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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씨티 May 24. 2022

이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이유

한량치고는 조금 부지런한 사람이라

계획하지 않아도 하루가 꽉꽉 채워서 흘러간다.

어차피 꽉 채우지 않아도 채워질 하루 스케줄, 언젠가부터는 그냥 덜 계획하기 시작했다.

나는 비우면 채워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정말 그러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도 3년이 지났고 그런 변화 덕분에 매일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고 있다.

실컷 자고 눈뜨고 싶을 때 일어나고, 하고 싶을 때까지만 일하고, 좋아하는 책만 읽고,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공부를 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만들어 가면서 살고 있다.

특히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랑만 일할 수 있는 건 가장 큰 기쁨 중 하나.  

내 인생에서 짜증 나게 거슬리던 사람들이 다 같이 손잡고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과거의 나는 분명 이런 내 일상을 '사치 부리고 자빠졌네. 더럽게 한심하네'라 평가했을 거다.

누군가의 눈에는 게을러 빠진 나.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한결같이 꾸준하고 부지런한 나.

지금의 나는 이런 나를 그냥 받아들였다. '나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고 싶은 사람인가 봐.'


그런데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더니,


원하는 거 하겠다고 내 모든 자원들을 모두 쏟아부었더니 겉보기에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졌다.

그러하다. 꿈과 희망은 가득한 빈털터리가 되었다. 아 맞다! 대출은 있지 ^^ 쓰라려서 웃기지도 않는다.

지금 내가 가진 건 모두 보이지 않는 잠재력뿐인 거야? 뭐 그런 거야?


왜 주변 사람들 모두 '야, 난 너 걱정은 안 해. 넌 결국 잘 될 거야'라는데

왜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정말 아~~~ 무 것도 가진 게 없어진 느낌이다.  

'대체 언제 잘되는 건데? 그리고 나 꼭 잘되야 되는 거냐? 잘 안되면 나랑 안 만날 거야?'

혼자 베베꼬여서 속으론 저런 생각까지 하고 자빠졌다. 어렸을 때 못 부린 투정, 다 커서 한 번 부려보나.

 

정말 힘든 날, 술 한잔 하면 친한 친구에게 입버릇처럼 말한다.


"나 그냥 다 놓고 떠나버릴까? 어차피 잃을 것도 없으니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냥 가면 되는데... 난 어딜 가서도 먹고살 수는 있잖아... 조용한 데서 소일거리나 하고 글 쓰고 명상도 하고... 잘 살 거 같지 않아?"


"넌 못 떠나. 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야 돼."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듯한 친구의 대답에 허탈하다. 상상만 해도 너무 좋은데 왜 난 못 떠나고 있는 걸까?

정말 잃을 거 하나 없기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몸인데 이놈의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왜 한량같이 살기를 바라면서도 진짜 한량이 될 용기는 없나?


'남의 시선 생각해서 일했다면 진작에 지쳐서 쓰러졌을지도 모르지' 혼자 위로해본다.

힘 빼고 있을 때 힘주고 있으면 일찍 포기하게 되니까. '힘 좀 빼고 있어도 괜찮아' 혼자 수없이 되네였다.  

솔직히 나중에 더 잘 놀고 싶어서 일한다. 시간만 나면 푹 쉬고 잘 놀 궁리를 하며 살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연습도 하고 있다.


그래서 더 잘 놀려면 5년은 해보자. '그래 못해도 5년은 떠나지 말고 해 보자'하면서도

금세 너무 불안해진다. 안정감이 그립다. 누가 나 좀 꽉 잡아줬으면 좋겠다.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익숙해졌다. 정착하지 못하고.


한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내 인생에 대한 글도 쓰고 싶어 지는데,   

그게 바로 오늘이구나. 글이 그냥 술술 써내려 가진다.

사실 원래 루틴같이 쓰려던 글이 너무 쓰기 싫어서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있다. ㅈㄴ 잘 써져서 어이가 없다.


대체 무슨 내용을 글로 내뱉어 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냥 머릿속에 오랫동안 눌러앉아 있던 생각들이 떨어져 나오는 기분이다. 내 일기장에나 쓸 법한 글이다. 훨씬 더 정리가 잘된 버전이랄까?


한동안 머리가 너무 무거웠다.

명상을 하려고 앉아도 생각들이 한 짐. 이런저런 생각들 다 받아주고,   

끝도 없이 올라오는 불안함과 깊은 외로움을 다 느껴주고 그랬는데도

머리가 너무 무거웠다.


도시에 살면서 내가 업으로 삼는 일을 하고 사니까 정말 많은 사람들과 연을 닿는다.

단 하나의 인연도 우연이 아니라고 믿는 나는 만나게 되는 '하나' '하나'가 소중하다.   

내 이름같이 운명 같고 아름답다.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마치 언젠가는 내가 경험했어야 하는 일같이 느껴졌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참 슬프다.   

그래, 가끔 즐겁기도 하지만 슬픔은 유독 많이 와닿는다.  

나는 슬픔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사람들을 슬픔을 곁에서 느끼면서  

내 안에 깊이 묻혀 있었던, 아마도 전생에서 왔을 법한 슬픔과 외로움이 느껴지는 날들이 많았다.  

비교할 수 없지만 상대적으로 굴곡 없는 인생인데,   

대체 얘네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모든 것이 공중에 둥 떠있는 것 같은 와중에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과 연결이 되고 정말 무언가를 해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게 지금 내가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이기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냥 오늘 하루는 그런 날인가 보다.

잠꼬대같이 핵심도 없는 넋두리를 어디에다가 쏟아내고 싶은 날.

쏟아내서 그런가, 머리가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다.


이 글을 다 읽은 누군지 모를 그대에게 감사하다. 함께 해줘서 고맙다.   

그리고 그대는   불안하면 좋겠다. 내가 보낼  있는 가장 선한 에너지를 보내본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대사같이.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거라고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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