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게임이 켜지면, 내 안의 화도 켜진다

'화'라는 감정 들여다 보기

by 호연


주말 아침,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평일엔 좀처럼 일어나지 않던 아이들이, 주말엔 놀랍게도 스스로 일어난다.

부스스한 얼굴로 "엄마, 배고파" 하는 소리에 몸을 일으킨다.


지글거리는 프라이팬 소리,

거실에서 아이들이 장난치는 소리,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남편의 키보드와 마우스 클릭 소리.


아침을 준비하며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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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서 남편이 아이들과 도란도란 대화하고, 함께 하는 아침.

따뜻한 밥 냄새가 부엌을 감싸고, 가족의 소소한 대화가 집 안을 채우는 풍경.

이렇게 시작하는 하루라면, 얼마나 따뜻할까?'

한켠의 소망을 그리다 현실로 돌아온다.


“아침 먹어.” 남편을 부르는 목소리에 무심코 힘이 실린다.

“잠깐만, 금방 끝나.”

그의 ‘금방’은 나에겐 ‘한참’이다.


늦게 식탁에 합류한 그는 폰을 들었다 놨다 하며 웹툰을 보고,

주식을 확인하고, SNS를 훑는다.


“밥 먹을 때만큼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대화하면 어때?”

남편에게 제안했다.

그는 “노력해 볼게.” 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설거지를 하고, 바닥을 닦고, 쓰레기를 버리는 남편을 볼 때는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집안일을 빠르게 마치고 게임과 침대에 눕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

부글거리는 화가 끓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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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날까?


1. ‘가족은 함께해야 한다’는 믿음

나는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일상을 공유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 순간이 가족의 유대감을 깊게 만든다고 믿는다.


남편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고 하지만

그는 대부분 혼자가 편한 사람처럼 보인다.


“아이들 둘이 잘 놀잖아.”

남편의 말은 아이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나와는 온도 차가 있다.

남편이 게임에 몰두하는 동안, 나는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주말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제법 아이들이 커서 둘이 잘 놀지만,

그럼에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아이들이 커서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한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관계를 잘 형성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남편에게 제안했다.

“주말에 10분이라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시간은 짧더라도, 서로에게 온전히 마음으로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바랐다.


2. ‘힘들 때' 터지는 분노

부엌에서 정신없이 일을 하며 동시에 아이들의 요구를 챙겨야 할 때,

남편이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으면 분노의 비상벨이 울린다.


“여보, 뭐 해? 바빠? 애들 좀 봐줘!”

이 말에는 억울함과 피로가 포함되어 있다.


평일에 나는 아이들 등교를 챙기고, 집안일을 마무리한 뒤 출근한다.

퇴근 후에는 숙제를 봐주고, 하루의 대소사를 챙기고 집안을 정리한다.

그러면 주말이라도 서로 힘이 되어주면 좋지 않을까?


물론, 남편도 생계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도.

하지만 휴식의 시간을 조율하고, 함께하는 시간도 갖고 싶은 건데.. 쉽지 않다.


3.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신념’

남편의 별명은 ‘집중력 3초’다.

그가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지만, 나는 이 부분이 게임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란하고 화려한 게임 화면에 익숙해질수록

긴 글을 읽기 어렵고, 대화도 집중하기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이들에게 '깊이 사고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길러주고 싶은데

게임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남편이 늘 게임을 틀어두고, 아이들에게 노출되는 부분.

아이들에게 쉽게 게임을 허용하고 미디어를 틀어주는 모습을 보면 불안과 분노가 뒤섞인다.


‘게임은 중독성이 강하고,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는

내 고정관념이 건드려질 때마다 감정이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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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뿌리를 들여다보다.

‘남편 때문에 화가 난다’고 생각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가 변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감정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화는 내 안의 '고착된 생각'과 '무의식'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게임을 하면 안 된다’는 믿음이 흔들릴 때,

가족은 함께해야 한다’는 기준이 충족되지 않을 때

나는 이렇게 애쓰는데…’라는 억울함이 건드려질 때 감정이 폭발한다.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은

내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이기도 하다.


이건 남편을 바꾸려는 게 아니다.

내가 자유로워지기 위한 과정이다.


남편이 변하지 않아도, 나는 내 감정을 돌보고 원하는 삶을 만들어갈 힘을 기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남편과 작은 조율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


내 기준에서 벗어나 삶을 유연하게 바라보고,

감정이 올라올 때 상황을 탓하기보다 내 무의식을 점검하는 습관을 들인다.


내 감정을 온전히 책임지는 힘을 키운다.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이 정돈되면, 남편의 입장을 이해할 틈이 생긴다.

그때야 비로소 제대로 된 소통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먼저 내면을 들여다보고,

무의식을 점검하며, 깨끗이 비워내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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