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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에게 듣는다

by 힐링가객

7월의 수로엔 물이 넉넉하다

호랑거미들이 늘여놓은 층층의 거미줄 아래

도랑 가득 번식한 억새와 여뀌는

맷새들의 숨바꼭질에 간지러워 움찔,


도랑가 부서진 시멘트 틈으로

망초 비름 질경이 돋았다

물을 비껴난 환경을 탓하는 건

해석자인 인간의 몫인지


그늘이 지든 쓰레기가 덮치든

식물은 저항하는 법이 없다

오는 바람을 피하지 않고

폭우에 엎어졌다 햇빛에 일어설 뿐이다


계절에 쫓겨 쇠락하는 동안에도

발등에 칼얼음이 박혀와

생을 포기하지 않는 잡초의 철학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봄의 강추위에 배짱좋게 싹 내밀고

하루하루 제 몫의 성장으로

꽃 피울 그 때를 위해

줄기차게 꿈꾸는 잡초가,

오늘은 내 스승이다


진퇴양난 내 인생

인연의 늪에 익사하거나 고립되면 어떡할지

우연히 발길 머문 곳에 붙박이가 되어도 좋은지

잡초에게 묻는다


잡초가 노래한다

너무 익숙해서 서러운 가사

누구에게나 가능한 희망을

뺏기지 말라고


때가 가든지 오든지

필생을 다해 열매나 맺으라고

생명이 머무는 동안 존재가 할 일이란

그 뿐인 거라고


불어오는 바람에 흐느끼는 것이

잡초인지 나인지

고개를 주억이며 화답하는 것이

나인지 잡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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