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 돌 두 개가 다듬어지다

by 호연

'가치관이 정 반대인 사람과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


남편과 함께한 9년이란 시간은 이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기에 다름은 당연하지만, 여기서 비롯된 부딪힘은 거센 파도에 깎이는 바위 같았다.

날카로운 모서리가 맞부딪히고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다듬어져 갔다. 특히 육아에서 남편과 내가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심어주고 싶었다. 스스로 성찰하고, 독서와 사유, 글쓰기와 대화를 통해 그 힘을 키우길 바랐다. 아이들 안에 ‘창의성’이라는 씨앗과 재능이 보였고, 부모로서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 여겼다. 달에 한 번이라도 도서관에 가고 싶었지만, 우울과 무기력에 에너지가 없던 시절엔 그저 생각에만 머물렀다. 책 한 권 읽어주는 것조차 버거웠다. 일상에 힘이 생긴 요즘은 그 바람을 조금씩 해보고 있다. 반면 남편은 눈 떠서 잠들 때까지 게임을 틀어둔다. 10대, 20대를 게임으로 채웠고, 그 덕에 게임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의 삶은 게임으로 설명될 만큼 게임과 하나 된 인생이다.


어느 날 문득 궁금했다.

‘남편에게 게임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게임을 통해 배운 것이 많다고 한다.

게임 속 아이템이 10만 원에 팔리던 순간, 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님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경험 덕에 스마트 스토어에 도전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리더가 되어 팀을 이끌며 공략과 전략을 고민한 것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게임 속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며 연장자를 대하는 법도 자연스럽게 익혔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는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었다. 나도 중학교 시절에는 잠깐이지만 게임중독을 경험했다. 나에게 게임은 그저 시간낭비와 목표에 방해되는 것이었는데, 게임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그를 보니 내가 놓친 부분이 무얼까 궁금했다. 최근에 ‘나도 오랜만에 게임 한판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쉽게도 추억의 넷마블 테트리스는 사라졌지만, 간단해 보이는 테트리스 게임을 다운로드했다. 화면이 열리는 순간, 왠지 남편이 된 듯한 기분에 웃음이 났다. 잠깐이지만 소소한 일탈이었다. 점점 빨라지는 블록을 이리저리 맞추다 보니 손과 머리가 바빠졌다. 게임에 몰입할수록 복잡했던 생각이 단순해졌다. ‘게임이 힐링’이라는 남편의 말이 조금은 이해됐다. 게임을 잘하려면 두뇌 회전이 빠르고 반응 속도가 좋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러고 보면 게임도 하나의 재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에 재능이 있듯, 게임에도 그런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그동안 나는 게임보다 독서나 글쓰기가 더 유익하다고 믿었다. 아이들에게 게임보다는 책을 권하려 했다. 이제와 돌아보면 그건 내 경험에서 나온 나에게 좋은 것 들이었다. 남편에겐 게임이 고마운 세상 일 것이다. 나는 그의 세상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그럴 수 있겠구나’ 바라보려 한다. 부정적으로만 보이던 게임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음을 인지한다. 글쓰기, 독서, 게임은 모두 세상을 살아가는 데 쓰이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좋고 나쁨을 넘어, 내가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한 본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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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남편과의 대화가 싸움으로 끝나곤 했지만, 최근에서야 소통의 문을 다시 열고 있다. 서로의 가치관이 달라도, 아이를 사랑하고 잘 키우려는 진심은 그와 같다. 나는 늘 내 방식이 더 가치 있고 옳다고 믿었다. 지금도 게임보다는 독서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가 맞다'는 생각이 강할수록 우리는 부딪히고 서로를 비난했다. 이제는 '맞고, 틀리고'를 넘어서 세상의 다양한 도구를 경험하며 재미있게 살고 싶다.


아이들은 나에게 성찰, 명상, 독서, 글쓰기를 경험하고, 남편에게는 경제관념, 게임의 즐거움과 전략, 미디어를 삶에 적용하는 시각을 배우면 어떨까. 시간을 적절히 조절하며 말이다. 다양한 경험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과 도구를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남편은 게임 시간을 조금 줄이고 분배해 보기로 했다. 나도 나에게 부족했던 부분을 인정하니 길이 보였다. 이 변화는 구체적인 깨달음에서 시작됐다. 예전엔 '게임은 시간 낭비고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게임에도 전략을 고민하고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면이 있다는 걸 받아들였다. 내 가치관을 강요하기보다 그의 관점을 받아들일 여지를 만들기로 했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의 게임 시간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가 보는 것이다.


서로의 다름을 '틀렸다'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볼 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아이들에게도 '게임을 하느냐 안 하느냐' 보다, 부부가 서로 평화롭고 안정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환경이니 말이다.


모난 돌이 둥글어지는 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여전히 부딪힐 때도 있고, 아직 날카로운 조각이 남아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며 맞춰진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다. 완벽한 조화는 아니어도, 서로의 다름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법을 꾸준히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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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서는 게임하는 남편을 보며 올라온 감정과 생각들을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분노, 두려움, 외로움 등 감정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 글에서 다루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해 주세요.)

지금까지는 게임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내면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흐름을 살펴보았다면,

다음 글에서는 남편과의 소통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다음 주, 또 한 편의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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