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웰니스족 1>
7.참을 수 없는 악순환

- 웰니스아파트 704호

by 힐링가객


한밤중의 난동과 물벼락을 당한 후 나는 극심한 환영에 시달렸다. 습하고 더러운 공간으로 바퀴벌레가 떼를 지어 몰려가는 환영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벽과 하수구가 온통 벌레들로 우글대는 것만 같았다. 집 밖에 나가 있으면 잠시라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송이를 등원시키고 아파트 산책길을 돌고 나서야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서둘러 번역 업무를 마치고 다시 집을 탈출해서 송이가 하원하기 전까지 쏘다녔다. 하지만 집안에 들어오는 순간 음식물이 널려있던 윗집의 거실이 떠오르는 것을 피할 순 없었다. 804호 존재 자체가 내게는 너무도 커다란 위협이었다. 정말이지 무서웠다.


살면서 윗집 사람들처럼 상식이하인 인간을 본 적이 없었다. 무지의 극치, 아니 불결함의 종결자, 아니 뻔뻔함의 끝판왕! 아니 아니, 이런 물렁한 말로는 윗집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무서워하는 이유는 방치하면 바로 문제가 생기는 유기물 쓰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들이 집안에 굴러다니면 바퀴벌레나 박테리아가 꼬이게 마련인데, 벌레가 창궐하는 환경에서 송이를 키울 수는 없었다. 바퀴벌레는 천식의 알레르기 항원이었다. 바퀴벌레의 배설물이나 껍질, 소화하다 뱉은 음식물뿐 아니라 바퀴벌레가 내뿜는 페로몬 같은 단백질 입자들은 자외선이나 끓는 물속에서도 결코 없어지지 않는 악독한 성분이다. 송이처럼 민감한 체질은 즉시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환경 속에 세 아이가 살고 있었다. 층간소음을 일으켜 참을 수 없게 만들긴 하지만, 그 집의 환경을 생각하니 아이들이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것도 혹시 아동학대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불결한 환경 속에 아이들을 방치하고, 한 밤중에 보호자 없이 아이들끼리 난동을 부리게 방치하고, 멀쩡한 대낮에 아이들끼리 모여 베란다에서 물장난을 쳐서 이웃에 피해를 주도록 방치하고, 방치하고, 방치하고 ….


생각해 보니 윗집은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층간소음이나 위생상태보다 심각한 아동의 방치, 즉 아동학대의 징후가 뚜렷했다. 하지만 고발을 한다고 해도 어떻게 증빙을 할 수 있을까? 뚜렷한 증거들을 기록할 생각을 못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사진이라도 찍어놨어야 하는 건데, 소음에만 신경 쓰느라 놓치고 있었다.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떼어 놓으면 층간소음도 없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제부터라도 증거를 잡아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무슨 방법이 있을까? 문제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며 증빙할 기회를 잡아야 하나?


하지만 그러기엔 내 인내심이 압사당할 것 같았다. 다시 그런 꼴을 목도하고 싶지도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나를 계속 VIP에게 몰두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또 그 집의 불결한 위생상태가 생생하게 눈앞에 떠오르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정말 참을 수 없는 악순환이었다.


휴, 정말 방법이 없단 말인가!


나는 애써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윗집의 위생문제를 알게 되었다는 거였다. 층간소음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큰 충격이지만, 모르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는 우선 윗집과 연결되는 하수구를 막기로 했다. 가장 빠른 배송을 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급하게 실리콘 덮개를 주문해서 화장실 하수구를 차단했다. 하지만 세탁실 하수구는 세탁물 배출을 위해 열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세탁기 호스가 접속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하수구의 나머지 부분을 테이프로 봉했다. 하지만 물이 묻자 점성이 사라져 테이프가 들떠버렸다. 그 틈새로 바퀴벌레가 드나들 수도 있었다. 결국 점토를 사다가 반죽해서 구멍들을 막았다. 급한대로 직접 연결된 곳들을 다 막는다고 해도 부엌 하수구나 환풍기 가스굴뚝 등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막상 막아보려고 찾으니 윗집과 연결된 면적이 너무 넓었다.


저녁에 누우면 윗집 풍경이 생각나고 그 때문에 송이의 호흡에 쇼크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에 사로잡혀 마음 편히 잠들 수 없었다. 한밤중에 쇼핑몰에 접속해 빠른 배송으로 소독제품들을 주문했다. 건강한 사람이라 해도 호흡기를 통해 몸속에 들어온 알레르기 항원은 일평생 잠복해 있다가 몸의 면역이 떨어지면 질환이 되어 나타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반려동물의 털이나 기생충류, 쥐의 배설물이나 집 먼지 진드기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이 알레르기 항원이었다.


내 생각에 이웃들은 이런 위협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아파트 전체 세대가 피해를 입고 있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어떻게든 상황을 알려서 이웃들과 연대하여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었다. 생각할수록 웰니스 아파트의 앞날이 걱정스러웠다. 이건 수용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말이라도 통하면 좋겠지만,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되지 않는 한 윗집 사람들과의 정상적인 소통은 불가능했다. 이해도, 소통도 안 되는 그런 부류와 무슨 수로 한 건물 안에서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거기까지는 어쩌다 벌어진 상황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다.


이틀 전,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였다. 8층에서 멈춘 엘리베이터에서 경고음이 들렸다. 슬슬 짜증이 치밀 때쯤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문이 열려서 타려고 했으나 엘리베이터는 이미 꽉 찬 상태였다. 복잡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불편해서 나는 먼저 내려가라고 했다. 하지만 타고 있던 남자가 문 앞에 있는 짐을 들어 자리를 만들면서 타라고 권했다.

자꾸 거절하는 것도 면구스러운 일이라 나는 재활용 수거용 바구니를 품에 안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804호임이 분명한 남자의 시선을 외면하자 그가 붙들고 있는 짐들이 보였다. 전혀 정리되지 않은 재활용품들이 터져 나올 듯이 담긴 것이 여러 봉지였다. 그 밑으로 술병이 빼곡한 박스가 있었다. 혐오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참고 있는데, 남자가 말을 건넸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804호입니다. 언제 바깥 분하고 술이나 한잔 합시다. 이웃끼리. "

나는 초면에 술타령을 하는 남자의 충혈된 눈을 차갑게 쏘아보면서 단칼에 잘랐다.

"애 아빠가 좀 바빠서 시간 맞추기 어려울 것 같네요."

그러자 남자가 흐흐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지 말고 시간 될 때 초대해 주세요. 아니면 올라오셔도 좋고요. "


기분 나쁜 악취가 가뜩이나 좁은 엘리베이터를 잠식하고 있어서 숨을 참느라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나는 형식적으로 목례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활용품 수거 장소로 갔다. 내가 분리수거를 거의 마쳤을 때서야 낑낑대며 남자가 도착했다. 남자가 내려놓은 소주박스에 술병들이 가득 꽂혀 있고 병들 사이사이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술병들이 거꾸로 꽂혀 있었다. 장인의 포스가 느껴지는 술병 정리 방식이었다. 몇 년 동안 모으면 저만큼이 될까 싶은 분량이었다. 남자가 폐휴지박스를 들자 마주 기대고 있던 봉지 하나가 쓰러졌다. 봉지 속에서 우유팩들이 쏟아지면서 악취가 풍겼다.


세상에 세척도 안 한 우유팩을 집안에 쌓아놓고 살다니….


나는 냄새로부터 도망치듯 돌아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남자가 혹시 서둘러 수거를 마치고 오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엘리베이터에 쓰레기 악취가 배어있는 것 같아 구역질이 치밀었다. 위생 관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804호가 더욱 싫어졌다. 아니 끔찍했다. 사람에게서 그토록 소름 끼치는 혐오를 느낀 것은 사춘기 이후로 처음이었다. 밤이고 낮이고 눈앞에서 떠나지 않는 위층 풍경에 이젠 술박스와 우유팩까지 패키지로 떠올랐다. 오물을 머리에 얹고 있는 것처럼 불쾌했고 찌르는 듯한 두통에 시달렸다.


804호, 나의 VIP는 나를 위험에 빠뜨렸다. 진정한 웰니스를 지향하던 나의 모든 계획과 노력과 선택을 쓰레기로 포위해 버렸다. 공동주택에서 나를 둘러싼 이웃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나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 이웃이라는 존재가 저벅저벅 내 삶 속에 들어와 내 시간과 내 감정을 지배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그 영향력이 이토록 절대적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간과했던 것이다. 피할 수 없이 맞닥뜨린 저 가족은 내 생애 최대의 악연이었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날 밤 나는 잠들지 못해서 남편에게 윗집의 문제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당장 어떤 대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두 달쯤 후에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라고만 했다. 남편과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느꼈던 공감센서의 결핍을 다시 확인했을 뿐이었다. 내 분노를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않는 것이 분명했다. 나를 위한답시고 의견을 내놓긴 했다. 그 지루하고 훌륭한 평정심을 행여라도 잃어버리면 곤란하다는 듯 지극히 평이한 어조였다.


"잘 생각해서 좋은 곳으로 다시 이사를 하는 건 어때?"


그게 전부였다. 마치 먼 관계의 지인에게 지나가는 말로 던져 줄 법한 조언이었다. 혼자 냉가슴을 앓으면서도 남편에게 윗집과의 소음갈등을 말할 수 없었던 것도 이런 결과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혹시나가 역시나임을 보여주는 부류가 맞았다. 몰랐던 건 아니었지만 막상 확인하니 허탈했다. 나를 위해 무슨 액션이라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싸워주거나 안전한 장소를 알아봐 줄 누구도 없었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깊은 우울감에 휩싸였다. 불현듯 J 생각이 났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송이가 위급할 때도 J를 떠올리지 않았다. 나는 두 팔로 내 어깨를 감싸고 머리를 흔들어 J를 지워버렸다. 하지만 잠든 송이의 얼굴을 보자 J가 다시 떠올랐다. 순간 깨달았다. 송이를 볼 때마다 항상 J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이전 06화연재소설 <웰니스족 1> 6. 한밤중의 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