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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씨티 Dec 21. 2018

베트남 호이안 한달살기, 코워킹스페이스, 다양한 인생

정답없는 인생, 여행하며 꿈꾸는 자유로운 사람들이 모이는 곳

호이안에 머문 지 딱 한 달이 되었다. 첫째 주는 가족여행을 하면서 관광객들이 가는 맛집, 리조트, 관광지를 대부분 찍고 가족들이 한국으로 돌아간 뒤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호이안은 정말 많이 변해있었다. 처음으로 호이안에 왔던 건 5년 전, 2013년 여름휴가였다. 그 때만 해도 다낭과 호이안이 이렇게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었던지라 호이안에 내려갔을 때 그 한적하고 평화로운 빌리지 느낌이 얼마나 좋았는지 'reaching out'이라는 사일런스 카페에 혼자 앉아서 차를 마시고 다이어리를 쓰다가 '나중에 시간이 생기면 꼭 돌아와서 시간에 쫓기지 않는 장기 배낭여행객들 같이 오랜 기간 동안 지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5년 전에 나에겐 그 소원은 이루기 어려운 꿈같았는데, 딱 5년 뒤인 2018년엔 그 상상이 실현된 현실에 살고 있음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생각이 모든 일에 선행한다.


한달간 살았던 에어비앤비

#에어비앤비
호이안에 오기 전 2달 전 예약해 놓은 에어비앤비. 한 베트남 가족이 내놓은 마스터 베드룸인데 한 달에 18만 원으로 아주 저렴하다. 센터에 있는 홈스테이들은 아침식사 포함 약 30~40만원정도 한다고. 호스트인 아들을 제외한 가족들과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잘할 순 없지만 정말 친절하다. 청소는 3~5일에 한 번 무료, 빨래는 1kg당 1USD를 받는다. 가끔 청소 후 내 책상에 바나나를 올려놓는, 어느 아침엔 외출하는 길에 엄마같이 삶은 찰옥수수를 건네시는 아주머니 인심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가격이 저렴한 대신 식사는 불포함, 그리고 호이안 센터로부터 3km 정도 떨어져 있다. 


쌩얼로 스쿠터 타고 논밭길을 가르며 가는 출근길. 작년과는 확연히 다른 출근길

#스쿠터배우기
숙소, 노매드요가, 허브호이안을 한 바퀴 돌면 매일 약 11km가 넘는 거리다. 한강에 자전거 타러 나갈 때 거뜬히 달리는 거리라 당연히 자전거로 다닐 수 있다고 자부했었지만, 자전거 하루 시도 후 바로 다음 날 스쿠터를 빌리러 갔다. 땡볕에서 자전거를 타게 되니 목적지를 가는 도중에 엄청나게 지친다. 한 달 후면 자전거 선수가 되면 됐지 진정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남 ㅋㅋㅋ 2년 전 미얀마 여행을 갔을 때 전기스쿠터를 한 번 타본 적 말고는 스쿠터가 처음이다. 내게 잔소리 같은 건 생전 하지 않는 무심한 오빠도 베트남에서 스쿠터는 타지 말라고 말렸지만(오빠는 베트남 깡시골에서 3년간 파견근무를 했었다), 호이안 시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터득해야 하는 스킬이다. 'Grab bike'도 몇 번 이용했지만 호이안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내가 원할 때마다 움직일 수 없다. 스쿠터를 탄지 약 3주가 된 지금도 천천히 도로를 달릴 때마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튀어나오는 그 온갖 다양하고 새로운 것들(왼쪽 문으로 내리는 사람, 스치듯이 지나가는 자동차, 역주행하는 스쿠터, 스쿠터 따위 본 척 안 하는 사람, 논길 가운데 죽은 쥐) 때문에 심박수가 미친 듯이 뛴다. 하지만 결국엔 파란 하늘과 푸른 논을 뒤로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작년과는 180도 달라진 새로운 출퇴근길을 달리는 쾌감과 '스쿠터 배우기'라는 두려움을 극복한 쾌감만 가득하다. 내 여행 스킬이 한 단계 레벨업 된 것 같아 뿌듯하다. 


#코워킹스페이스

허브호이안(Hub hoi an)이라 불리는 논밭 한가운데 위치한 코워킹 스페이스. 허브호이안은 평화롭다 못해 처음 며칠간 낮잠 쏟아지게 노곤노곤하게 만들어주는 공간이었다. 한 달 사용료는 약 20만원(매일 1잔 음료 무료)으로 베트남의 물가 대비 조금은 비싼 가격이지만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이내믹한 에너지와 집중력을 돋우는 사무공간을 생각했을 땐 분명히 그 정도 가치는 있다. 원하면 매일 점심 식사를 함께할 수 있고(5천 원) 베지테리언, 비건(Vegan) 옵션을 구분해서 주문할 수 있다. 매주 커뮤니티 내에 다양한 이벤트(Friday family dinner, pub quiz, board game night, etc) 도 준비되어 있어 이벤트에만 다 참여해도 심심할 틈이 없다. 
호이안에 오는 걸 설레게 만든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이 공간과 커뮤니티다. 온라인 사업가, 원격근무가 가능한 회사원, 프로그래머, 프리랜서, 웹 디자이너, 커플 테라피스트 등 정말 다양한 직업군들이 함께 모여 서로 다른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한 공간에서 모두 다른 꿈을 꾸며 일하지만 다른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열려있다. 획일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바쁜 도시 생활자들 사이에 있을 때 이유 모르게 숨쉬기 답답한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보고 듣고 또 내 이야기를 풀다보면 막혀있던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 
인생에 정답은 없다.

내가 즐겨갔던 두 명의 요가티처 클래스. 엄청나게 맑은 에너지의 빅토리아 vs 엄청나게 가혹하지만 재밌는 라훌

#노매드요가 (Nomad yoga)
한 달에 무제한으로 요가를 할 수 있는 패스가 약 10만원이다. 데일리, 위클리 패스도 구매 가능하다. 하루에 약 4~5가지의 다양한 요가 클래스가 준비되어 있다. 하타, 아쉬탕가, 빈야사, 명상까지 골라서 마음대로 참여할 수 있다. 요가원 이름같이 나같이 1달 패스를 사서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스쳐가는 여행객들이 정말 많다. 가끔 요가를 하다가 만난 뉴질랜드 친구와 같이 베지테리언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생활을 바라보는 관점이 나와 너무도 비슷해서 소름이 다 돋을 정도였다. 내가 이런 비슷한 에너지를 가진 친구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건지 아니면 마음의 평화가 있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호이안이 인생에 비슷한 페이지에 서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내가 호이안에서 하루하루를 즐긴다는 사실이다. 매일 아침 이런 생각하면서 출근했다. 
오늘은 또 어떤 재밌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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