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남들의 '정상'범주에 끼워맞추는 피곤함보다 나를 지키는 용기
“피할 수 없는 죽음이나 탈출할 수 없는 부조리를 거부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누린다면, 우리는 용감하게 삶을 받아들이고 어쩌면 행복을 손에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다름을 두려워합니다.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어울리지 못하는 걸까요? 어울리지 못하기에 달라질 수밖에 없는 걸까요? 주인공 뫼르소는 상식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과연 상식이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진정한 진리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상식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일까요? 그들이 성인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뫼르소 역시 젊은 시절 최선의 삶을 살았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결과 현재의 냉소적 태도가 그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다음 날 연인과 해변을 찾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냉정한 인간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리고 한낮의 태양이 눈부셨다는 이유로 총을 쏜 그의 행동은 더욱 비정상적으로 간주됩니다. 결국 그는 사회가 정한 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선고받습니다.
과연 다수의 시선이 절대적으로 옳을까요? 사회가 요구하는 감정 표현 방식과 태도를 따르지 않는 것이 비난받아야 할 일일까요? 우리는 종종 ‘정상’이라는 틀 안에서만 사고하며, 다름을 용납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닐까요.
삶은 우연의 연속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거나 무엇이 아니거나입니다. 세상에 던져진 우리는 끝이 언제인지 모를 뿐, 결국 같은 운명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개인적으로, 나는 뫼르소의 고립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가 선택한 삶의 방식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 역시 주변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대에 의해 영향을 받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다름을 느끼고, 그로 인해 소외감이나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과 사의 시작과 끝 사이에서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오롯이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이방인으로 여기지만, 이방인으로 만드는 권리는 없습니다. 다름은 당연한 것이니까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카뮈는 결국 우리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으라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말은 결국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뭘 망설이고 있어? 소중한 니 인생 그냥 흘려보내고 말꺼야? 또 후회할거야?” 다시 한번, 나에게 말을 건넵니다. 이제는 이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대답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