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젖은 전복죽을 드셔보셨나요?
참사 초기 실종자가족들(이후 가족들)은 잠을 자는 것도,
먹고 마시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가족들이 대부분이었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마저 잃어버린 극한의 상황이었습니다.
저희 텐트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군다나 팽목항은 진도체육관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바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파쇄석으로 덮여있었고, 그 위에 깔린 얇은 매트리스는 항상 눅눅해서 잠깐 앉아 있다가 일어서보면 엉덩이 부분이 젖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천장과 벽은 외부와의 온도 차이로 항상 물이 흐르고 있었고요.
화장실은 턱없이 부족했고, 몸을 씻을 곳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물티슈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낮에는 행정구역과 가족구역을 오가느라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밤에는 냉기로 힘들었습니다.
습기는 마음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었고, 냉기는 뼛속까지 파고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들의 얼굴은 점점 수척해졌고, 삶의 기운은 서서히 사라져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 따스한 빛이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시리고 시린 팽목항을 따뜻하게 데운 분들은 바로 봉사자분들이었습니다.
저희 곁에서 묵묵히 청소와 빨래 등 궂은일을 마다치 않고 해주시며, 따뜻한 한 끼를 건네주신 분들도 계셨죠.
'빵맹그는아짐'은 그 봉사자분들 중에 한 팀이었습니다.
그 당시 팽목마을 입구에서는 차량이 통제되었습니다.
차를 멀리 세우고 걸어와야 했었죠.
그 먼 길을 김밥과 전복죽을 이고 지고 오셔서 가족들에게 건네주신 분들이 바로 아짐들이셨습니다.
처음엔 어떤 분들인지 몰랐습니다.
나중에야 팽목항 '봉사약국'의 약사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진도의 한 봉사 단체로, 원래는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빵을 만들어 나누던 분들이라고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고, 생존자들을 위해 찐빵을 만들어 진도체육관에 도착했지만,
아짐들이 마주한 것은 절망 속에 주저앉아 있는 가족들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아짐들은 가족들을 위해 김밥과 전복죽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시더군요.
약 1,000인분의 김밥과 전복죽을 정성껏 준비해 팽목항까지 나르셨고, 하루 12시간 이상을 팽목항에서 봉하셨다고 약사님이 말해주시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저는 울컥..
전혀 인연이 없는 이들을 위해 전복을 손질하고 김밥을 마는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흠...
힘없이 누워만 있던 가족들에게
"일어나 죽이라도 드세요. 그래야 돌아올 애들을 기다릴 힘이 생기지!"
호통 아닌 호통을 치시며 죽을 떠 주시던 분들.
마지못해 몇 숟가락 뜨며 흘리던 가족들의 눈물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애써 참고 있던 아짐의 눈에 맺힌 눈물도..
아짐들도 누구의 딸이고 누구의 어머니였기에 서로 마음이 통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처음..
'눈물 젖은 빵'이 아닌 '눈물 젖은 전복죽'을 먹게 되었습니다.
식어버린 김밥 한 줄, 전복죽 한 그릇을 손에 쥐자 이상하게도 온기가 전해졌었습니다.
아마도 몸이 아닌 마음이 데워졌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전복죽의 온기는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아짐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