 때 그의 태도는 달라졌다. 결국 나는 또 한번의 파경을 맞았다. 


땅은 꺼지고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슬픔은 끊이질 않았고, 원망까지 일었다. 다시 마음을 회복하고 그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혼을 받아들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나의 내면 아주 깊숙한 곳에 '아버지'라는 존재를 다시 보게 되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나를 사랑하셨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없었던 아버지. 서울로 이사와서는 많이 달라지긴 하셨지만 내 나이26세 때 하늘의 부름받고 가셨다.

그런 아버지와 같은 비슷한 에너지를 주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는 내가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꿈꾼다고 더더욱 뛰쳐나가고 싶어했다. 책임감 있는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에게 책임을 요구하며 변화되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싶은 내면의 내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를 마음에서 놓지 못했던 이유가 아빠처럼 책임감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픔을 겪으면서 알아냈다. 당신이 일에 몰두하고 일을 펼쳐나가는 것처럼 가족이라는 것을 세웠으면 우리한테도 책임을 다해주세요!!라고 말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다. 난 그것을 간과했고, 이해하고 살려고 해도 그가 거부했기 때문에 더이상 우리의 관계는 유지될 수 없었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 또한 나의 추측이고 분석일 뿐이다. 그는 일거수 일투족 자식의 모든 일에 관여하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있다. 그리고, 그에게는 가족들 때문에 이루지 못한 꿈을 동경하며 자신을 포기하며 살았던 아버지가 계신다. 그러기에 아버지의 모습은 그에게는 억척같고 거친 어머니에게 눌려 계시는 것처럼 보여졌을지 모른다. 자기도 그렇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다. 행복해 보이지만, 꿈을 이루지 못할까봐. 두려운 그에게 나는 그가 원하는 자유를 선물했다. 무엇인가 그를 누르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내가 바라보는 자유와 그가 원하는 자유의 의미는 너무나 달랐지만.


이렇게 대물림되는 가족의 이력이 무섭다. 내가 끊지 않으면 내 자식에게도 물려질텐데,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안감힘을 썼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물려지겠지. 그래서 기도한다. 이 가족력이 아이에게 피해가 가는 기회비용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아이들에게 지금 아빠는 없지만, 우리 아이들은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다. 가끔 투정도 부리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오히려 새아빠랑 살 때보다 눈치보지 않아도 되니 훨씬 더 자유롭고 편안하다. '우리 싫다고 나간 사람을 왜 만나냐'고 말하는 아이의 상처가 아물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것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우리 셋은 선한 마음으로 평화롭게 과거에 집착하기보다 현재의 일에 집중한다.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고자 현재의 삶에 집중한다. 두번의  이혼은 동굴 속으로 숨고 싶도록 만들지만, 그 일은 어쩌면 누군가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로 키워본다.


-힐링에세이 쓰는 여자. 힐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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