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아파트 704호
징그러운 주말이다. 내가 특히나 금요일을 혐오하게 된 것은 주말마다 윗집에서 잔치가 벌어진다는 징크스 때문이다. 불금 불토를 외치는 방송의 영향력으로 저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말처럼 휙 여행이라도 떠나면 좋았을 텐데, 불행하게도 무계획이다. 낮이 아니라 저녁에 즐길만한 것은 없을까 찾아봤지만 건질만한 아이디어가 없다. 집 근처에 있는 키즈 카페들을 검색해서 예약현황을 살펴본다. 금요일 저녁이라 예약이 매진상태다. 탈출할 곳이 없다. 겨우 메일 번역 업무만 해결하고 무력감에 빠져 송이가 올 때까지 마냥 늘어져있었다.
오늘도 예외 없이 윗집에 모임이 있는 모양이다. 여러 발자국 소리가 주방 쪽에서 둥둥거리고, 화장실 물소리도 잦다. 길게 이어지는 소리는 주방에서 나는 물소리인지도 모른다. 내 기준에서 보자면 집에서 손님을 치른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친구나 지인이 하나 둘 찾아온다면 커피 정도는 집에서 대접할 수도 있지만, 집에서 만든 음식을 초대 손님과 나눠먹는다는 건 어쩐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음식의 간도 스타일도 같을 리가 없으니 내가 만든 음식을 강요하기보다는 대중화된 음식점에서 각자 맘에 드는 것을 먹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는 라이프스타일이 다른 윗집 여자에게 존경스러운 마음도 든다. 무슨 열정이 뻗쳐서 그렇게 잔치를 시도 때도 없이 벌이는지. 그러고도 체력이 남아나는지. 다른 경제활동 따위를 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상식적 범위로는 불가해한 캐릭터가 분명하다. 사내아이들의 발망치가 머리를 쿵쿵 짓밟는다. 저 아이들이 자라면서 발망치 소리도 진화할 것이다. 남편 말대로 어쩌면 이사를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급한 문제에도 감정적 흥분에 빠지지 않고 매우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남편의 방법이 현실적으론 타당할 것이다. 다만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 이사를 한다고 해도 손들고 후퇴하듯 순순히 나갈 순 없다. 이 집에 이사 오는 누군가에게 층간소음 피해를 넘겨줄 수는 없다는 말이다. 내가 받은 피해를 응징하고, 누군가 받을 피해도 싹을 도려내고야 말 것이다. 그래야 직성이 풀려 어딜 가든 발 뻗고 잘 수 있을 테니까.
결국 오늘도 VIP를 연구하고 있다. 층간소음 사례들을 서핑하다가 피해자 쉼터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소음문제를 고발할 정보를 찾던 중 발견한 사이트였다. 나처럼 고통받는 이들이 모인 온라인 쉼터에는 자신들이 당한 피해사례를 토로한 회원들의 글이 많았다. 어떤 글에는 공감하거나 충고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려있었다. 두어 시간 동안 몰입해서 읽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한 경우는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또 남의 댓글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한탄과 험담이나 하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한심한 피해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걸 확인했다. 솔직히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되긴 싫었다. 피해자도 모자라 패배자 코스프레나 하는 신세로 전락할 순 없었다. 쉼터에서 얻은 것이 있었다면 국가소음정보시스템을 자세히 알게 된 거였다. 이웃사이센터와 환경분쟁위원회 정보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즉시 D-day를 정했다.
노트북을 덮으려다 막연한 기대로 J의 이름을 검색했다. 웹 공간에는 온갖 자료와 쿠키들이 널려있기 때문에 J의 소식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추적질로 낚시한 썸네일 중에 “부부 연주자의 환상적 호흡”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클릭하자 놀랍게도 유튜브 동영상이 연결되었다. J의 연주 동영상? 부부? 의문이 연쇄적으로 치솟았다. 가슴이 뛰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더듬어가던 중 꽤나 명성을 얻은 피아니스트와 결혼했다는 것을 사실로 확인할 수 있었다. J는 재기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처음 보았던 썸네일로 돌아가 J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았다. J는 여전히 말랐고, 시선을 압도하는 매력을 간직하고 있었다. 무대의상을 차려입고 완벽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J가 오직 나만을 위해 연주하던 어느 밤이 떠올랐다.
J는 당시 사회봉사단체에서 주최한 라이브 공연에서 첼로 연주자 공석을 메우기 위한 유급단원으로 참여했다. 연주회가 끝나고 함께 뒤풀이 장소에 갔다가 빠져나왔다. 가을의 단풍이 한창인 마로니에 공원은 따스한 조명으로 아름다웠다. J는 첼로와 나를 껴안고 공원을 산책했다. 그러다 갑자기 벤치에 자리를 잡더니 첼로를 꺼내서 즉석 연주를 했다. 가볍게 한곡을 연주하는 동안 풍성한 첼로의 선율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가을밤은 연인들을 위한 뜨거운 무대였기 때문에 모인 사람들도 거의 커플들이었다. 그들의 귀에 들릴 만큼 큰 소리로 J가 말했다.
“지금부터 연주할 세레나데 메들리를 사랑하는 소미에게 바칩니다.”
갑작스러운 J의 퍼포먼스에 모여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축하해 주었다. 깊은 숨을 들이쉰 J가 현 위로 활을 미끄러뜨렸다. 눈을 감은 J는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있는 듯 몰입했다. 가슴판을 공명하며 저음의 첼로 선율이 울려퍼졌다. 귀에 익지만 제목은 알 수 없는 곡들이 연주되었다. 강약의 음계를 타고 절정을 향해 치달았을 때 연주가 끝났다. 활을 떼고도 한참 동안 현이 울렸다. 솜털이 일어서는 소름돋는 연주였다. 그 사이에 더 많이 몰려든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치는데, 첼로를 내려놓고 내게 다가온 J가 나를 번쩍 안아 올리곤 춤을 추었다. J가 상당히 오랫동안 발레를 했었다는 걸 실감한 날이었다. 조각처럼 균형 있는 몸의 근육도 발레를 지속하며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 날이었다.
J의 어머니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외아들 J의 예술적 탤런트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J는 유치원 시절부터 발레를 배웠고 청소년기에는 발레리노로 무대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점점 더 클래식에 몰두했고 특히 현악기에 심취했다. 최종적으로 첼리스트가 되기까지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배웠다고 했다. 당시 J의 엄마가 운영하던 일식집은 비싼 임대료에도 꾸준히 자리를 지킬 만큼 맛집으로 명성이 높았고 사업가들의 접대 장소로 이용될만큼 수완이 좋았다.
J와 사귈 때 J의 어머니를 뵈러 간 적이 있었다. J에게 유별난 정을 드러낸 어머니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나를 칭찬하셨고 반가워하셨다고 J가 전해줬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 이미 J와의 균열을 예견한 건지도 몰랐다. 평탄할 수 없다는 불길한 예감 같은 것. 그 예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J의 어머니는 쓰러진 후에 희귀한 질환들을 거치면서 본인의 치료비로 가진 것을 알뜰히 까먹어 버렸다. 그것이 그녀의 불행이었고, J의 불행이었고 나의 불행이었다.
남편의 전화를 받은 건 혼자 저녁을 챙겨 먹은 후였다.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어서 소리가 울리기 전에 바로 통화를 수락했다. 기민한 나와는 달리 별 용건이 없는 듯 남편은 날씨타령을 하다가 송이랑 여행은 어땠냐고 물었다. 잘 놀았고 별다른 이슈는 없었다고 말해주었다. 잘 다녀왔으면 됐다고 하면서 송이를 바꿔달라고 했다. 자고 있다고 했더니 그럼 나중에 다시 걸겠다고 하면서 덧붙였다.
“시골에 큰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내가 못 가니까 엄마가 당신이라도 왔으면 하셔. 어차피 당신도 혼자 가긴 어려울 테니까 안부전화나 드려.”
즉시 피가 통하지 않는 것처럼 답답증이 몰려왔다. 알아서 하겠다고 대답하고 통화를 끝냈을 때 진짜로 체기가 느껴졌다. 상황을 피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도 왜 변명을 늘어놔야 하는지, 그래야만 된다는 것이 어이없고 귀찮을 뿐이었다. 나는 최대한 빨리 의무에서 벗어나려고 시어머니의 번호를 찾았다.
전화를 받은 시어머니가 노기를 누른 목소리로 큰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전해주었다. 송이 아빠가 올 수 없으니 나라도 잠깐 다녀갔으면 한다는 거였다. 상가를?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큰아버님의 죽음이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강요할까! 난감하고 불쾌해서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최대한 조심스럽게 상황을 설명했다.
“어머님, 송이 아빠한테 소식 듣고 연락드렸어요. 그런데 송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바쁜데 괜히 걱정할까 봐 송이 아빠한텐 말하지 않았는데, 퇴원하려면 며칠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가야할 자리인데 아이가 아파서 어쩔수 없네요. 죄송하지만 메시지로 부고를 보내주시면 제가 부조금 송금할게요.”
시어머니는 송이의 건강이 또 안 좋아서 아무 연락도 하지 못했던 거냐고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송이가 어떤지 장례를 치르고 한 번 보러 오겠다는 말에 오히려 내가 조금 허둥거렸다. 부고는 송이 에비가 처리하게 두라고 하면서 송이나 잘 돌보라고 오히려 당부했다. 말은 투박스럽게 해도 시골 노인네는 참 단순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이제 한동안은 조용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휴대폰이 또 울렸다.
“에미냐? 거 다른 게 아니라 원기회복에 복분자즙이 그렇게 좋다더라, 내 그거 한 박스 보내마. 에미 너도 건강을 좀 챙겨야지. 하루 한 포씩 꼭 챙겨 먹어라.”
나는 내키지 않지만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노인이 하는 말에 대꾸하면 상황만 복잡해질 뿐이라 무조건 수용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받아서 버리면 그만이니까. 시어머니는 잘 챙겨 먹으라는 당부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시한폭탄도 아니고, 이런 용건으로 사람을 두 번씩이나 허둥거리게 하는가. 이렇게 스트레스받는 관계를 의무적으로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걸까? 서로 간섭하지 않고 살아가는 서양인들의 합리적인 모습이 부러울 뿐이다.
어쩌면 해외에 나가서 살아야 하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나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나의 버킷리스트인 동유럽을 떠올린다. 프라하를 중심으로 주변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1년씩 살아보는 것이 내 꿈이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시원하다.
“송이 병원 안가떠요. 송이느 아프지 아나요.”
갑자기 들린 말소리에 돌아보니 송이가 서있다. 통화에 집중하느라 방에서 자던 아이가 주방까지 오는 기척을 알아채지 못한 거였다. 언제부터 서있었는지, 어디서부터 들었는지 가늠이 안 되는 말끔한 얼굴이다.
“어? 송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언제 일어났어?”
송이 쪽으로 돌아앉아 안아주려고 품을 열었지만 미동도 없이 내 얼굴을 바라볼 뿐이다. 표정이 없는 눈빛이 낯익다. 패러글라이딩을 출발하기 직전의 그 눈빛이다. 5살 아이의 눈빛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차가운, 허를 찌르는 눈빛이다.
나는 일어나 송이의 저녁을 차린다. 감자와 버섯을 갈아서 끓인 수프에 아기 카레로 간을 맞춘 소고기 야채볶음이다. 말없이 저녁을 먹고 있는 송이가 부쩍 멀어진 느낌이 든다. 정서적 저항이 느껴진다.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아이에게 설명해야 하는데, 어쩐지 그러고 싶지 않다. 아이 앞에서조차 구구절절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면 비루해질 것 같다. 그건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이럴 땐 기분을 전환해 줄 만한 것이 필요하다. 금요일, 밤 시간에 아이와 갈만한 곳이 있는지 스마트폰 포털사이트에 키워드를 변경해서 다시 한번 찾아본다. 쇼핑센터 체험 코너도 끝나서 이 시간엔 동물카페 밖에 없다. 동물이 풀어져 있는 곳이라니 생각만 해도 근지럽다. 하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흥분해서 좋아하던 송이의 얼굴이 생각난다. 나는 고민에 빠진다. 어쩌면 오늘은 극적인 화해가 필요한 날인지도 모른다. 송이의 곧은 성격을 풀어주고 오해를 해소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사실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동물과 함께 사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혐오스럽다. 남편과 격하게 싸웠던 날이 생각난다. 베트남으로 떠나기 직전, 신나는 이벤트를 준비했다며 남편이 앞장섰다. 개봉박두를 외치며 데려간 곳이 동물카페였다. 유니폼을 입은 나이 많은 직원이 송이를 향해 입구에 걸린 동물사진들을 가리켰다. 안에 들어가면 사진에 있는 동물친구들이 다 있으니까 재밌게 놀라고 했다. 송이가 흥분하면서 아빠의 손을 잡고 카페 안으로 질주했다. 남편 나름으론 추억을 만들어주려고 준비한 거여서 나는 터져 나오려는 불평을 꿀꺽 삼켰다.
카페는 음료를 주문해 마실 수 있는 공용 공간과 동물들의 종류대로 분류해놓은 개별공간들로 나뉘어 있었다. 입장료를 내고 커피와 주스를 받는 사이에 송이와 남편은 사라졌다. 테이블을 잡아서 음료를 내려놓고 송이를 찾으러 갔다. 첫 번째 조류가 있는 방은 비릿한 냄새가 비위에 거슬렸다. 앵무새가 송이의 팔에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이 안고 있는 햄스터를 보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다가가서 음료를 먹고 나서 놀자고 말했다. 남편은 송이가 좋아하는 거 안 보이냐고 하면서 신나게 놀 땐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 거기서부터 기분이 상했다. 아이에게 욕구만 따라가게 하는 것이 올바른 양육은 아니었다. 더구나 미생물 덩어리인 조류를 송이가 맨손으로 만지고 있었다. 남편의 품을 입으로 더듬는 햄스터도 마찬가지였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햄스터를 안고 있던 품에 송이를 안을 거라고 생각하니 토할 것 같았다. 이름만 다를 뿐 결국 쥐새끼 아닌가 말이다. 나는 다급해져서 재촉했다.
“일단 그거 내려놓고 손부터 씻는 게 좋겠어. 송이도 그렇고, 음식 먹으면서 송이한테 주의할 것들을 얘기해 주고 나서 놀도록 하는 것이 순서 아니야?”
남편의 품에 있는 햄스터를 가리키며 말했지만 남편은 듣지 못한 것처럼 태평하게 말했다.
“우린 천천히 먹을게. 동물카페에 먹으러 온 거 아니잖아. 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송이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조금 놀다 씻어도 문제될거 없잖아? 애한테 어디 한 번 물어나보자. 송이야 음료수 먹고 와서 놀까?”
남편이 묻자 송이가 고개를 저었다. 익숙한 분위기였다. 내가 송이에게 손 씻고 주스랑 빵 먹고 다시 놀라고 한 번 더 이야기하자 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구원을 요청하듯 송이가 남편에게로 다가갔다. 그 바람에 송이의 팔에 있던 앵무새가 날아갔다. 남편이 햄스터를 내려놓고 송이를 안아 올렸다. 순간 나는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햄스터를 안고 있던 품을 털어내지도 않고 아이를 안다니. 정말 미친 거 아닌가? 내가 뭐라고 했는지 생각도 나지 않지만 그 순간에 나는 정말 공포스러웠다. 동시에 송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이 송이를 안고 조류 방에서 나가더니 카페 공용공간을 통과해서 입구로 나갔다. 뒤따라 나온 나를 돌아보고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남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서늘했다. 나는 동물카페의 위생문제와 조류접촉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송이의 호흡기 질환에 좋을 턱이 없다고. 그러자 남편이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송이에게 해가 된다는 내 말을 반박하는 대신 송이에게 이르는 거였다.
“우리 딸, 얼른 커서 엄마한테서 독립해야겠다. 엄마가 안 된대. 송이를 위해서 그러는 거니까 이 담에 건강해지면 다시 오자.”
송이가 남편의 품에 얼굴을 문지르며 울었다. 나는 거의 사색이 되었다. 방금 전까지 햄스터가 입을 문지르던 곳이 아닌가. 나는 남편에게서 송이를 떼어놓으려고 했다. 그럴수록 송이는 더 남편의 목을 끌어안으며 나를 밀어냈다. 우리 부부에게 뭔가 갈등이 생길 때마다 벌어지는 풍경이었다. 그건 정말 해석이 안 되는 아이러니였다. 엄마인 나를 밀어내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자의 품에서 동지애를 느끼는 다섯 살 아이라니.
씁쓸한 마음으로 동물카페 후기들을 눈으로 훑으며 생각해 보았다. 그때 사실 앵무새를 만지고 햄스터를 안았던 남편 품에 얼굴을 문질렀지만 송이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동물카페가 생각만큼 위험한 건 아닌지도 몰랐다. 문제가 있다면 벌써 방송에서 떠들어댔을 거고, 카페가 유지될 수도 없었을 거였다. 이성적으로 분석하니 답이 나왔다.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면, 그리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면 못 갈 것도 없었다. 좋아하는 동물들 틈에서 기분이 풀어지면 송이도 내 말을 들어줄 거였다. 남편이 없으니 어쩌면 오늘은 나와 동지애를 다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송이가 먹은 밥상을 치우면서 송이에게 동물카페에 가고싶냐고 물어보았다. 송이는 대답이 없었다. 돌아보니 송이가 또 낯익은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송이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엄마양 아빠양 싸웠어. 엄마느 왜 화났어? 송이 동물카페 아빠양 갈 거야.”
순간 뜨악해졌다. 아이의 저항이 버겁게 느껴졌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인데 너한테까지 변명을 해야 하나 싶어 비루해지는 마음을 간신히 다잡았다. 나는 동물카페 가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송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송이야, 시골 할머니댁 생각나? 그 마을에 사는 친척 중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죽었어, 밤에 운전하고 가는 것이 무서워서 송이가 아프다고 거짓말했어. 그러면 안 되는데 엄마 너무 무섭고, 송이를 혼자 두고 갈 수도 없어서 그랬어. 엄마가 거짓말한 것 용서해 줄래?”
송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루한 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송이가 웃지 않는 눈으로 나를 한참 동안 보았다. 아이의 눈빛이 나를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았다. 겨우 5살밖에 안된 아이 앞에서 수치를 느꼈다. 예감이 무서운 건 들어맞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