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살다 보면 나 자신이 누구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눈앞의 일에는 분명 내가 있고, 생각하는 나도 있는데, 어떤 순간에는 마치 내가 아닌 것처럼 멀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실 자아라는 건 처음부터 단단하게 정해진 실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겪어온 경험, 관계, 기억, 상처, 기대 같은 것들이 하나씩 쌓이고 엮여서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거울 앞에서 “이게 나야”라고 말할 때도 사실 그 순간의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며,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입니다.
우리가 흔히 “나”라고 부르는 것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지나온 경험들이 잠시 빚어낸 하나의 형태입니다. 잠시 머물렀다가 또 변해가는 모습이죠.
사람이 왜 생각하고, 왜 느끼고, 왜 기억을 떠올리는지는 아직도 과학이 완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눈을 감고 사과를 떠올리면 색과 향기까지 생생하게 떠오르지만, 뇌에서 일어난 활동이 왜 그런 ‘느낌’으로 이어지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영화의 줄거리는 설명할 수 있어도, 영화를 보며 울컥한 이유를 정확히 말하기 어려운 것처럼요. 의식은 여전히 인간이 가진 가장 신비로운 영역입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게 하면 생각들이 조금씩 옅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는 기쁨도 슬픔도, 판단도 잠시 멀어지고, 오직 바라보는 나만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나 떠오르는 생각, 습관처럼 반복되는 판단들은 모두 지나가는 ‘내용’일 뿐인데도, 우리는 그 내용 하나하나를 붙들고 “이게 나다”라고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 뒤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그 시각은 내용이 아니라 공간에 더 가깝습니다.
이 사실을 조금만 이해해도 우리가 왜 불안해지고, 왜 집착하고, 왜 상처를 반복해서 떠올리는지 조금 더 부드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과학은 관찰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어떤 현상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아라는 것도 홀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관계와 경험이 연결되며 만들어지는 하나의 형태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고정된 실체로 붙들어 두려고 할 때 괴로움이 생기는데, 변하는 세계 속에서 나만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의식은 우리가 세상을 느끼고 이해하고 반응하는 과정 전체를 뜻합니다.
길을 걸을 때 바람을 느끼는 것, 친구 얼굴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 나를 돌아보고 삶을 고민하는 것 모두 의식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의식을 곧 ‘나’라고 착각합니다.
인터넷을 사용한다고 해서 인터넷이 곧 내가 되는 것은 아니듯, 의식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몸도, 감정도, 생각도, 기억도 나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자체가 나의 전부는 아닙니다.
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경험이 이어지며 만들어지는 하나의 흐름에 가깝습니다. 어떤 날은 단단해 보이고, 어떤 날은 쉽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흐름 자체는 계속 이어집니다.
중요한 점은 이 흐름을 더 부드럽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이미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면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오해와 집착은 천천히 힘을 잃습니다.
삶은 자연스럽게 가벼워지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도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결국 ‘나’란 완성된 정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생각보다 훨씬 자유로운 모습을 드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