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가리키는 길

프롤로그

by 호연


나는 우울과 함께 태어났어.

목 놓아 우는 것도,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못한 채 혼자 삼키는 어린이로 자랐지.


가장 최초의 기억이 뭐야?

나는 7살에 화장실에 숨어 숨죽여 울었던 기억이 나.

슬프면 엉엉 목놓아 우는 내 딸을 보며 알았어.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구나.

소리 내 울어도 괜찮은데, 두려워서 참았구나.


겉으로는 항상 웃고 괜찮아 보였지만 이유 없는 슬픔이 늘 그림자처럼 존재했어.

차라리 아침에 눈뜨지 않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


긍정적이고 밝은 내가 되고 싶었어.

그러지 못한 나는 감정을 외면하며 억눌렀어.

"우울하면 안 돼. 뭘 잘했다고 힘들어해. 무기력할수록 더 열심히 살아."

나조차 나를 바라봐주지 못한 거야.


사실 슬픔을 인정하기 두려웠어.

슬프다 말하는 순간 내가 무너질 것 같았거든.

그때는 감정을 외면하는 게 나의 최선이었어.


그렇게 나는 감정을 다루지 못한 채 엄마가 되었어.

작고 여린 아이가 내 품에 안기는 순간 덜컥 겁이 났어.

너무 소중해서, 사랑해서. 이 아이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까 그 무게가 숨을 조이는 듯했어.


엄마의 우울이 모유에 영향을 준다는 얘기를 듣고 모유를 버리곤 했어.

이 존재에게 나의 어둠이 드리우는 걸 막고 싶었거든.

이전처럼 감사일기도 써보고 긍정확언도 해봤지만

여전히 기운이 없었고, 마른 수건에 물을 짜내듯 겨우 살아내는 날들이었어.


아이가 5개월이 되었을 때 둘째가 찾아왔어.

겨우 살아내던 날들에 더 힘을 내야 할 이유가 생긴 거야.

자신이 없었어. 하지만 이전처럼 익숙한 방식으로 태연한 척 이 시기를 보냈어.

아이는 축복이고 감사라는 생각을 하며 태명을 사랑이라 지었지.

그렇게 15개월 차이가 나는 연년생 엄마가 되었어.


잠은 늘 부족했고, 내 시간은 간절했어.

자주 올라오는 감정은 더 선명해졌어.


분노, 자책, 우울, 무기력, 그리고..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아이를 안고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를 볼 때면 남의 일이 아닌 것만 같았어.


'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엄마가 되고 싶은데.'

'아이들에게 한 없이 사랑을 주고 싶은데.'

현실의 나는 초라하고 슬펐어.


어느 날 거실 한구석에서 조용히 고개를 묻은 채 울고 있었어.

겨우 걸음마를 뗀 아이는 작은 발걸음으로 아장아장 빨래통으로 향했어.

손수건을 꼭 쥔 손으로 다가오더니, 내 눈물을 톡톡 닦아주었어.

그 순간, 와락 무너져버렸어.

아이가 건넨 사랑이 눈부시게 따뜻해서.

부족한 엄마라 미안한데 그럼에도 괜찮다며 날 안아주는 것 같아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


소중한 두 아이를 보며

이 감정의 늪에서 나와야겠다고 결심했어.


지금의 우울을 인정해야 했어.

더 이상 밝고, 긍정적인 나라고 속이지 않기로 했어.


그렇게 상담의 문을 두드린 거야.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어.


감정은 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남편 때문에, 아이 때문에, 시어머니 때문에,

내 환경 때문에 불행한 게 아니었어.


감정은 내 마음에 이유가 있었어.

그리고 내가 맞다고 믿어온 생각 속에 있었어.


나는 2018년부터 2년 동안

내 감정과 마음을 적기 시작했어.


화가 나면

왜 화가 났는지,

내 안에 어떤 마음과 생각이 있는지

전부 적어 내려갔어.


그렇게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감정과 믿음을 하나씩 들여다봤어.


이전처럼 우울한 감정이 올라오면

"우울하면 안 돼. 나는 긍정적이어야 해."다그치는 대신,

"아, 내가 지금 우울하구나.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서 외롭고 서러운 감정이 올라왔구나."

인정해 주기 시작했어.


어떤 감정은 그저 알아주고 위로해 주는 것만으로도 한결 가벼워졌어.

상처받은 마음이 진심으로 원했던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며

위로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어.

치유의 시간이었지.


치유는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따뜻하게 안아주며 내면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과정이었어.


하지만 치유만으로 사라지지 않는 감정도 있었어.

사실 나에게는 그런 감정이 더 많았어.


아무리 알아주고, 위로하고, 공감하고, 격려해도

되풀이되는 격한 감정들.


그런 감정은 치유를 넘어 '정화'가 필요했어.


정화는 비움이야.

감정을 일으킨 '근원적인 마음'과

'연관된 생각, 믿음'까지 깊이 비워내는 과정이지.


상처에 연고를 바른다고

다칠까 두려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정화는 단순히 아픈 감정을 어루만지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을 만들었던 '내 안의 이유'를 깨끗하게 비워내는 과정이었어.


나는 그렇게 나를 돌아보고,

정화하면서 평온으로 나아가고 있어.


물론 여전히 감정이 올라와.

아직 내 안에는 정화해야 할 무의식이 많으니까.


정화하다 보면 공감하게 될 거야.

내 안의 무의식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어쩌면 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기에

더 이상 내 모습을 부정하지도,

그 속에서 헤매지도 않아.


이제는 나에게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지,

내 안에 어떤 마음이 있는지 알고 있기에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도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어.


이런 흐름이라면, 나는 잘 나아가고 있다고 믿어.

그래서 내 이야기를 용기 내 적고 싶었어.


어릴 때부터 울음을 보이지 않고,

부정적인 감정은 감추며 살아온 내가

이런 마음을 세상에 드러낸다는 것은

나에게는 용기이자 고백이기도 해.


용기 어린 고백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힌트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감정을 바라봐도 괜찮다는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담았어.


사실 더 깊은 이유는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

글이 주는 치유가 좋고,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니까.


조금씩 풀어내는 나의 이야기가

평온으로 가는 여정에 작은 등불이 되길 바라.


결국, 감정이 가리키는 길은

평온을 향한 여정일 테니.


애쓰지 않아도, 그저 평온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