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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그와 같기를!

by 힐링가객
입추가 지났다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가 영향력 있는 절기인 모양이다. 바로 그 날부터 기온이 달라진 걸 감지했는데, 하루 하루 선선해져서 진짜 여름이 가버리나 싶어 시원섭섭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지루했던 장마도 더위도 갈 때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쓸데없이 그 지루함을 기억하는 건 겨울이 무서운 내 사정일 뿐.


열대야를 통과하는 동안 에어컨 콘센트 과열사고 예방과 폭염에 관한 안전문자를 받았다. 지인들과 만나면 더위타령이 인사였다. 쿨 매트 때문에 온 가족이 거실에 모이자 반려동물까지 합세해서 가축적인 밤을 보낸다는 식이었다.


성격만큼이나 삶도 시원스레 경영하는 친구가 계절의 길이를 음절로 표현한 적이 있었다. 가을은 순식간에 지나가니 갈, 겨울은 길어서 기여어우을, 봄은 찰나에 스치듯 보여주니 봄, 여름은 얼음 없이 지낼 수 없어서 이여얼으음 이라고.


가을과 봄은 한 달도 안 되고, 극한의 겨울과 극서의 여름이 각각 다섯 달이라 견디기 힘들다는 엄살이었다. 그 말에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 더위도 추위만큼 힘든 걸 보면 몸이 나잇값을 하는 모양이라며.


매미의 부활


여름이 정점을 찍었다는 걸 알리는 확실한 표지가 있다. 처음엔 반갑지만 계속 듣고 있으면 귀가 먹먹해지는 매미의 합창이다. 부지런한 불청객의 존재감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기에 소음에 반응하여 귀가 열리면 더 이상 잠을 청할 수 없다. 그래서 밤마다 창가를 서성이며 기울어 가는 여름을 환송한다.


새벽에 시원한 바람을 기대하며 창문을 열면 매미 소리가 먼저 들어온다. 몇 날 며칠 들어서 백색소음이 되어 더 이상 신경이 쓰이지 않을 즈음 그 소리는 귀뚜라미 소리에 섞여들어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가을이 깊어지면 풀벌레 소리로 온전히 대체된다. 그대로 잊혔다가 다음 해 여름이 되면 요란한 존재감으로 부활한다.


소멸할 땐 흔적이 없지만 우렁찬 등장으로 생애 기간 열정을 불태우는 매미가 경이롭다. 그 무언가를 죽기까지 할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이다. 인생도 그와 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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