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웰니스족 1>
5. 가장 민감한 시간

- 웰니스아파트 704호

by 힐링가객

송이를 안고 올라와 거실 보료에 눕힌다. 집 밖에서 보내는 몇 시간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간밤에 깊은 잠을 못 잤기 때문에 낮시간에 늘어진 것이다. 이럴 땐 몇 시간이고 깊은 잠을 보충해야 컨디션을 회복한다. 잠든 아이의 얼굴이 평온하다. 숨소리도 고른 편이다. 간밤엔 얇은 철사를 긁는 소리를 내던 호흡이 거의 안정되었다. 생각보다 어린이집 환경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다. 어린이집에서 사진을 보내오면 송이를 확인하고 사진을 확대해서 공간 여기저기를 훑어본다. 비위생적인 위험요소는 없는지. 청소와 정리상태는 청결한지. 하지만 카메라 화질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너무 한정적이다. 보육교사가 입고 있는 앞치마가 마음에 걸리긴 한다. 여러 아이들과 접촉할 텐데 하루에 몇 번이나 갈아입는지. 아니면 하루 종일 입는지. 그런 걸 생각하면 속이 메스꺼워진다.


오늘은 어린이집 원장이 잠든 송이를 안고 왔다. 하원시간에 잠든 아이를 깨우지 않으려고 차량에 동승했다고 한다. 원장의 품에 안겨 잠들어있는 송이를 보니 조금 마음이 풀리긴 했다. 어린이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보내야 할지 새로운 곳을 알아봐야 할지 고민하던 차였다. 지난주 금요일에 송이를 데리러 내려갔을 때였다. 정차한 차량 앞 보도에 송이가 엎어져 있는 거였다. 놀라서 달려가 일으켜 안았다. 담당교사는 송이가 엎어진 줄도 모르고 차 안에 머리를 넣고 있었다. 책임을 물었더니 다른 아이의 하차를 돕느라 보지 못했다고 했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엎어진 아이를 돌보지 않고 다른 아이들 하차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니, 송이가 내려놓으면 그만인 짐이라도 되는가 말이다. 그래서야 어떻게 믿고 맡기겠는가. 담당교사가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다. 송이를 데리고 집에 올라와 일단 씻겼다. 간식을 먹고 잠들자마자 어린이집 원장에게 전화를 했다.


원장은 담당교사에게 보고를 들었다며 형식적인 사과를 했다. 송이가 운행 중에 잠이 들어서 깨워 내려줬는데 잠이 덜 깼던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게 더 분했다. 아이가 잠들었으면 보호자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인계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른 아이들을 하차시키고 맨 마지막에 깨웠어야지 잠든 아이를, 더구나 건강이 좋지 않아서 특별 보호를 당부한 우리 송이를, 굳이 먼저 깨워서 땅바닥에 엎어지게 만들었냐고 따져 물었다. 원장은 업무 적응이 덜 된 새내기 선생님을 보낸 자기 불찰이라고 하면서도 같잖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송이가 체력이 약하니까 금방 지치잖아요. 그리고 어머님께서 먼저 내려달라고 요청도 하셨고요. 또 어머님께서 항상 나와 계시니까 먼저 내려주려고 송이를 출입문 가까이에 앉히거든요. 그래서 우리 새내기 선생님이 어머니 얼굴도 모르니까 아마 차례대로 내려준 것 같아요.”


이건 또 뭔 소린가? 차라리 변명을 말던지, 깨끗이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기가 막혔다. 나는 한 번도 차량 시간에 늦은 적이 없었다. 그날도 같은 시간에 내려갔다. 나보다 차량이 한발 먼저 도착한 것뿐이었다. 어쨌든 보호자도 없이 아이를 내려놨다는 건 정말 문제가 큰 거였다. 도대체가 아이들 하원차량 사고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기본 교육조차 없는 것인지, 교사 안전교육에선 뭘 가르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뭉개는 걸 대충 사과받고 지나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재차 또박또박 따져 묻자 그제야 원장이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안전교육을 똑바로 다시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통화를 끝냈다. 직접 나서서 송이를 데려온 걸 보니 원장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반성을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사람은 당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따질 건 확실하게 따지고 넘어가야 본전이라도 찾는 것이 세상 이치 아닌가.


잠든 송이의 뇌를 천재의 선율로 마사지하기 위해 쇼팽의 녹턴이 녹음된 CD를 플레이어에 넣고 볼륨 버튼을 15에 맞추어 둔다. 스마트폰 안드로이드에서 찾은 소음 데시벨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해 소음 수치를 측정한다. 35 데시벨이다. 자주 측정하다 보니 이제는 볼륨 버튼을 움직이지 않아도 대강 감이 온다. 내 집에서 주간소음 한계치에 못 미치게 설정했으니 밖으로 전달된다고 해도 미미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예의를 차리는 건 상식을 존중하며 점잖게 살아가는 아래층 604호 어르신을 배려하는 것이며, 나 자신을 위해서도 백색 소음을 만들어 방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아래층엔 중년 부부가 노인을 모시고 산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아래층 여자가 정오쯤 올라온 적이 있었다.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이 층간 소음이 심하다고 해서 확인하러 온 거였다. 나는 우리 집 사는 이야기랑 위층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자는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바닥에 깔린 소음방지 매트와 양말을 신겨둔 의자들을 보여주자 여자는 오해가 풀렸으니 어머님께 말씀드리겠다며 정중하게 사과하고 돌아갔다. 604호 여자를 만난 이후부터 나는 얼굴도 보지 못한 아래층의 노인 환자를 배려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 집은 항균매트를 출입구까지 빈틈없이 시공하고도 슬리퍼까지 신기 때문에 발자국 소리는 나지 않는다. 당연히 식탁이며 책상다리엔 부직포를 두껍게 접어 넣은 소음방지 양말을 씌워 소리를 차단하고 있다. 나도 송이도 특별히 시끄럽게 할 일이 없다. 될수록 아침저녁으로 상하수도 물소리가 가장 많이 나는 시간에 샤워를 한다. 이렇게 하면 층간 소음으로 겪는 피해를 조금은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세탁도 하루 한 번 아침에 끝낸다. 상하수도 물소리가 단시간에 끝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해가 지는 시간이나 심야에 개념 없이 빨래를 돌리는 인간들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햇살이 없는 시간에 침침한 실내를 빨래수분으로 채우는 집이라니, 상상만 해도 여기저기 곰팡이가 필 것 같아 근지럽지 않은가!


이미 밝힌 것처럼 현재 나는 번역 업무를 맡고 있다. 계약을 맺은 회사의 홈페이지에서 일본 기업과 거래중에 오가는 메일들을 일본어와 한국어로 번역해서 제공하는 일이다. 많은 일은 아니지만 적게는 하루 5~6건에서 많게는 20건 이상을 번역한다. 그 외에도 행사가 많은 광역도시 두 곳과 전속 계약을 맺고 있다. 지자체에서 기획하는 국제적인 행사나 축제에 여러 언어로 안내 팸플릿을 제작하는데, 그 중에서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안내장 번역을 맡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일본어학과나 학술대회 등을 준비하는 학회에서 학문적인 글을 번역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기도 하고 대학으로부터 부교재 번역을 의뢰받기도 한다. 온라인 플랫폼에 내가 발행한 전자책에서 번역 이력을 확인하고 의뢰 해오는 경우도 있다. 정기적인 일감들을 처리하면서 틈틈이 텍스트를 번역하는 일은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그래서 송이가 잠자는 시간에 일을 한다.


프리랜서의 좋은 점은 너무 촉박한 일감이 겹치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지 못하면 일에 파묻혀 살아야겠지만, 남편이 해외에서 근무해도 남편의 급여통장은 내가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다. 남편은 고액의 연봉자답지 않게 소박해서 그의 몫으로 정해준 상여금을 모아두었다가 송이와 나에게 깜짝 선물을 하곤 한다. 그렇다고 마냥 편할 순 없다. 내게도 야망이 있으니까.


대학 친구들 중에 눈에 띄지도 않았던 시현이가 반도체기업에 들어가 일본의 거래처를 관리하면서 고속 승진으로 고액의 연봉을 받고 있는 걸 생각하면 눈에서 불똥이 튄다. 나보다 학점이 형편없었던 은지도 H관광대학교 일본어교수가 되었다. 복학생답지 않게 공부는 뒷전이었던 승주는 관광 통역을 한답시고 일본으로 여행을 다니며 유튜브를 찍더니 구독자 30만의 인플루언서가 되어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개가 웃을 노릇이지만 사실이었다. 부럽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보다 모자란 것 하나 없는 내가 집안에 갇혀서 지끈거리는 소음 속에 이메일이나 번역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내가 송이를 돌보느라 밤을 새우는 동안 그들은 최소한 교수 연구실이나 전용 사무실에서 격에 맞는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뒷골이 뜨거워진다.


송이를 원망하진 않는다. 송이는 그저 유전자를 받았을 뿐이니까. 조각품처럼 완벽한 외모나 천식성 기관지염이나 송이가 선택한 건 아니다. 그중 알레르기는 나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다. 송이는 남편을 닮지 않았다. 송이가 태어났을 때 남편의 가족들은 아이가 외탁을 했다고 아쉬워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송이의 혈액형은 남편과 같았다. 남편은 송이가 자기 핏줄인 줄 알지만, 사실 송이는 온전히 나를 닮은 내 딸일 뿐이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송이는 내가 지켜야 한다. 내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송이를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나태한 걸 극도로 혐오한다. 혼자 있어도 아무 루틴 없이 시간을 소모하는 건 용납할 수가 없다. 내 하루는 그래서 탄탄하게 운영된다. 송이가 어린이집에 머무는 동안이 나에겐 최고로 민감한 시간이다. 아이가 돌아오기 전 업무를 끝내야 한다. 송이를 산책시키고 필요한 활동을 시키면서 잘 보내야 밤 시간도 편안하니까. 생산적인 그 시간에 그냥 소음도 힘든데, 윗집처럼 개념 없이 퍼붓는 무지막지한 난동을 언제까지 두고 볼 수는 없는 사정인 것이다. 자기 집 안에서야 어떻게 살든 그건 자유다. 하지만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 다른 집에까지 피해를 주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웰니스족인 내가 나의 VIP, 804호를 폄훼하는 것 같은가. 나는 그런 저속한 사람이 아니다. 보름 전 주말에 내가 본 것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면 내 말을 믿어줄 것이다. 아니 나보다 심한 말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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