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선생님 이야기
제가 그녀를 만난 것은 5월의 어느 날, 검안소 앞의 '가족 대기 텐트'였습니다.
많은 가족이 안산으로 돌아가니, 자연스럽게 브리핑 횟수도 점점 줄어들더군요.
언제부터인가 그곳에는 의자들이 하나둘 늘어났고, 가끔 봉사자들이 와서 쉬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곳 한편에서 책을 읽고 있는 여자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족은 아닌 것 같고, 누구지?'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던가? 내가 먼저 말을 걸었던가?
아무튼 이야기하다 보니 그녀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셨습니다.
또래 아이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팽목항으로 오게 되셨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당시 텐트에서 함께 생활하던 가족들을 소개해 드렸고,
선생님은 가족들의 곁에서 대화도 나누고, 산책도 하며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실종 학생 어머니의 손을 잡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기억나네요.
선생님은 그렇게 안산과 팽목항을 오가며 가족들 곁에서 도움을 주고 계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이야기입니다.
"삼촌, 좀 도와주세요."
팽목항 담당 안산 공무원이 텐트에 찾아와 난감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더군요.
"무슨 일이신데요?"
"안산에서 OO학생 어머니가 찾아오셨는데, OO이를 내놓으라고 하세요."
상황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요, 어디 계시는데요? 일단 가시죠."
저는 앞장서는 공무원을 따라 달려가며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는 이미 4월에 안산으로 돌아가 장례 절차를 마쳤는데...'
학생 어머니가 있는 팽목항 대합실에 도착해 보니 OO학생 어머니는 다른 공무원들과 대화 중이셨습니다.
저는 어머님께 다가가서
"어머니, 저 기억하시죠? 팽목삼촌이에요."
"아~ 삼촌, 내 얘길 들어봐. 내가 TV를 보고 있는데 OO이가 팽목항에 있는 거야. 이놈들이 내 딸을 숨겨놓고 있다고, 분명히 여기 있다고..!!"
그 말씀을 하시는 어머님의 눈빛은 초점을 잃고 공허했으며,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흥분하신 어머니는 서 있던 곳 옆에 있는 텐트에 들어가 안에 있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집기 하나하나를 들어보고 구석구석 둘러보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그 마음을 알기에 당장이라도 소리치고 울고 싶었지만,
꾸역꾸역 울음을 삼켜야 했습니다.
'나까지 무너지면 안 되지.'
그렇게 팽목항에 있는 텐트 한 동 한 동을 둘러보셨습니다.
저는 어머님 뒤에서 안전을 살피며, 안산에 있는 같은 반 어머님께 전화했습니다.
"OO엄마가 여기 와서 아이를 찾는데 어찌 된 거예요?"
"팽목에 결국 갔구나. OO엄마가 아이 보내고 정신적으로 아주 불안한 상태야. 삼촌이 잘 지켜봐 줘."
저는 순간 난감했습니다.
계속 어머님 뒤만 따라다닐 수는 없었고, 정상적인 대화도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죠.
'어쩌지... 어쩌지... 아, 맞다! 선생님..!'
팽목항에 계시다가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셨기에 급하게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선생님, 좀 도와주세요."
자초지종을 들은 선생님은 알겠다고 하셨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오래지 않아 선생님은 팽목항에 도착하셨습니다.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오신 듯했습니다.
저는 OO학생 어머님이 있는 곳으로 선생님을 안내했고,
선생님은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의 말을 마음 깊이 담겠다는 듯 따뜻한 눈빛으로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샌가 선생님은 어머니의 팔짱을 끼고 걷고 있었고, 어머님도 차츰 안정을 찾으시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고,
선생님은 몇 걸음 뒤에서 걷고 있던 저에게 다가와 조용히
"어머님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신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다른 일 하셔도 될 것 같아요."
라고 말하고는 다시 어머님께 돌아갔습니다.
저는 그 말을 믿고 텐트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몇 시간 뒤, 선생님이 전화를 주시더군요.
"OO어머님이 안산에 저랑 같이 올라가시기로 했어요. 어머님이 팽목항에 오시고 싶을 때 언제든지 연락하시라고 연락처도 교환했고요.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막차 시간이 다 되어서 얼굴을 못 보고 가네요.
다음에 또 봐요."
저는
"고맙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는 말만..
그 뒤로도 선생님은 한동안 학생 어머니와 가족들까지 챙기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국어선생님~
진심으로 고맙고 또 고마웠습니다.
선생님 제가 표현이 서툴러 고맙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