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이 이렇게 외로운 거였어?

by 호연

우리는 연애 3개월 만에 결혼했다.


2016년 12월 31일.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설레는 발걸음을 옮기던 중,

지하철 화장실에서 뱃속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테스트기에 나타난 선명한 두 줄.


화장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떻게 해?" 당혹감이 묻어난 나의 표정을 본 그는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고 웃었지만 눈물과 함께 내민 테스트기를 보고는 이내 현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하고 싶어?”

당시 남자친구였던 그가 물었고, 잠시 후 말을 이어갔다. “나는 낳았으면 좋겠어.”


2017년 1월 1일.

새해와 동시에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맞이했다.

24시 카페에 마주 앉아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연애 6개월 차에 결혼식을 올렸다. 마음에 들었던 드레스는 제법 볼록한 나의 배를 마법처럼 가려주었다.


신혼집은 10평 남짓한 오래된 단독주택이었다.

우리는 2층에 살았고, 1층엔 시부모님과 시누가 살았다. 나는 밥 한번 해본 적 없이 주부가 되었다.

하루아침에 바뀐 건 커가는 배와 몸뿐이 아니었다. 결혼과 함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9년간 자란 고향을 떠나 낯선 동네에 살게 되었다. 심지어 종교도 바꿔야 했다. 우리 집은 신실한 불교 집안이고, 시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처음엔 종교 갈등으로 어떡하나 싶었지만 결국 친정 부모님은 "주례도 목사님으로 하고, 너는 이제 출가외인이니 시부모님 뜻을 따르라"라고 하셨다. "네네"하며 순종적인 딸로 자란 탓에 '교회 다니는 게 뭐 어렵겠어'라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당시엔 내 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저 '네'만 할 줄 알았다.


둘만의 신혼은 126일 만에 끝났다. 첫째가 태어났다. 그는 가장으로, 나는 엄마로 빠르게 적응해야 했다.

신생아는 2시간마다 먹어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이는 2시간 간격으로 운다지만, 엄마는 아이를 먹이고, 작은 등을 쓸어주며 '꺼억'소리를 듣고 나서야 눈을 붙일 수 있었다. 1시간 간격으로 선잠을 자고, 늘 부족한 잠에 비몽사몽 거렸다. 원래도 적었던 말수는 점점 더 줄었다. 누군가와 연락하고 어울리고 싶었지만, 나는 점점 혼자만의 동굴로 들어갔다. 남편은 경제적 책임을 다하려 애썼고, 집안일과 육아도 함께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게임을 했다. 서로의 고단함을 위로할 여유는 없어 보였다.


말하지 않은 것들

나는 왜 이렇게 외로운 걸까?


퇴근 후 육아에 지친 아내에게 깜짝스럽게 꽃을 건네는 남편, 아이를 재우고 야식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부부, 둘이 콩닥거리며 재미나게 아이를 키우는 모습들. SNS 속 다정한 부부를 보면 부러움이 올라왔다. 나도 남편과 그런 시간을 원했나 보다.


하지만 퇴근 후 게임을 하고, 주말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 한숨과 원망이 나왔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의 입장도 이해가 가니 언젠가부터는 더 말하지 않게 되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산후 우울증을 해결하고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내 마음을 나라도 알아주자며, 둘째가 태어난 후 2년간 매일 감정일기를 썼다. 새하얀 일기장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말 수가 적었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색해 사람들 앞에 가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힘든 일은 더더욱 티 내지 않았다. 집단 폭행을 당해 몸도 마음도 헤집어졌을 때도 "나는 괜찮다"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우울증에 자살 충동이 심해 상담을 받고 온 날에도 가족 중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누구에게든 괜찮다는 긍정의 가면을 썼다. 내 아픔이 누군가의 짐이 되는 게 싫어 혼자 견디는 게 익숙했다.


그러니 남편에게도 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말하지 않아도 찰떡 같이 알아주길 바랐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때로는 화로 이어졌다. 산후우울증이 심했던 날, 남편이 방에서 동료들과 웃으며 게임을 할 때 나는 홀로 아기를 재우며 눈물을 삼켰다. “나 좀 봐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끝내 꺼내지 못했다.


내면의 목소리, 알아차림의 시작

외로움을 들여다본다. 혼자 견뎌온 시간이 서글프고 서럽다. 그동안 얼마나 애쓰며 버텨왔는지 토해내고 싶다. 포근한 품에 안겨 엉엉 울며 위로 받고 싶다.


아이들만큼은 혼자 힘들어하지 않기를.

엄마인 나에게 훌훌 털어놓고, 위로받기를.

채워진 사랑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거뜬해지기를.

위로가 필요한 날, 아이들 마음에 가장 큰 사랑을 주는 든든한 품이 되고 싶다.


외로움을 안아주며

나의 외로움이 원하는 건 인정이었다.

혼자 견딘 시간을 알아주는 것. 나의 고생을 알아주는 것. '네가 이만큼 힘들었구나.' 해주는 것.


그리고 이제는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된다고, 어떤 순간에도 너를 혼자두지 않겠다는 위로를 받고 싶다.

살아내 줘서 고맙다는, 견뎌온 시간이 굳은살처럼 단단해져서 삶이 더 깊고 강해졌다는 위안도 듣고 싶다.

내 안의 외로움을 바라본다. 따뜻하게 끌어안는다.

“여기서 이렇게 혼자 아파하고 있었구나”

외면한 시간을 사과하며 이제라도 안아본다.

소중한 아이를 품듯, 내 마음을 그렇게 안아준다.


위로가 필요한 날, 소통이 필요한 날에는 남편에게도 말한다.

“오늘은 울적하다. 힐링이 필요해."

그는 "퇴근 후 같이 산책하거나 치팅데이 할까?"라며 손을 내민다. 결혼 9년 만에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느낀다.


때로는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엄마가 오늘은 좀 힘들었어. 너희가 정말 보고 싶었어."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엄마 내가 안아줄게요."라며 달려와 두 팔 벌려 안아준다.

'엄마 사랑해요. 힘내세요. 엄마가 제일 좋아요.'라는 러브레터도 받는다.


아이들의 뛰는 심장을 맞대며 행복을 충전한다.

사랑스러운 두 존재가 주는 사랑은 포근하다 못해 다시 살아갈 힘이 채워진다.


"너희가 있어 행복해. 이번 생은 너희를 만나서 제일 행복하다. 엄마는 무슨 복이 있어서 이렇게 이쁜 너희를 만났을까.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야."라는 진심의 말이 튀어나온다.


한 걸음씩 앞으로

내면의 깊은 외로움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무의식은 훨씬 더 깊게 뿌리내리고 있을 수 있다.


결혼생활은 원래 이렇게 외로운가요?

둘일 때 느끼는 외로움은 원래 더 절절한가요?

메아리 치던 물음에 이제는 다르게 답한다.

내가 나를 외면했던 외로움이 아팠던 거라고.


외로움이 몸을 휘감을 때면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 적적함과 쓸쓸함을 따뜻하게 품는다.


우리는 혼자 견디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보듬으며 치유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태양 같은 따스함을 나에게 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내 삶에 함께하는 두 딸과 남편에게 감사하며,

기나긴 외로움도 이제는 사랑 안에서 치유되길 바라며.


긴 글을 함께해 주시는 독자분들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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