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웰니스족 1> 8.비현실적인 활공같은 인생
-웰니스 아파트 704호
오후시간 내내 늘어져 자는 송이가 불길하다. 주말에 조금 멀리 나가서 이틀 밤을 보내고 온 것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여행을 계획하고 감옥이 되어버린 집에서 탈출했다. 송이와 함께 단양으로 달려가 강물이 보이는 리조트에서 묵었다. 근처에 있는 민물고기박물관이 꽤나 후기가 좋았다. 예약한 숙소 컨디션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초저녁엔 시끄러웠다. 하지만 밤이 되자 조용하고 캄캄해서 암막커튼 없이도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토요일 아침에 창문을 열자 산기슭을 활공하는 패러글라이딩이 보였다. 맞은편 산꼭대기가 근원지였다.
해맑은 아침에 산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급 하강을 하다가 패러글라이딩이 펼쳐지면서 다시 위로 솟구쳤다가 공중 활주하는 모습이 환상적으로 보였다. 가슴으로 신선한 바람이 훅 들어차면서 새로운 기분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었다. 즉시 패러글라이딩이 가능한 연령을 찾아보았다. 파일럿과 함께하는 2인승 텐덤 비행의 경우 사실상 4세 이상이면 가능했다. 다만 건강하다는 전제가 있어야했다. 나는 우선 송이의 의향을 물어보기로 했다.
조식 뷔페를 먹고 송이에게 약속한 민물고기 박물관에 갔다. 송이는 신기할 정도로 물고기가 헤엄치는 걸 좋아했다. 남편이 처음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송이를 데려갔을 때 송이가 흥분해서 노는 것을 보고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 근교의 물고기 전시장을 찾아다니며 구경시켰다. 사실 송이는 쇼핑센터 수족관만 보여줘도 좋아했다. 특히 네온테트라를 좋아해서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은 듯 집중했다. K호텔 수영장에 닥터피시 체험장은 송이가 좋아하는 곳이었다. 닥터피시가 다가와 물 속에 담근 발이나 손가락을 쫑쫑 쪼으며 간질이는 걸 중독인가 싶을 정도로 재미있어 했다.
남편이 송이를 위해 수족관을 사왔을 때 나는 경악했다. 남편은 수조 장식품들을 열심히 사날랐다. 송이와 남편이 의기투합해서 수족관을 꾸미는 동안 애써 태연한척 수족관을 관리했지만 테트라 40마리와 구피 10마리가 모두 죽어나가는 데 석 달도 걸리지 않았다. 남이 키우는 것을 보는 것과 내가 키우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죽은 물고기를 송이가 보기 전에 몰래 건져내느라 아침마다 수족관을 점검하고 비린내가 진동하는 수족관을 닦아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레오퍼드 구피가 떠오른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 송이가 보고 말았다. 남편이 회사 연수에 참여하고 있을 때여서 모든 뒷처리를 내가 떠맡아야만 했다.
우는 송이를 달래며 물고기가 가족과 떨어져서 죽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불쌍하니까 다시는 물고기를 데려오지 말자고 약속하고 대신 커다란 수족관에 가서 행복한 물고기 가족들이 함께 잘 지내는 모습을 구경하자고 설득했다. 송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온라인 중고 장터인 케일마켓에 수족관을 찍어 올렸다. 새것이나 다름없는 수족관은 반 값에 두 시간이 못되어 팔렸다. 입금이 된 걸 확인하자마자 수족관을 포장해서 집 앞 편의점에 배송접수를 했다. 자잘한 장식품들은 덤으로 보내줬다. 수족관을 눈 앞에서 치워버리자 비린내도 사라졌다. 이틀 후에 수족관을 받은 사람이 고맙다며 설치한 사진을 보내왔다. 서운해하는 남편에겐 사회봉사 단체에 보냈다고 둘러댔다. 수족관을 관리하는 것이 오히려 위생상 좋지 않고 생물이 죽어나가는 것이 송이의 정서에도 좋지 않다고 설명했더니 남편도 더이상 다른 주장은 하지 않았다.
기대 이상으로 민물고기 박물관은 훌륭했다. 종류가 정말로 다양했다. 송이는 작고 무늬가 예쁜 물고기들을 좋아했다. 특히 물고기를 직접 만져볼 수 있는 터치 풀에 손가락을 담그고 재빨리 헤엄쳐 달아나는 물고기를 따라다니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점심을 먹고나서 패러글라이딩 예약을 하기 위해 카페산으로 올라가면서 송이에게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카페에 앉아 망고크러쉬와 앙버터빵을 먹으며 활공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조금 무서워하는 송이를 설득해서 다음날 패러글라딩을 하기로 약속하고 예약까지 마쳤다. 단양엔 갈 곳이 꽤 있었는데, 동굴처럼 환경이 열악한 곳은 송이에게 위험할것 같아서 포기했다. 사진 포인트가 많은 단양 팔경을 드라이브 하고는 다음날 일정을 위해 숙소에 돌아와 쉬었다. 잠들기 직전, 송이는 패러글라이딩이 무섭다고 말했다.
“무서우면 안 해도 괜찮아. 송이를 위해서 오늘 민물고기박물관에 갔지? 이번 여행에서 패러글라이딩 하는 것이 엄마의 소원이니까 하기 싫으면 송이는 혼자 숙소에 남아있거나 카페산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돼. 맛있는 것 먹고 있으면 엄마가 혼자 하고 올게.”
내 말에 송이가 울먹울먹 하더니 품으로 파고들면서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송이느, 혼자 있기 시러요. 그래셔어 엄마양 가치 할래요.”
다음날 송이는 저항 없이 슈트를 갈아입고 안전교육을 받았다. 활공장으로 갔을 때 내 목을 꽉 끌어안으면서 한 번 더 무섭다고 했다. 나는 파일럿아저씨가 안전하게 태워주실거라고 안심시켰다. 송이가 먼저 출발했다. 눈은 나를 보고 있는데,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그렇게 차가운 눈빛을 본 적이 없었다. 비행은 어이없을 정도로 짧게 끝나버렸다. 처음 하는 패러글라이딩 체험이라 송이에게 무리하지 않은 일반비행 코스로 골랐는데, 송이의 눈빛이 신경 쓰여 사실 뭘 느낄 새도 없이 송이의 위치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송이와 함께 픽업트럭을 타고 카페산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이 정말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인생은 비현실적인 활공과도 같은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을 뿐이었다. 비현실적인 활공같은 인생이라니,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생각도 잠시, 그 때부터 송이가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파일럿이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송이에게 장난을 걸면서 챙겨주었지만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오후에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송이는 베이비시트에 앉은 채 혼곤하게 잠들었다. 운전하면서 백미러에 비친 송이를 확인했다. 휴게소에서 깨워 화장실에 데려갔을 때 점심으로 먹은 음식을 모두 토했다. 여행에 나선 것을 후회하게 만들 정도로 난감했다. 불안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잠든 송이는 도착할 때까지 깨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죽 집에 들렀다. 저녁으로 송이에겐 소고기 야채 죽을 먹이고 나는 버섯 죽을 먹었다. 송이를 재우고 나도 일찍 자려고 누웠다. 하지만 윗집에서 들리는 물소리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이틀 밤을 숙면하게 해주었던 단양의 낡은 리조트가 그리울 지경이었다. 거실 쪽 화장실 문에 수건을 고여서 닫아놓고 잠을 청했다.
하마처럼 물을 써대는 윗집의 수도세가 얼마나 나오는지 관리비 명세서를 받을 때 한 번 체크해보고 싶다. 늦은 밤에 몇시간 동안 쉬지 않고 들리는 물소리는 정말 신경 쓰인다. 온 가족이 차례로 목욕이라도 하는 건지. 하루 종일 뭘 하다가 아이들을 그 시간에 씻게 하는지. 그 뿐이면 말도 안한다. 윗집은 세탁기도 한밤중에 돌리기 일쑤다. 세탁물 소리가 끝나도 소음은 끝나지 않는다. 건조기를 돌리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돌아가는 건조기의 윙윙대는 소리는 불안감을 조성한다. 마치 도로 옆에서 야영을 하고 있는 것처럼 잠자리가 뒤숭숭하다. 자고 나도 개운치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오늘 나는 거실 쪽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았다. 열 때마다 수건을 고이는 게 불편해서 안방 쪽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다. 소음을 한 겹이라도 차단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한 불편도 참을 수 있다.
의뢰받은 논문 번역을 마무리해서 보내고 간단하게 저녁을 준비했다.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 그런지 송이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오자마자 잠에 빠졌다. 어쩌면 패러글라이딩 하느라 놀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 땀이 난 송이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고 거즈를 따스한 물에 적셔 목과 손을 닦아준다. 송이의 손가락이 길쭉하다. 다섯 살 아이의 손이지만 벌써 느낌이 우아하다. 갈수록 송이는 J의 모습을 닮아간다. 날렵한 턱선과 조각처럼 선명한 콧날 위 아미도 그렇지만 우윳빛 피부에 길쭉한 실루엣이 J와 똑같다. 꾹 눌러놓았던 무거운 의지도 명을 다한 모양이다. 더 이상은 불가항력이라는 걸 인정한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J가 떠오른다.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변명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사실 요즘 송이를 바라보면서 매일 매순간 J를 생각한다.
한 번 사는 인생을 후회로 채우지 않기 위해 항상 최상의 선택을 해도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 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무겁고 우울한 감정에 요즘 자주 휩싸인다.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이 한심해서 견딜 수 없었는데, 분노를 토할 곳이 없으면 이런 권태로운 무기력에 빠지게 되는 건지, 나답지 않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어쩐지 있는 힘을 다해 탈출할 기운조차 나지 않는다. 여행을 하고 돌아와도 달라진 건 없다. 지금까지 내가 선택한 일을 두고 후회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얼마전 시현이의 인스타그램을 본 뒤부터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 Y회관에서 열린 J의 첼로 연주회 브로마이드와 첼로를 든 J를 둘러싸고 여러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솔직히 놀랍고 혼란스러웠다.
시현이는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J와 나를 연결해준 친구였다. 청소년기에 관현악단 활동을 하면서 J와 함께 활동했던 시현이는 J와 달리 예술대학교 입시에서 탈락하고 내가 지원한 K대 일본어학과를 지원했다. 시현이와 친하게 어울리던 때여서 우연히 함께 연주회를 보러 갔다가 J를 만났다. 시현이와 J는 같은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봉사단에 속해있었다. 아직도 봉사단에서 주최하는 라이브공연에 시현이가 연주자로 참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독주회 브로마이드엔 첼로를 연주하는 J의 얼굴이 또렷하게 박혀있다. 정면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J의 시선은 컴퓨터 모니터와 지면을 사이에 두고 내 시선과 강렬하게 마주친다. 양보하지 않는 시선의 충돌이 뜨겁다. 아직 뜨거운 무언가가 내 안에 남아있었나? 나는 고개를 저어 생각의 진행에 브레이크를 건다.
외모 유전자가 우월한 J는 성격이 진솔하고 나에게 헌신적이었다. 말로 표현하기엔 좀 유치하지만 헌신적이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함께 있을 때 오직 나에게만 집중했다. 정말로 다른 어떤 것에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알았다. J는 외모 유전자만 우월한 게 아니었다. 섹스감각도 근사해서 내 생애에 그런 절정을 다시 경험하진 못할 거라는 걸 관계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이미 알았다. 하지만, 하지만 J는 가난했다.
첼로 연주자인 J는 활과 첼로를 담은 커다란 가방을 왼쪽 어깨에 메고 문화센터며 음악교실로 레슨을 다녔다. 음식점을 하던 J의 어머니가 쓰러져 장기요양원에 들어가기까지 J는 무대에 설 기회들을 놓쳐버렸다. 결국 J는 연주자의 무대로부터 탈락되었다. 유망주들이 차고 넘치는 예술무대에서 포지션이 적은 첼로연주자의 자리는 경쟁이 치열했다. 정말 첼로 외에는 가진 것이 없는 인생이 된 거였다. 그를 만난 3년 중 마지막 1년 동안 J는 최악의 상태였다. 가난은 너무도 결정적인 장애라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재고할 이유가 없었다. 결혼은 현실이고 나는 내 인생이 가난이라는 덧에 걸려들도록 방치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비행사고로 아빠가 사망하기 전까지 완벽한 가정을 꾸렸던 엄마는 내가 좌우명으로 삼을 명언을 남겨주고 돌아가셨다.
“결혼할 남자는 돈 많고 명석해야 한다.”
J는 두 조건 중 아무것도 충족하지 못했다. 그 즈음, J가 레슨시간에 쫓겨 개인적인 시간을 낼 수 없을 때 나는 소개팅으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과 결정적 인연으로 발전하기 전, 운명같은 일련의 사건을 겪었다. J와 헤어지고 혼자 이태리 여행을 간 것부터 운명은 시작되었다. 피렌체의 호텔 프런트에서 우연히 한국인 남성과 마주쳤다. 웰컴 티를 마시는 내게 일행이 없다면 함께 앉아도 되겠냐고 묻는 그는 스마트한 첫 인상 만큼이나 친화력이 좋았다. 순간 그의 손목에 채워진 피아제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입고 있는 재킷의 평범치 않은 이니셜이 어느 브랜드인지 추측해 보았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친숙했다. 그는 사업차 피렌체에 묵고 있다고 했다. 다음날 일정을 묻는 그에게 피사의 사탑을 보고 친퀘테레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때마침 울리는 휴대폰을 들고 일어난 그가 꽤 오래 통화를 했는데 간간히 들리는 이태리어 발음이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이었다. 베니스에서 피렌체로 오는 동안 본조르노를 외치는 이태리 남자들의 느끼한 눈썹을 며칠 동안 봐온 터라 한국남자가 너무 건전하게 느껴졌다. 숙소로 들어가려고 일어났을 때 그가 자리로 돌아오면서 다음날 일정을 조절했다고 말했다. 의아해하는 내게 피사의 사탑을 에스코트해도 되겠냐고 제의하는 거였다. 너무도 친숙하고 예의바른 태도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좀 놀라긴 했지만 내심 기대가 차오르는 걸 느꼈다. 시간의 자유를 선택할 수 있을 만큼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명석한 두뇌는 기본일거였다. 명품으로 휘감은 차림새로 보아 돈 걱정은 평생 하지 않을 신분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여행이 주는 기회라는 확신이 들었다.
남자에게 실망한 첫 번째 이유는 섹스감각이 별로라는 사실이었다. 멀쩡한 외모와는 격이 다르게 서툴고 거칠었다. 남자는 정말 순식간에 시들어버렸는데, 같은 속도로 감정도 식었다는 걸 가감 없이 드러냈다. 더 치명적인 두 번째 이유는 이미 유부남이라는 사실이었다. 엄마의 명언을 따르기엔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는 걸 경험한 날이었다. 덕분에 남자 보는 기준이 생긴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눈을 떴다. 내가 발견한 괜찮은 물건들은 이미 다 품절상태라는 거였다.
송이가 내게 온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운명을 직감했다. 그 운명이 이런 것일 줄은 짐작도 못했지만, 단순하지 않은 인생게임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만은 예견하고 있었다. 혹자는 묻고 싶을 것이다. 그 때 일을 내가 후회하고 있는지?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니다. 후회란 적절한 말도 아니고 필요한 말도 아니다. 문제는 선택이니까. 당시에 내가 맺은 짧은 인연과 사건들도 필연적인 경험이었을 뿐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진지하게 모색하는 중에 내게 목을 매고 있는 소개팅남과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엄마의 명언 중 적어도 하나는 충족하는 수준이었다. 명석함이 있는 중산층의 남자. 이태리에서 돌아온 직후에 남편과 본격적인 열애를 시작했다. 남편이 계획한 차박 여행에서 프러포즈를 받았다. 남편의 감각은 J와 피렌체남의 중간이었다. 바로 남편과의 결혼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가 지금의 완벽한 내 가정이다.
위층에 사는 VIP를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지만 나는 결국 웰니스라는 목표를 이룰 것이다. VIP를 생각하자 심장에서 덩어리가 치민다. 갑작스런 현실소환이 무겁고 공허하다. 아니 우울하고 짜증난다. VIP탓이다. 이렇게 막막하지 않았다면 J생각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심한 남편과 달리 모든 촉수를 내게 뻗고 있던 J라면, 내가, 아니 송이가 처한 이런 위험을 속시원하게 해결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J가 줄 수 있는 도움만 생각할 순 없었다.
어쩌면 번거로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송이의 양육권을 주장한다던가, 내 가정의 존속을 위협한다던가. 그것은 원치 않는 결과였다.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팠다. 골몰한 끝에 나는 J의 소식을 알아보기로 했다. 아니 J의 연주회에 가보기로 했다. 어린이집에 송이의 보육 시간을 연장해 달라고 부탁하면 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