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1

단편소설

by 힐링가객

아주 넘쳐나네 넘쳐나! 허허 대단들 하십니다. 정말…….

정씨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혼잣말로 풀어내고 있었다. 주차 공간을 찾아 아파트 담 밖을 두 번째 도는 중이었다. 애매하게 두 자리를 차지하거나 성의 없이 삐딱하게 대놓은 차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차들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넘길 수 있었다. 이 땅의 어련하신 민폐 주차 빌런들과 김여사들이 몽땅 사라지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아파트 관리 규정상 모든 입주민은 한 가구당 두 대의 차량까지 단지 내에 주차할 수 있었다. 추가 차량에 한해서는 매월 주차비를 부담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아파트 주민임에도 불구하고 1톤 이상의 화물차는 단지 안에 주차할 없었다. 소유한 차량이 트럭 한 대뿐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입주민의 안전을 위한 자치회 규정이었다. 애초부터 단지 안엔 화물차가 들어갈 만큼의 주차 자리가 없었다. 그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런 건 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 건 아파트 담 밖의 소방도로만큼은 화물차를 소유한 입주민을 위해 남겨달라는 거였다. 엄밀히 말하면 소방도로 역시 주차 위반 구역이었다. 하지만 과태료 부담을 하더라도 입주민의 생계를 위한 소유 차량이니 주차 우선권을 달라는 말이었다.


주변 상가를 이리저리 돌던 정씨는 음식물 쓰레기장 옆에 비어 있는 자리를 찾아냈다. 냄새와 파리 때문에 여름철엔 승용차들이 주차를 기피하는 장소였다. 아파트 주차장엔 고급 자가용들이 등껍질을 빛내고 있었다. 나란히 박제된 곤충들 같았다. 나날이 늘어나는 입주민의 승용차들 때문에 그의 심기는 불편했다. 특히, 억대가 넘어가는 외제 차들이 눈에 거슬렸다. 뭘 해서 돈을 벌어야 저런 차를 몰 수 있을까 생각하면 허탈했다. 당뇨 합병증으로 빚만 남기고 가신 아버지 덕분에 일찌감치 사회인이 된 그로서는 대출금에 의존했을망정 경기도 소도시에 30평 남짓한 집을 소유한 것도 장한 일이었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지나쳐 계단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나날이 근육이 빠져나가는 허벅지 사이즈를 유지하기 위한 그 나름의 운동법이었다. 엘리베이터를 두고 걸어서 올라오는 그를 아내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이해 못할 사람은 아내였다. 늘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아내야말로 연구 대상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내와 아이들이 하루 동안 만들어 놓은 쓰레기가 먼저 보였다.


30평 남짓한 공간에 현관 전실까지 둔 건 분양을 겨냥한 이 아파트의 차별화 전략이었다. 아내는 입주했을 때 이 공간을 무척 좋아했다. 한동안 화분을 진열해놓거나 플라스틱 책걸상을 펼쳐놓고 아이들 놀이 공간으로 쓰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 아들놈 자전거가 자리를 차지하더니 가끔 재활용품을 쌓아놓았다. 그러더니 이젠 아예 재활용품 보관 장소가 되었다. 오늘 그의 시선을 붙잡은 건 다름 아닌 택배 박스였다. 인터넷 서점에서 무언가를 사들인 흔적이었다. 아내가 하는 짓이란 게 끝없이 공부를 한답시고 책을 사들이는 일인데, 또 무언가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사람이 들어와도 아이들은 방에 틀어박혀 나와 보지 않았다. 거실 탁자에 설치한 데스크톱 컴퓨터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아내만 슬쩍 돌아봤다.

왔어요?

영혼 없는 아내의 인사법이다. 대답 없이 아내를 지나쳐 화장실로 들어갔다. 두어 시간이나 참았던 소변을 보고 나와서 딸애의 방문을 열려고 하니까 아내가 돌아보고 고개를 저었다. 개의치 않고 문을 열어보니 딸애가 아내와 똑같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노크하라고 써놓은 거 안 보여?

딸애는 침대에 누운 채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짧은 티 아래 통통한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상황을 알아차린 그는 얼른 문을 닫았지만 자신이 아비인데 왜 딸애 앞에서 그렇게 조심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의 얼굴을 외면하고 아들의 방문을 열었다. 아들놈은 컴퓨터에 눈을 박고 있었다.

녀석아 아버지 왔는데 인사도 안 해? 컴퓨터만 하고 있으면 뭐가 나와?

대답 없는 아들놈 대신 아내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고물 컴퓨터 가지고 수행평가 하느라 끌탕하고 있는 애한테 알지도 못하면서…….

머쓱해진 그의 눈과 원망 섞인 아들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말없이 방문을 닫아주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래 모두 내 탓이다.

속옷을 챙겨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는데 스멀스멀 부아가 치밀었다. 그는 땀에 젖은 옷을 벗었다. 그래도 가장인데,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들어와서 식구들 눈치까지 봐야 한단 말인가 생각하니 부글부글 속이 끓어올랐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었다. 딸애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이미 퇴근 후에 아이들과 나누던 소소한 즐거움들은 끝나버렸다. 어차피 자식 효도는 아기 때 다 받은 거라는 말도 있지만, 그 즈음 딸애는 삐져있기 일쑤였다. 어느 날 기분이 풀어진 딸에게 뽀뽀 한 번 해달라고 장난을 걸었다.

씻고 오면 해줄게.

약속했던 딸애는 그가 씻는 사이에 잠들어버렸다. 다음날 출근하면서 어젯밤 약속 안 지켰으니 두 배로 뽀뽀하라고 하자 딸애가 몸을 빼며 혼잣말처럼 뱉었다.

더러워.

섭섭해진 그가 과장된 표정으로 화를 냈더니 한 술 더 떴다.

아, 정말, 재수 없어.

이런 음절들이 딸애 입에서 튀어나왔다. 한동안 그는 어리둥절했다. 아내는 사춘기도 모르냐고 그를 힐난했다. 딸애의 사춘기는 무슨 괴물 같았다. 아니 아빠인 그를 괴물로 만들었다. 그 후로 뽀뽀는커녕 인사조차 나눠주지 않았다. 원하는 걸 사주거나 좋아하는 음식을 사 들고 들어가도 딸애의 마음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의 입지는 점점 더 험악해졌다. 중학생이 된 아들놈은 딸애보다도 그를 더 뜨악하게 대했다.

그에게도 그가 바라는 삶이라는 것이 있건만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화물을 까대기하다가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왔는데, 그런 따스한 시절은 다 지나가버렸다. 힘겨울 때면 공허감을 느꼈고, 그런 날은 집에 돌아오면서 기대와 현실 사이의 거리를 생각하며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그는 쉬고 싶었다. 청결하게 정돈된 집 안에 들어와 안락함을 맛보고 싶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고 싶었고, 종일 수고한 그를 상냥하게 맞아주면서 맛난 간식도 차려주는 아내의 애정도 느끼고 싶었다. 그 모든 것들이 환상이라 해도 최소한 수고했다는 인사 정도는 듣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격려도 하고 용돈을 건네며 머리를 만져주고 싶었다. 가끔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방해받지 않고 스포츠 뉴스를 들으며 졸음에 빠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그림 같은 기대감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든 이후부터 집의 현관문을 들어설 때면 매번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저 아이들이 무사히 집 안에 들어와 있는 것, 아내와 싸우지 않고 대면을 끝내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자는 거였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이 철들면 아비 마음도 다 알게 될 거라 생각했다. 사실 그는 재치와 유머가 있는 사람이었다. 사무실에서나 친구들에게 듣는 말이었다. 소소한 장난을 좋아해서 마음만 먹으면 어떤 다툼이 있더라도 당장에 회복할 자신이 있었다. 오늘도 현관문을 열기 전, 숨을 들이마시며 기분을 세팅했던 참이었다. 그는 집안 분위기가 유쾌한 건 아니지만 못 견딜 만큼은 아니라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날이 더워서 오늘도 여러 차례 옷이 흠뻑 젖었다. 샤워부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로 몸을 적시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땀으로 미끄덩거리는 몸은 염분 때문인지 거품이 쉬이 꺼져버렸다. 그는 샤워타월에 보디샴푸를 듬뿍 덜어서 샤워를 끝냈다. 나와 보니 아내는 여전히 알을 품고 있는 암탉처럼 컴퓨터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입안이 텁텁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시원한 보리 냉수를 기대했지만, 역겨운 향이 나는 산미나리 씨앗 우린 물만 잔뜩 있었다. 또 어디서 다이어트에 좋은 식품이라는 정보라도 얻었는지, 얼마 전부터 그걸 냉장고에 채워놓고 그에게도 먹으라고 했다.


고지혈증에 좋은 건강음료라나 뭐라나!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운동도 하지 않고 잠은 만날 두 세시에 자면서 무슨 다이어트를 한다는 건지. 그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해졌다. 냉장고 문을 닫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내의 눈썹이 치켜 올라간 것을 보았으나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자동 잠금 소리를 듣는 순간 지갑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그는 다시 들어가기가 구차스러워 그대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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