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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은 그날의 폭우

by 힐링가객
마른장마도 있다

장마는 보통 질척이는 비를 연상시키지만 올해는 좀 달랐다. 7월 초 마른장마가 끝났다는 뉴스에 농가의 가뭄이 함께 보도되었다. 아이러니하게 장마가 끝난 다음 주부터 연일 습도가 높고 비도 잦았다. 지인들과 만나면 장마의 기준이 뭐냐고 따져 물으며 한국도 아열대성 기후로 변해간다고 걱정할 정도였다.


곧바로 몰려온 7월의 태풍은 국지성 돌발폭우였다. 중부와 남부 지역에서 느닷없는 재난으로 가옥이 침수되고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8월에도 장마와 태풍이 지나갔고 남부 지역에 침수가 있었다. 당해보지 않고는 현장의 참상을 짐작도 할 수 없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무서운 물난리의 기억 때문에 그런 날이면 가슴이 옥죄어 잠을 설친다.


며칠 전에도 집중호우를 알리는 문자를 받았다. 하루 종일 습도가 높아서 날씨 앱을 확인했지만 확실한 시그널은 없었다. 저녁 무렵이었다.

“올 거면 그냥 쏟아지는 게 나은데, 습도가 미쳤어요.”

집에 돌아온 아들이 투덜댔다. 비 맞은 것처럼 옷이 젖어있었다.



여름엔 메밀이죠!

일찍 퇴근한 남편이 새로 개업한 메밀 음식점에 가보자고 했다. 더운데 불 피우지 말라는 배려였다. 휴대폰으로 음식점의 메뉴를 확인했다. 입맛 없는 여름에 가볍게 먹기에 딱 좋을 것 같았다. 씻고 나온 아들에게 메밀은 어떤지 물어봤다.

"흠 여름엔 메밀이죠!

반응이 외외였다. 아들도 메밀을 좋아해 태국에 있을 때 일본 음식점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곤지암 외곽에 자리 잡은 <시골막국수와 옹심이>는 젊은 감각으로 심플하게 꾸며져 있었다. 남편은 가장 좋아하는 물 막국수를 골랐다. 아들은 돈가스를 골랐다. 메밀 타령을 해서 낯설었던 아들이 내가 알던 아이로 돌아온 것 같아서 웃었다. 나는 좋아하는 비빔막국수 대신 옹심이 수제비를 골랐다. 그리곤 셋이 의기투합하여 메밀만두 한 접시를 추가했다.


음식과 함께 앞 접시를 충분히 줘서 조금씩 덜어 맛을 보았다. 음식들은 기대 이상이었다. 감자옹심이에 메밀수제비를 넣은 구수한 들깨탕도 좋았고, 남편의 물 막국수도 면이며 육수 맛이 만족스러웠다. 메밀반죽으로 빚은 피에 고기와 야채를 가득 넣은 만두도 맛의 조합이 담백하고 깔끔했다.


"수제돈가스라 육즙도 적절하고 맛있는데, 소스가 좀 달아서 그게 아쉬워요. 메밀이 아무래도 어른들 음식이라 아이들을 위한 메뉴인 것 같아요."

아들이 말했다. 내 입맛에도 그랬다. 생각해 보니 가족이 함께 하기에 메밀 음식은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추어탕 집에 돈가스가 있는 것처럼 메밀 집에도 있을 만한 메뉴였다.



폭우 예감

“여기서부터 걸어갈게요.” 저녁을 먹고 나오자 아들이 말했다. 집까지는 꽤 먼 거리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당장 비가 쏟아진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숨을 들이켜자 젖은 흙내가 느껴졌다.


“비 올 것 같은데? 집 근처에서 걷는 게 어때?” 내가 말하자 남편도 한마디 거들었다. “산책로에서 내려줄게, 우산도 가져가.”


마지못해 차에 오른 아들은 신호등에 걸리자 내리겠다고 했다. 마침 갓길이라 가능한 위치였다. 아들이 내리자마자 남편이 창문을 열고 우산 가져가라고 외쳤다. 하지만 민첩한 아들은 이미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차를 출발시키고 나는 멀어져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이삼 분 후 다음 신호에 걸렸을 때 차장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많이 올 거 같은데. 아침에 인천 청라 갔다가 길이 침수돼서 겨우 빠져나왔어.”

남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빗줄기가 세졌다. 곧바로 아들에게 전화했다. 받으면 돌아가서 태워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체 왜 저를 생각해서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을까! 아들을 향한 책망이 마음을 뚫고 날아갔다. 빗줄기는 굵어져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집에 들어와서 창문을 닫고 뉴스를 검색하고 있는데 아들이 전화를 했다.

“우산 없어서 어떡해?”

“저 지금 삼리예요. 어차피 다 젖어서 필요 없어요.”

벌써 삼리라고? 나는 놀랐다. 전속력으로 달려야 올 수 있는 거리였다.


폭우를 뚫고 달리는 아들을 생각하자 웃음이 나왔다. 건장한 성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아들이라는 이유로 보호본능을 발하는 내 모습도 우스웠다. 한참 후에 아들이 물을 줄줄 흘리며 들어왔다. 그가 샤워를 끝내고 나왔을 때 비는 그쳐있었다.



그래서 또 배운다

다음 날 아들은 장딴지가 무겁다며 운동을 하루 쉬었다. 오랜만에 파워러닝 하면서 시원한 비를 맞아서 좋았다고 했다. 아들의 말을 들으면서 할 말을 잃었다. 얄궂은 그날의 폭우는 내 마음 속에 오랫동안 쌓아올린 관념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남편과 나는 인생의 경험에서 비를 예감했지만, 아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반면 폭우를 만난 아들은 파워러닝을 하면서 시원함을 느꼈다. 부모의 걱정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또 배운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상황에 따라 곤혹과 딜레마를 경험하게 되더라도 그건 아들의 선택이고 자유였다. 그 일의 책임은 아들이 지는 것이고, 그 일을 통해 얻는 인생의 해석도 아들의 것이었다. 지금까지 외국에서 그렇게 성장해 온 아들이었다. 잠시 부모 곁에 머문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내 관점은 오직 나에게만 유용하니 함부로 간섭하거나 강요하지 말자. 시행착오를 줄여주겠다고 나서거나 권하지도 말자. 그저 아들의 경험과 선택을 존중하자. 내 관점을 정리하고 아들을 바라보자 십 년이 넘도록 타국에서 혼자 잘 살아낸 아들이 새삼 듬직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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