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웰니스족1>
4. VIP게임을 시작하다

-웰니스아파트 704호

by 힐링가객

바로 며칠 전의 일이다. 정오 무렵 버섯샐러드에 곁들여 먹을 달걀을 삶기 위해 인덕션의 타이머를 설정해 놓고 잠깐 거실 소파에 앉았을 때였다. 뭔가 육중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천정을 울렸다. 반사적으로 올려다보니 샹들리에가 흔들렸다. 순간 잘못 봤나 싶었지만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숨을 돌릴 새도 없이 같은 충격이 또 가해졌다. 뭔가 차례로 쿵쿵 떨어졌다. 소파에서 내려와 거실 벽에 기대섰다. 샹들리에 크리스털 구슬들이 쏟아질 듯 찰랑거렸다. 뒤이어 들리는 웃음소리로 보아 사고는 아니었다. 아이들이 소파나 탁자에 올라가 뛰어내리는 모양이었다. 그냥 두기엔 너무 위태로웠다. 내 집에서 마음 놓고 거실 소파에 앉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나는 벽을 더듬어 인터폰을 들었다. 아직 관리실 외에는 통화해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 지체할 순 없었다.


여버셰여


위층에 인터폰을 걸자 사내아이가 받았다. 아이는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여버셰여를 외쳤다. 나는 침을 삼키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좋은 말로 타이르고 싶었다. 그러는 중에도 수화기에선 여버셰여가 흘러나왔다. 말이 아니라 소리를 지르는 거였다. 아이가 흥분한 상태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 보호자가 없는 것이 분명했다. 상식적으로 아이들이 그렇게 뛰어내리는데 보고만 있을 보호자는 없을 거였다. 그렇다면 아이가 알아듣고 나쁜 행동을 고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했다. 나는 정말 최대한 화를 누르고 아이에게 설명했다.


"나 아래층인데, 너희들 집에서 그렇게 뛰면 안 되는 거 모르니?"

아이의 여버셰여 소리가 작아졌다. 들리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놀이터에 가서 뛰어야지. 우리 집 샹들리에 떨어질 뻔했거든."

아이는 대답인지 딴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냈다. 좀 전보다 감이 멀었다. 수화기를 놓아버린 건지도 몰랐다. 최대한 알아듣게 이야기하려고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키웠다.

" 계속 쿵쿵거리면 혼내주러 올라간다! 아줌마 화나면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알았니?"


그러자 위층 여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큰 소리로 쏘아붙이는 거였다. 그 여자가 엎지른 말들이 다 생각도 안 나지만 말도 안 되는 억지주장은 기억난다. 아이들이 노는 걸 묶어놓기라도 해야 하냐며, 이제부턴 조심하지 않을 거래나 뭐래나. 적반하장도 유분수였다.


처음부터 아이들을 말렸으면 아무 일 없었을 것 아닌가? 아니 직접 인터폰을 받았으면 서로 용건만 확인할 수 있었던 것 아니었는가 말이다. 아이가 응대하도록 내버려 두고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시비를 걸었다는 것 자체가 정상인이 할 짓은 아니었다. 마치 보호자가 없는 것처럼 상황을 방치한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아래층 거실의 샹들리에가 흔들릴 만큼 뛰어내린 자기 아이들을 훈육하진 못할망정, 되려 나를 공격하다니, 정말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사이코패스임에 분명했다. 분하고 괘씸했다. 이제부턴 조심하지 않겠다니! 이건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몰상식녀가 내 머리 위에 살고 있는 거였다.


덕분에 처음부터 말로 해결할 의지 따위 없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스트레스가 몰려와 가슴이 조이듯 답답했다. 위층에 사는 몰상식녀 때문에 내가 찾아낸 웰니스 홈이 불안한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해자는 큰소릴 치는데, 피해자인 나는 점점 더 위층 동향을 살피고 파악하느라 일상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이건 정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양파 두 개를 꺼내 껍질이 벗겨질 새라 조심스럽게 씻는다. 뿌리 한 가락도 상하지 않도록 손질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양분이 양파의 속살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친환경 농산물 상점에서 껍질은 물론 뿌리까지 꼼꼼히 살피고 구입한 것이다. 껍질에서 양분이 빠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씻었는데도 물빛이 노랗다.


개수대에 설치된 포인트 조명을 켜고 마른 뿌리 상태로는 보이지 않는 곰팡이나 상한 부분을 확인한다. 이런! 뿌리 한쪽에서 껍질로 이어진 부분에 거뭇하게 변색된 것이 보인다. 안쪽에서 진행된 곰팡이 부위가 경미해서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젖은 껍질 째 양파를 사등분하고, 변색 부위를 까서 확인한다. 다행히 양파 안쪽까지 진행된 건 아니다. 껍질과 뿌리 부분을 까서 버리고 나머지 조각은 껍질과 뿌리째 인덕션 전용 냄비에 넣는다. 좋은 양파는 간단하게 끓이기만 해도 웰빙 육수나 음료가 된다. 냄비에 정수 2리터를 붓고 레인지 타이머를 60분으로 설정한다. 송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기 전에 집안을 쾌적한 가습 상태로 만들어놓기 위해서다.


이미 말했던가? 내 아이 송이는 천식성 기관지염을 가지고 태어나 건강이 좋지 않다. 항상 숨소리가 불안한 데다 아토피성 피부염이 발진하면 송이를 돌보는 것 외엔 다른 것을 생각할 수도 없다. 첫 돌까지 송이가 큰 사고 없이 지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참 요행이었다. 송이가 급성 천식발작을 일으킨 건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송이를 어린이집에 적응시키고 있을 때였다. 천식발작 이후 송이의 건강상태는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밤이면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고 아침마다 컨디션을 살피며 하루 일과를 계획해야 했다. 복직을 포기하고 파트타임 일거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번역과 관련된 일거리를 찾아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된 것은 송이 덕분이었다. 5살이 되기까지 송이를 양육하는 일은 이처럼 많은 것을 포기하는 과정이었다.


생각해 보면 환경에 민감해진 것도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다 송이 덕분이었다. 송이 때문에 나는 유망했던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고,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것을 버렸고, 또 투자해야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웰니스족이 된 것은 순전히 송이 덕분이다. 개나 소나 웰빙을 찾는 시대가 되긴 했지만, 광고제품 따위나 소비하는 단순한 웰빙과는 비교하지 말라. 상업적으로 오염된 어쭙잖은 웰빙 수준을 뛰어넘는 진정한 웰니스의 삶을 추구한다는 말이니까. 정신적 풍요와 행복, 그리고 자기만족을 위해 삶의 질을 지속적으로 가꿀 능력이 있을 때 진정한 웰니스족이 되는 것 아닌가.


이 아파트 입주에 맞춰 이사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진정한 웰니스족이 되기 위해 많은 걸 버렸다. 사용하던 물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내 의식 속에 있던 웰빙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과감하게 제거했다. 많은 물건들과 습관들이 저절로 용도 폐기되었다. 내가 찾고 원하던 조건의 주거환경에 입성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입지조건부터 친환경인 이 아파트의 이름이 웰니스였던 것도 자극이 됐다. 입주민들의 웰니스적 삶을 표방한다는 분양안내 카탈로그를 보는 순간, 내가 찾던 바로 그 집이라는 확신이 왔다. 벅찬 기대로 밤을 새우며 입주를 계획하던 그날의 기억을 나는 잊을 수 없다.


투자 가치로서가 아니라 내가 살 집이기에 나는 진심으로 이 아파트의 이름과 구조와 환경에 끌렸다. 일조권을 확보하면서도 공간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치한 4베이 평면설계도 좋았지만 주방과 거실 사이에 중문을 두어 음식 냄새를 관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혁신적인 디자인이었다. 급조된 것처럼 대충 만들어놓은 다용도실의 칸막이가 아닌 과감하게 4룸 중 하나를 할애한 대형 드레스 룸은 정말 압권이었다.


모델하우스를 보면서 내 눈길을 붙잡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친환경 우드블라인드였다. 블라인드를 내리자 한층 고급스러운 공간으로 변신했던 것이다.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송이가 한 밤중에 일어났을 때 뻥 뚫린 검은 창문보다는 부드러운 자연목의 블라인드를 보는 것이 편안할 것 같았다. 그것은 취향 까다로운 내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호수를 조망하는 위치에 단지의 한쪽에서 시작되는 근린공원을 산책할 수 있어서 그야말로 깃털 보금자리에 꿀잠을 잘 수 있는 조건이었다. 아이 교육이나 문화생활은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신도시 인프라를 누릴 수 있었다. 송이를 양육하기엔 이보다 좋은 곳을 찾기 힘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만 남편 회사와의 거리가 문제였는데, 운이 따라 주었다. 2년 동안 베트남 파견근무 결정이 난 거였다. 다행이었다. 일단 입주를 해서 새 집에 사는 기분을 차분히 누리다가 남편이 파견근무를 끝내고 돌아오면 그때 다시 고민할 일이었다. 안 그래도 빈번하게 요구하는 시댁 방문 때문에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았는데, 남편이 해외에 나가있으면 시부모와도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길 거였다. 모든 상황이 내 계획대로 준비되어 갔다.


입주계획은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나는 최대한 밝고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마감재 옵션들을 체크했고, 집안의 모든 가구를 친환경 인증마크를 획득한 유명회사 제품으로 바꿨다. 전자제품도 청결을 위해 다시 구입했다. 물론 ISO AAA등급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다. 이전에 쓰던 가구와 전자제품들도 구입할 당시에는 최고급 신제품이었지만 새집에 들이기엔 규격이 맞지 않았고 위생 상태도 마음에 걸렸다. 어차피 전자제품은 소모품이라 기회가 있을 때 바꿔주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거였다.


하지만 정작 웰니스 아파트에 입주를 하자마자 웰니스족의 한계에 부딪쳤다. 이런 꼴을 목도하게 될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나는 뼈가 저릴 만큼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다. 입주민의 자격조건을 검증하지 않는 한, 이런 공동주택에서 웰니스란 망상에 불과하다는 걸.


거실의 샹들리에가 흔들릴 만큼 충격을 가하고도 이제부턴 조심하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치는 위층 여자에게 나는 별명을 붙였다. VIP! 나의 웰니스를 위해 퇴출해야 할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그따위 선전포고를 듣고 내가 이대로 두고 볼 거라고 생각했다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이제 방법은 하나다. 내 삶에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그 여자에게 나 또한 VIP가 되는 수밖에. 무식한 그 여자가 알리 없겠지만 이건 VIP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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