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린다. 퇴근한 남편이다. 아이들은 반가운 문소리에 "아빠!" 하며 달려간다.
작은 아이가 다리에 찰싹 달라붙고, 큰아이가 깡충거리며 남편이 신발을 벗기기도 전에 덤벼든다.
그 웃음소리가 집 안을 잠깐 채운다. 나는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다 고개를 돌려 그 장면을 본다.
강아지 같은 아이들의 모습에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어서 자야지."
남편은 짧은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컴퓨터 방으로 들어간다. 문이 닫히고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가 끊긴다. 조용해진 거실 사이로 방에서 새어 나오는 탁탁탁, 키보드 소리가 들린다. 모니터 화면 빛이 문틈으로 살짝 비친다. 그 광경에 마음에 묵직함과 허전함이 퍼진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 창밖을 본다. 새 학기를 시작한 딸들이 오늘 어땠는지 궁금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도, 2학년이 된 첫째도 학교생활은 어떤지, 어려움은 없는지, 어떤 하루였는지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나도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쉬고 싶지만 분주한 집안 일과 할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과의 소통을 우선순위에 두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은 늘 "일찍 자야지" 한마디를 강조하며 의무만을 남긴다. 그 말이 무거운 뚜껑처럼 느껴져서, 내 목소리가 더 나오지 않는다.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진다.
이 묵직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찻잔을 손으로 감싸며 그 느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허전함이다. 남편이 문을 닫고 들어갈 때마다, 우리 가족이 연결될 기회가 사라지는 것 같은 허전함.
‘남편이 일찍 온 날은 같이 얘기 나누면 좋을 텐데.’
그 바람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피어났다가, 문 닫히는 소리에 다시 스러진다.
남편의 키보드 소리가 더 선명해진다. 탁탁탁. 그 소리가 귀에 꽂히며 이상하게 마음을 흔든다. 문득, 중학생 때의 내가 떠오른다. 방에서 하루 종일 게임에 빠져 있던 나. 키보드를 두드리며 화면 속 캐릭터를 움직였다. 그때는 그게 전부였다. 성적은 하위권이었고, 게임에 대해 "시간 낭비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한숨 섞인 어른들의 핀잔이 불안처럼 내 안에 존재했다.
그 기억이 지금의 키보드 소리와 겹친다. 탁탁탁.
남편이 방에서 나올 기미는 없고, 화면 빛이 문틈으로 계속 새어 나온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깨가 뻐근하고, 숨을 깊게 들이마셔도 풀리지 않는다.
나는 처음엔 남편이 게임에 빠지고, 가족에게 무심한 모습 때문에 화가 난다 생각했다. 게임 화면과 현란한 소리가 나를 자극한다고 생각했다. 탁탁탁 키보드 소리는 내 안 깊은 곳을 툭 건드렸다. 중학생 때의 내가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 되면 어쩌지?’라는 오래된 두려움이었다.
딸들을 다시 본다. 큰아이는 색연필을 쥐고 꽃을 그리고 있고, 작은 아이는 아빠가 있는 방 앞에서 문고리를 건드리며 망설인다. 나는 아이들과 책을 펴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꿈꾼다. 남편이 "게임 좀 해도 돼"라며 작은 아이에게 핸드폰을 쥐여줄 때마다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주어야 하는데, 아이들도 남편처럼 미디어에 중독되면 어쩌지? 그 불안은 키보드 소리와 함께 더 커진다.
밤이 깊어지고, 딸들이 잠든다. 나는 거실에 멍하니 앉는다. 남편은 여전히 방에서 탁탁탁 소리를 낸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가만히 앉아 있다. 가슴이 쿵쿵 뛰고, 머리가 살짝 뜨겁다. ‘내 안에서 뭐가 이렇게 나를 흔드는 걸까?’ 나는 그 질문에 답하려고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문득 보인다. 키보드 소리를 들을 때마다 중학생 때의 내가 튀어나오는 이유.
그때의 나는 ‘시간을 낭비하면 가치와 쓸모가 없어지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을 거야’라고 믿었다.
그 두려움은 내 안 깊은 곳에 조용히 숨어 있다가, 남편이 방에 들어가고 문이 닫힐 때마다 깨어났다.
작은 아이가 핸드폰을 쥘 때마다, 그 두려움이 ‘딸들도 나처럼 될까?’ 하고 나를 찔렀다.
차가워진 손끝을 녹이며 그 생각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남편이 문을 닫고 게임을 하는 것도, 아이들이 핸드폰을 보는 것도 진짜 감정의 원인이 아니었다. 내 안의 오래된 상처와 두려움이 건드려진 것이 감정의 진짜 원인이었다. ‘가치 없으면 버려질 거야’라는 어린 나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남편의 행동을 미워하게 했다. 이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마음이 살짝 움직인다.
어린 나를 떠올린다. 버림받을까 봐, 가치 없어질까 봐 무서워하던 그 아이가 보인다.
손을 뻗어 조용히 안아주고 싶어진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속삭인다.
“괜찮아.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가치 없고 쓸모 없는 너도 괜찮아.
내가 너를 버리지 않을게. 어떤 순간에도 어떤 모습에도 나는 너를 좋아해.”
다정한 말들에 가슴이 살짝 풀린다. 따뜻한 빛이 차가운 얼음을 녹이듯, 묵직했던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속으로 이어간다.
“아이들이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도 괜찮아. 핸드폰만 봐도 괜찮아. 어떤 모습이든 내가 사랑해 줄 거야.”
그 말을 하며 눈을 감는다. 불안했던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나는 내 안의 어린 나를 위로하면서, 남편과 딸들에게 쏟아냈던 걱정도 덜어내기 시작한다.
다음 날 아침, 남편과 함께 아이들이 등교한다. 어제의 묵직함이 조금 가벼워짐을 느낀다.
나는 남편이 게임을 하는 것을 바꿀 수 없다. 언젠가는 아이들도 핸드폰을 자주 손에 들 날이 오겠지.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니 남편의 행동이 조금은 그의 입장에서 보인다. 그는 게임을 하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거다. 내가 중학생 때 게임으로 도망쳤던 것처럼, 그도 잠깐 숨을 돌리는 걸 거다. '남편도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숨을 돌리는구나.' 그의 고단했을 하루를 생각한다.
컴퓨터 방에서 새어 나오는 빛과 탁탁탁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 안의 어린 나를 끌어안는다.
“너는 충분해” 속삭이며 따뜻하게 품는다. 처음엔 그 소리가 나를 찔렀다. 남편을 미워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찌르는 느낌을 따라가 보니, 어린 내가 있었다. 무서워서 웅크리고 있던 그 아이를 만났다.
키보드 소리가 다르게 들린다. 예전엔 그 소리가 ‘가족이 연결되지 못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남편이 쉬고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내 안의 두려움이 남편을 비난하고 한심하고 잘못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게 했다. 그를 보는 나의 시선을 알아차린다.
작은 아이가 핸드폰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내가 좋은 엄마가 못 되면 어쩌지? 아이들의 인생이 잘못되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나를 괴롭혔다. 이제는 “너는 네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어”라며 두려움에 사랑을 보낸다. 어두웠던 불안이 따스함을 받으며 조금씩 줄어든다. 남편이 게임을 하든, 아이가 화면을 보든, 그건 나의 가치를 깎는 게 아니었다.
내가 품어야 했던 것은
쓸모없는 나도 괜찮아.
가치 없는 나도 괜찮아.
못나고 부족해도 나는 나를 사랑해라는
스스로에 대한 온전한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