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아파트 704호
오늘은 아침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체크하는 대기 중 미세먼지 수치가 며칠째 심각한 수준이었다. 역시나 송이의 숨소리는 고르지 않았다. 습도를 맞추고 공기청정기를 시간 단위로 체크했다. 혹시라도 천식발작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아침에 일어났을 때 송이의컨디션은 조금 나아져 있었다. 일기예보 앱에서도 미세먼지 수치가 조금 낮아진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송이를 등원시키고 레몬을 잘라 즙을 냈다. 따스한 레몬수를 만들어 놓고 남은 즙으로 레몬홍차를 마시면서 정신을 깨웠다. 베이글을 그릴에 넣어 돌려놓고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메일 건수는 평소와 다름없는데 첨부문서가 좀 많았다. 작업시간을 요구하는 분량이었다.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위층에서 의자를 당길 때 나는 드르륵 소리를 들었을 때 혼잣말로 기도했다.
제발! 제발 오늘은 좀 참아 줘.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잠시 후 무언가 꽈당 소리와 함께 울음이 터졌다. 연이어 뛰어가는 발소리를 듣자 한숨이 나왔다. 공을 던지거나 칭얼대는 소리는 일상적인 배경음이기에 참아 넘긴다지만, 위층에선 가구를 넘어갈 때나 날 법한 충격음이 자주 들렸다. 공간을 진동시키는 그런 소음은 보호자가 있다면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는 거였다. 그런데 상식을 폐기해야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위층에선 무시로 일어난다는 것이 문제였다.
재택근무자인 나는 오전에 주요 업무를 해결하고 있다. 회사 영업팀 담당자들에게 들어온 일본어 메일을 한국어로 번역하거나, 영업팀에서 일본 거래업체로 보내는 한국어 메일을 일본어로 번역해 주는 일이다. 오늘 작업한 메일 중 하나는, 첨부된 발주서 세부 내용만도 A4 9장이나 되는 분량이었다. 그걸 번역하고 내용상 오류를 검토하는 동안 맨발로 뛰어다니는 윗집 아이들의 발소리가 말들이 뛰는 소리로 들렸다. 자기 집을 정글로 착각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며 집중에 집중을 더하느라 참을 인자를 세 개씩 열 세트는 그렸을 거다. 거의 한계에 다다랐을 무렵 말발굽 소리가 TV 소리로 바뀌긴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음량이었다. 아이들을 귀머거리로 만들려는지, 아니면 볼륨 버튼이 망가진 걸 고치지 않고 사용하는지, 윗집에서 TV를 켜놓으면 집안이 왕왕 울린다. 아래층 엿 먹이려고 일부러 우퍼를 쏘는 건지도 모르겠다. 여럿이 야단스럽게 웃는 소리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단골소음 중 하나인 저 웃음소리는 같이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는 한 정말로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다. 사람을 미치도록 약이 오르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영문도 모르게 들려오는 웃음소리라는 걸 윗집 덕분에 알게 되었다.
저 집은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할 고민 따위는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전 내내 지끈거리는 걸 참고 번역에 집중하느라 몸에서 사리가 만들어질 지경이었다. 발주서는 단가 제안이 포함되어 있어서 실수가 있을 경우 책임영역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단순한 번역이 아닌 검증에 검증을 요하는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급한 순서대로 첨부문서를 번역해서 보내고 나니 멀미가 났다. 두통을 방치했을 때 이어지는 증상이었다.
휴, 저런 발암 캐릭터를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다니!
분노의 한숨이 밀려 나왔다. 무작정 신경을 끄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나의 인내와 집중을 비웃듯 소음은 수위를 높여갔다. 더 참다가는 진짜 암세포가 돋을 것 같아서 메일 업무만 마치고 쉬어가기로 했다. 달달한 사과 슬라이스에 양상추와 파프리카를 썰어 접시에 올리고 만들어 두었던 리코타 치즈에 발사믹 소스를 얹어 샐러드를 완성했다.
오븐에 구운 감자를 곁들여 가볍게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베란다 창으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냥 웬만한 울음이 아니라 자동차 급발진 소리 같은 울음이었다. 곧바로 애들을 야단치는 위층 여자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일단 베란다 창문부터 닫았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면 뭔가 큰일 났구나 겁을 먹고 뛰어 올라가 보겠지만, 이런 일이 다섯 달째 계속되면 코웃음밖에 안 나온다. 아마 누구라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오후는 지긋지긋한 레퍼토리를 이어갔다. 급기야 나는 장난감 미끄럼틀을 욕실로 옮겨 욕조에 붙여 놓았다. 그런 물건이 왜 욕실에 있냐고? 다 사연이 있다.
그것을 구입하게 된 목적 자체가 윗집 때문이다. 너무 시끄러워 견딜 수 없을 때 대걸레 봉으로 욕실 천장을 툭툭 쳤는데, 그럴 때마다 보란 듯이 더 시끄럽게 발을 구르고 다녀서 나도 궁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이다. 의자를 올려놓고 올라가기엔 낮고, 뭔가 안전한 장치가 필요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을 순 없어서 미끄럼틀과 목검을 구입한 것이다.
하지만 목검으로 치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게다가 목검을 휘두르기엔 내 손목이 너무 연약했다. 날로 더해가는 소음 때문에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고무망치를 결재하고 배달받은 것이 이틀 전이었다. 이런 면에서 내겐 어떤 예지능력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렇게 빨리 최악의 날이 닥칠 줄 예견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내는 소음 때문에 내가 망치를 휘둘렀다고는 생각하지 마시라. 종종 그 집 아이들이 괴물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나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한 번에 발악을 하면서 울도록 방치하는 것도 끔찍한데, 히스테리를 부리며 아이들을 야단친 뒤 애 엄마가 뭔가를 쿵쿵거렸다. 그것도 아이들이 잠잠해져서 휴우 한숨을 내쉴 때쯤에. 오전 내내 소음을 견뎌주었던 나의 인내심을 한 번 더 테스트하려는 듯. 그런 규칙적이고 기계적인 소리는 분명 아이들이 만드는 소음은 아니었다. 더 치밀하고 더 계산적인 소음이었다. 마치 타악기를 두드리는 듯한 리드미컬한 탁음인데, 일부러 층간소음을 유발하는 앱이 있는 건 아닐까 싶을만큼 약이 오르는 소리였다.
의도가 분명한 그런 소음에 당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모욕을 당하려고 작정했다면 모를까. 불편을 무릅쓰고 좋은 체하고 살면 더 자근자근 밟히게 되는 것이 인간관계인지라, 나는 더 이상의 인내는 사양하기로 했다. 생각을 실행할 때는 식기 전에 해야 하는 것이다. 욕실 미끄럼틀에 올라가 고무망치로 천정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윗집은 즉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계속 두드렸다. 팔이 아파서 더 이상 칠 수 없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