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웰니스족1>
1.평화는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웰니스아파트 704호

by 힐링가객



고무망치를 식탁에 내려놓고 정수기에서 얼음냉수를 받아 단숨에 들이켠다. 입천정을 강타한 냉기가 몸속에 얼음 골짜기를 내곤 빠져나간다. 정수리가 뻐근하다. 쩌릿한 머릿골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꾹꾹 눌러 지압을 하다가 주먹 쥔 손으로 관자놀이를 있는 힘껏 누른다. 그대로 마사지를 하다가 손을 떼자 얼얼함이 사라지면서 공중으로 떠오르는 풍선처럼 머리가 가벼워진다.


사방이 고요하다. 내가 원하는 평화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망치를 휘두른 팔이 후들거린다. 바람개비 모양으로 양쪽 팔을 한껏 휘젓고, 내친김에 스트레치 밴드를 양손에 감아쥔다. 팽팽하게 당긴 채 천천히 머리 위로 올리고 잠깐 멈춘다. 그 상태로 호흡을 깊게 들이쉬고 내쉰 다음 천천히 등 뒤로 넘긴다. 팔의 근육들이 아우성치면서 통증이 전이된다. 긴장했던 삼각근이 이완되고 스트레스로 움츠러든 승모근이 펴진다. 그러는 동안에도 귀는 온통 위층의 동정을 살핀다. 아무 기척이 없는 것이 불안하다.


사실 이런 평화를 지속해서 얻기 위해 가전제품들을 ISO AAA 등급으로 꼼꼼히 골랐다. 내 집에서 발생하는 청소기와 세탁기 소음은 물론이고 냉장고 에어컨 소리도 신경 쓰인다. 그런 이유로 머리를 말릴 때조차 헤어드라이기 대신 타월 장갑과 브러시를 이용한다. 자주 쓰는 소품도 마찬가지다. 믹서기에 소음방지 박스가 장착되어 있지만 별도의 소음방지 매트를 구입해서 최대한 소음을 줄인다는 말이다. 그런 걸 알기나 할까?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지끈대던 두통이 가라앉았다가 다시 시작된다. 진통제를 먹는 간단한 방법이 있지만 내 소중한 간에게 독한 약성분을 해독하게 할 수는 없다.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언제나 최선이다. 이 두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윗집 804호 덕분에 얻은 질환이다. 나는 웰니스 아파트 704호에 살고 있다. 입주한 지 5개월 7일째다.


화장대를 마주하고 침대에 걸터앉아 얼굴을 들여다본다. 미간과 콧날 옆으로 옅은 주름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보인다. 이웃 잘못 만난 덕에 얻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 주름이야말로 최근에 생긴 것이다. 주름을 보고 있으니 머리가 다시 지끈거린다. 문제가 많을 땐 우선순위를 정해서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 헛수고를 줄이는 일이다.


머리카락을 틀어 올려 밴드로 묶고 잔머리를 핀으로 단단히 고정시킨다. 그리곤 거울을 향해 앉아서 어깨를 크게 한 번 회전시켜 가슴이 열리도록 자세를 잡는다. 끝날 때까지 어깨가 움츠러들지 않도록 가슴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 자존심을 걸고 지켜내는 쇄골미녀 이미지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거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스마트폰에서 시간관리 애플리케이션을 불러 10분을 예약 설정한다. 이 중요한 시간에 그 무엇도 나를 방해할 수 없도록.


타이머가 실행된 걸 확인하고 양손으로 귀를 턴다. 잠을 깨우듯이 가볍게 여러 번 털고 나서 살살 귀를 잡아당긴다. 구겨진 꽃잎을 펴듯 귓불부터 귀 조가비까지 둘레를 골고루 매만진 후에 대이륜 안쪽부터 부드럽게 잡아당겨 펼친다. 자극이 가해진 귓바퀴에 서서히 열기가 올라온다. 손끝에 힘을 주어 혈점을 꾹꾹 누르자 순식간에 귀가 후끈후끈 달아오른다. 멈추지 않고 귓바퀴 아래 대이병 부위를 집중적으로 자극한다. 더 이상 만질 수 없을 만큼 아프다.


이쯤에서 멈추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눈까풀에 힘을 주고 점점 더 강도를 높인다. 한계가 올 때마다 색종이를 접듯 귓바퀴를 접는다. 앗! 소리를 삼키며 시계를 한 번씩 올려다보고, 화장대로 시선을 돌려 얼굴 표정을 확인한다. 강도를 높이면 무의식 중에 찡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굴에 새로운 주름이 생기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이크! V자로 기울어진 쇄골에 시선이 꽂힌다. 얼른 움츠러든 어깨를 펴고 목선을 곧추 세운다. 마사지가 끝날 때까지 쇄골이 수평이 되도록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등 근육이 긴장되면서 승모근이 올라오는 것도 거슬린다. 하지만 마사지를 멈출 수는 없다.


다시 한 번 손동작을 유지하면서 미간의 주름을 펴고 입 꼬리를 올려 평온한 표정을 만든다. 단순한 동작을 반복할 때면 유난히 더디게 움직이는 시곗바늘을 노려보며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다. 딱 그만두고 싶을 때 영어 일본어 중국어 라틴어로 천천히 카운트다운 하면서 인내심을 최대치까지 늘리는 방법들을 동원한다. 두통이 가라앉기는커녕 불편한 곳이 어디였는지 분간도 할 수 없게 얼얼하다. 인위적인 고통을 가할 땐 마조히스트가 되어야 한다. 지속할수록 쾌감이 커지는 거라고 주문을 건다. 뭐든 스스로 허락한 것에는 아량이 생기게 마련이니까.


드디어 알람이 울린다. 귀에서 손을 떼고 거울을 본다. 껍질을 벗긴 것처럼 붉어진 귀가 불덩이처럼 뜨겁다. 이 욱신거림이 가라앉으면 붉어진 귀도 본래의 피부색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즈음, 두통도 말끔하게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


위층은 아직 조용하다. 마치 폭탄이 터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조바심이 나지만, 그래도 살 것 같다. 새롭게 시도한 복수가 효과를 거둔 모양이다. 소음 없는 환경을 위해 가전에 비싼 값을 치른 보람을 이제야 누리는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