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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식이형을 찾습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을까?

by 팽목삼촌

그를 만난 건 제가 팽목항에 온 지 이틀 후

그러니까 4월 18일 텐트 안에서였습니다.

여느 때처럼 잠시 상황실에 다녀와 보니 낯선 남자가 가족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더군요.

무심히 옆에 앉아 그의 얘기를 들어보니

이름 : X성식

나이 : 나보다 많음

직업 : 서울의 모처에서 쭈꾸미집을 운영

팽목항에 온 이유 : 실종자의 형부

가계는 종업원들에게 맡기고 팽목항에 왔다고 했습니다.

제가 느낀 그의 첫인상은 180cm 정도의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치아가 고르지 않았고, 얼굴색은 어두웠습니다.

고급 옷을 입고, 고급 신발을 신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를 이질감(?)이 느껴지더군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라는 느낌이랄까?

그 당시 팽목항에는 가족들이 많았기 때문에 신분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저희 텐트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번갈아 불침번을 서고, 쓰러진 가족들 옆에서 위로해 주고, 간호해 주고..

가족들에게 참 헌신적이었습니다.

때때로 '임시검안소'안에서 근무하는 *KCSI에게 접근하여

우리가 알아내기 힘든 정보들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경찰과 대화하는 방법이나 정보를 얻는 요령을 가르쳐 주기도 했죠.

같은 텐트에서 생활하던 가족이 아이를 찾아 안산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를 때도

저와 함께 조문을 가기도 했었습니다.

안산에서 하루를 쉴 때, 함께 사우나에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던 생각이 나네요.

말 그대로 든든한 '형'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동고동락'하며, 하루하루를 버텨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형에 대한 의문이 점점 커졌습니다.

형은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고, 전화번호는 알려주었지만, 실제 통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전화를 걸어도 형은 늘 받지 않았고, 이유를 물어봐도 늘 이런저런 핑계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당황스러웠던 것은 형이 종종 텐트 밖, 외진 곳에서 통화를 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때 형이 사용한 전화는 평소에 쓰던 스마트폰이 아니라, 폴더폰이더군요.

의심은 하나둘씩 쌓였고, 궁금한 마음도 생겼지만, 굳이 형의 정체를 파헤치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솔직히 얘기하면 저는 두려웠습니다.

'모두 다 떠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한 명이라도 더 남아있는 가족들의 곁에, 내 곁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한 달 후.

팽목항의 공기는 이전과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기다리던 부모, 형제, 자식들을 찾아 팽목항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경찰은 이때부터 팽목항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해 본격적인 신원조사를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

공개적으로 조사하진 않았지만, 평소와 달라진 경찰들의 행동과 눈빛을 보고 직감할 수 있었죠.

가깝게 지내던 사복경찰들도 평소에 하지 않던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벼운 일상 얘기를 하다가도, 넌지시 인적 사항과 가족 사항 등을 묻기도 하더군요.

'인원 관리에 들어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저는 경찰들에게 이런저런 질문들을 받았지만, 형은 항상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경찰들의 조사가 아닌 조사가 있던 날 밤.

어디론가 사라졌던 형이 텐트에 들어오더군요.

저는 형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형 어디에 갔었어요? 계속 안 보이던데?"

"응 진도체육관에 볼일이 있어서. 왜? 무슨 일 있었어?"

"경찰이 인원 관리를 시작한 것 같아. 저한테 이것저것 묻더라고요."

"그랬구나..."

형에게서 별다른 동요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성훈아 내가 가계에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아"라고 형이 말하더군요.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기에 전 그냥

"그래요? 그럼 빨리 가보셔야겠네요."

"응. 끝까지 같이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하고, 내가 일 정리되면 연락할게"

"미안하긴요. 꼭 연락해 주세요"

그렇게 형은 제게 맞을 만한 옷 몇 벌을 건네주고 팽목항을 떠났습니다.


그 뒤로 형에게선 연락이 오질 않았습니다.


기다리던 처제가 돌아왔을 때도 형은 팽목항에 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연락을 해 보기도 했죠.

하지만, 전화기 너머 들리는 소리는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십시오"라는 멘트뿐..


과연 이름은 진짜였을까요?

나이는?

직업은?

궁금한 점은 많지만, 지금은 그냥 형이 저와 가족들에게 보여준 좋은 모습들만 기억하려 합니다.

사람을 찾습니다~

성식이형~

잘살고 있으신가요~?

보고 싶습니다~


*KCSI(Korea Crime Scene Investigation) : 대한민국 경찰 과학수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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