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웰니스족 1>
6. 한밤중의 난동

- 웰니스아파트 704호

by 힐링가객

2주 전 금요일, 그러니까 딱 보름 전의 일이다. 그날은 내가 어린이집에 가서 송이를 데리고 근처 공원에서 놀다 온 날이었다. 미세먼지가 보통인 날이었다. 점점 심해지고 있어서 그런 날은 좀 햇살을 쬐어줄 필요가 있었다. 가끔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쇼핑몰이나 공원을 돌고 오면 다른 날보다 깊은 잠을 자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이 필요할 때마다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아이의 몸 상태가 괜찮을 때나 가능한 일이지만. 실컷 자고 나면 다른 날보다 아이의 컨디션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참고로 송이는 잠을 못 자면 컨디션이 급속히 나빠진다. 환경에 민감한 천식성 기관지염이라 일단 숨소리가 거칠어지면 급격하게 기도가 좁아져 한 밤중에 응급실로 실려가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염증 수치가 떨어지지 않으면 구역질을 동반한 기침을 한 달 이상 할 때도 있다. 그러면 어린이집도 못 가고 집과 병원만 오가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아이의 고생도 문제지만, 아픈 아이를 보살피는 나의 일상도 엉망이 된다. 그러기에 송이의 수면 환경은 너무도 중요하다.


어차피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고 오기 때문에 오후엔 놀게 하고 저녁에 일찍 재우는 건 이상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윗집 아이들도 낮에 실컷 놀고 밤에 일찍 자면 서로 좋을 것 같았다. 근린공원은 넝쿨장미들이 피어있어서 산책하기 좋았다. 송이가 장미를 좋아해서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주었다. 장미터널을 뛰어서 통과하는 송이를 동영상으로 담았다. 그렇게 뛰고도 숨소리가 금방 안정되어 마음이 놓였다. 송이가 좋아하는 파스타 집에서 게살 필라프에 스테이크샐러드를 먹고 평안한 저녁을 기대하면서 돌아왔다. 공원에 나가 있는 동안 윗집이 어땠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돌아왔을 땐 윗집에 잔치가 벌어져 있었다. 웬 친척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여러 가족들이 모이는 비정기적인 모임에 나는 이미 진저리가 나있었다.


불길한 예감으로 마음이 캄캄해졌지만 송이가 불안해할까 봐 애써 평온을 유지했다. 달리 어쩔 방법도 없었다. 왁자한 웃음소리를 참아내기 위해 송이가 잠들 때까지 자장가를 불러주며 영어와 일본어로 인사를 나누고, 무드등을 이용해 손가락을 움직여 그림자놀이를 했다. 위층의 소란은 줄어들지 않았다. 한숨이 나오고 가슴이 답답했지만 몸으로 자음과 모음 만들기를 하면서 저녁시간을 보냈다. 코믹한 표정으로 몸을 움직여 글자를 만들 때마다 송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놀이였다.


위층이 조용해진 걸 알아차렸을 때 송이가 하품을 했다. 더 늦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송이를 재우려고 누워있을 때였다. 갑자기 구급차 앰뷸런스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소리가 났다. 아이들의 발소리는 베란다에서부터 거실을 통과해 작은 방과 주방까지 사방에서 울렸다. 아파트가 아니라 갑자기 킹콩공원이 된 듯했다. 심각한 얼굴로 인터폰을 들자 송이가 불안해서 울상이 되었다. 나는 송이를 안은 채 관리실에 전화해서 도움이 필요한데 윗집에서 나는 소음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으니 잠깐 올라와 달라고 부탁했다.


한참 지나서 윗집이 조용해졌다. 관리실장이라는 젊은 직원이 내려왔다. 아이들끼리 놀고 있어서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소리는 대체 뭐였어요?"


"아, 뭐, 앰뷸런스 소리가 아니고요, 장난감 전자총이 좀 시끄럽지요. 아이들은 장난감 가지고 놀며 크는 긴데, 밤이라 더 요란하게 들렸나 봅니다. 민감한 사람들은 문제 삼을 수 있지만, 이웃 간에 서로 이해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직원은 알듯 말 듯 한 설교를 늘어놓았다. 그것이 더 화가 나서 조목조목 짚어줬다.


"지금 우리가 민감하게 군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 애가 건강이 좋지 않다고요. 윗집 때문에 내 집에서 아이가 잠을 못 자는데, 내가 민감해서 문제 삼는 거예요? 댁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이해하겠어요? 내 일이 아니어도 관리실에선 중재하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중재는 고사하고 말이라도 똑바로 합시다."

뜨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직원이 영혼 없는 변명을 늘어놓고 도망치듯 가버렸다.


"그런 뜻은 아닙니다만, 하여튼 죄송하고요, 알겠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발소리는 여전했지만, 전자총 소리는 나지 않았다. 나갔던 어른들이 돌아왔는지 왕왕거리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열두 시가 넘도록 느닷없이 터뜨리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화투나 포커를 하는 것 같았다. 내 고무망치 반격에 보복하기 위해 손님을 부른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이 틀림없다고 할지라도 대가족을 상대하기엔 아이와 단 둘이 사는 나는 약자에 불과했다. 가정에서 도박을 벌이는 거라면 고발이라도 할 텐데, 판돈을 걸었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어서 기분은 갈수록 구겨졌다. 밤 시간에 남의 집을 방문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규제할 순 없는 건가? 한탄과 원망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남편이 해외 근무 중이라는 것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다시 관리실에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경비가 순찰을 도는지, 야간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그날 밤에 위층에 인터폰을 걸지 않은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내가 혼자서 취객을 상대할 순 없지 않은가. 나는 경찰을 부르는 것이 나은지,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나은지 고민했다. 하지만 송이가 놀랄까 봐 상상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했다. 또 그 시간까지 왁자하게 떠들며 놀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상식 이하의 인간들을 자극했다가 뭔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일로 9시 뉴스에 나오고 싶지는 않았다.


분하고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살기가 돋았다. 대체 위층을 둘러싼 다른 이웃들은 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건지 분통이 터졌다. 물론 직접적인 피해는 아래층인 내가 받지만 그래도 이 정도 소음이면 곰이 아닌 한 다른 집에서도 들리긴 할 거였다. 물러터진 이웃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그것은 재난이었다. 수돗물에 독이라도 풀어 재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상상을 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무력감은 피할 수 없는 두통을 불러왔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다가 귀 반사 마사지를 했고, 가라앉을 때까지 VIP에게 복수할 궁리를 하다가 겨우 잠들었다.



다음날은 토요일이라 늦잠을 잤다. 밤새 구겨졌던 내 기분을 씻어주려는 듯 햇살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과즙이 묻은 송이의 옷들을 손으로 빨아서 베란다에 널고 창문을 열어놓았다. 송이를 데리고 쇼핑몰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면서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어제 위층이 그만큼 시끄러웠으니, 오늘은 좀 조용히 보낼 수 있기를.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내 기원은 악몽으로 바뀌어 버렸다. 위층 아이들의 아우성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베란다를 보는 순간 아연실색했다. 우리 집 창문에 폭우가 쏟아지듯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유리창에 물 얼룩이 지는 것은 둘째 치고, 열린 창문 아래 모처럼 햇살소독 중이던 빨래가 젖고 있었다. 그것도 더러운 물에.


가슴이 둥둥 울렸다. 8층 베란다에서 물장난이라니!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아래층 창문은 어쩌라고 비도 안 오는 날 물을 뿌려대는가, 기가 막혀 말을 잃었다. 즉시 비상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나의 돌발 행동에 뒤에 남은 송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돌아가서 송이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불렀다. 어른이 있다면 응당 말려야 할 일인데, 방치했으니, 모르면 똑바로 가르쳐주어야 할 일이라고 송이에게 말해주었다. 상황이 불안한 듯 송이가 내 목에 매달렸다. 위층에 올라가 초인종을 누르면서 동시에 내 손이 804호 현관문을 비틀었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너무도 급작스럽게 활짝 열린 문 때문에도 놀랐지만, 그보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 때문에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집이라고 하기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아이들은 베란다에서 청소용 호스로 물장난을 하느라 초인종이 울리던 현관문이 열리던 관심이 없었다. 집안엔 부부도 손님도 없었다. 낯선 아이 둘과 윗집 아이들만 물장난에 빠져 소리를 질러댔다. 빈틈없이 어질러진 집안의 풍경이 같은 구조에 살고있는 내 눈에 너무도 낯설게 들어왔다. 거실탁자 위에 이빨자국이 선명한 피자조각과 함께 양념 닭과 뼈들이 뒤섞여 있었다. 배달 상자에 담긴 채였다. 방바닥에 흘러내린 검은 액체 끝에 캔콜라가 엎어져 있었다. 피클 조각은 소파에 던져져 있고, 붉은 양념 소스도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부서진 스낵과자가 발에 밟혀 걸음을 뗄 수조차 없었다.


먹을 것을 던지며 놀지 않는 한 나올 수 없는 풍경이었다. 집이라기보다 가축 우리에 가까웠다. 아니 가축도 이런 곳에서는 살 수 없을 거였다. 조금 큰 아이들은 물이 뿜어져 나오는 호스를 뺏으려고 소리를 지르고 작은 아이들은 베란다 바닥을 발로 탕탕 구르며 물을 튀기고 있었다. 나는 폭격이라도 맞은 듯한 풍경을 뒤로하고 송이를 안고 조용히 그 집을 나왔다. 단 한순간도 송이가 머물 환경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상식으론 상대할 수도 없는 집이라는 걸. 내려와서 소리지르며 물놀이에 빠진 아이들을 멈추게 할만한 도구를 찾았다. 고무 망치나 목검으론 아이들의 소음을 뚫을 수 없었다. 마침 스텐 냄비 뚜껑이 눈에 띄었다. 두 개를 찾아들고 베란다로 나가 열린 창문 밖으로 두드리며 소리쳤다.


"계속 물 뿌리면 경찰을 부른다! 너네들 다 잡혀갈 줄 알아! 경찰, 경찰, 경찰을 부른다고! "


생각보다 소리가 컸는지 맞은편 아파트의 창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다봤고, 상가를 지나던 사람들도 소리의 근원을 찾아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렸다. 손으로 차양을 만들고 이쪽을 보는 사람들 중에 슈퍼집 여자도 보였다. 윗집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거실로 들어와서야 송이가 파랗게 질려서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상황에 몰두해서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었던 것이다. 나는 송이를 안아서 상황을 설명하고 안심시켰다. 수돗물을 안 껐는지 위층 베란다 하수구로 물 내려가는 소리가 오랫동안 들렸다. 올라가지 말고 진즉에 이렇게 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A4용지에 ‘804호는 만행을 중단하라’는 글을 써서 엘리베이터에 붙였다. 생각이 있는 이웃들이라면 804호에 대해 뭔가 합리적인 대책을 함께 세워야 할 일이었다.


그날 나는 도저히 위층 사람들과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입씨름이나 감정소모 없이 현실적인 개선을 위한 지혜가 필요했다. 나는 일단 베란다 문을 닫아걸고, 서둘러 송이의 젖은 옷을 걷어 다시 빨아 널었다. 시장 봐온 것을 정리해 놓고 송이를 데리고 다시 나갔다. 엘리베이터 안에 붙여놓은 메모는 사라지고 없었다. 누가 떼었을까 궁금했다. 위층 사람들이 떼었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사과하러 내려왔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 집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찾아오지 않았다.


상식도 없는 뻔뻔한 인종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새 나왔다. 깜짝 놀라 두 손으로 송이의 귀를 막았다. 송이가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방그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이 장난인 줄 안 것이다. 상황에 너무 집중하다가 내뱉은 혼잣말이었는데, 생각의 끝에서 생성된 말이 소리가 되어 나오진 않은 모양이었다. 다행한 일이긴 한데, 한편으론 내가 왜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혼잣말을 이명으로 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러다 정신병에라도 걸리는 건 아닌지! 정신이 아프면 신체화 질환이 된다고 하던데, 지금 이곳은 암이 돋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최악의 환경이었다.


어딘가 집이 아닌 곳에 가서 차분히 머물면서 모색을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만한 곳이 있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상황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긴 싫었다. 피해자인 내가 왜 집을 떠나야 한단 말인가? 쫓아내야 할 사람들은 뻔뻔스럽게 잘 살고 있는데! 생각을 해야 했다. 생각을. VIP를 쫓아낼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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