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아내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결혼 전 마른 편이었던 아내는 둘째아이 때 갑자기 몸이 비대해졌다. 출산 후 빠질 거라고 예상했던 몸은 부은 채로 오히려 무게가 조금 더 늘어났다. 키가 큰 편이라 심각해 보이지는 않으나 전에 입던 옷을 다시 입지는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노상 허리를 앓으면서도 운동은 죽어라고 하기 싫어하는 아내의 취향이었다. 운동 좀 하라고 타박이라도 하면 오히려 그에게 쏘아붙였다. 비만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1순위 증상이라며 씨근덕거렸다. 아내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비만 클리닉에 다니며 관리를 받아서 제 몸을 유지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건강을 관리하라는 말을 무조건 살 빼라는 말로 오해하고 덤비는 데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둘째 출산 후에 아내는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다. 그때 아내는 두 아이와 온종일 싸우다가 저녁에 그가 퇴근하면 밥을 차려주거나 기저귀를 널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볕이 남은 어느 토요일, 동료들은 퇴직한 직원의 집으로 한잔하러 몰려가고 본의 아니게 일찍 퇴근하게 되었다. 딸애는 일찍 들어온 아빠에게 매달리며 좋아했고, 갓난이 아들놈도 겨우 얼굴을 익힌 아빠를 반겼다. 음울하게 젖은 아내에게 볕을 보여주려고 캄캄한 커튼을 젖히자 아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다가 커튼을 도로 닫았다. 그런 아내에게서 어둠이 느껴졌다. 위험한 침묵이었다.
우진이가 오늘은 우리 수아 보러 안 왔어?
가끔 왕래가 있는 이웃집 아이였다. 딸애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며 쫑알댔다.
우진이 안 와. 엄마랑 우진이 이모랑 싸웠어.
아내는 그의 시선을 비켜서 주방으로 나가버렸다. 딸애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온 그는 오늘 같은 날은 신혼 때처럼 아내를 위해 외식이라도 하고 내일은 휴일이니 공원에 나가 바람이라도 쐬어 주리라 생각했다. 그의 제안에 딸애는 발을 구르며 좋아하는데, 갓난이를 챙겨서 나가는 것이 귀찮다며 아내는 움직이지 않았다. 쉬운 방법으로 짜장면에 탕수육을 시켜 먹었다. 그날 밤 요의를 느끼고 일어난 그는 이상한 모습을 보았다. 아내는 잠을 자지 않았다. 갓난이 때문에 편한 잠을 잘 수 없으니 밤새 두어 번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이들이 잘 자고 있는 한밤중에 아내는 일어나 앉아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벽을 바라보고 앉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멍한 모습으로 있었다. 그가 일어나 왔다 갔다 해도 반응하지 않았다.
수아 엄마 왜 그래? 무슨 일인지 말을 해야 알지. 당신 어디 아퍼? 어이. 정신 차려.
아내는 무슨 말을 해도 반응이 없었다. 그가 아내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자 그제야 그의 얼굴을 흐릿하게 보고는 이부자리에 푹 쓰러지는 거였다. 아내의 몸에 열기가 느껴져서 찬물을 떠다가 아내에게 먹이고 아내가 잠들 때까지 지켜보았다. 이튿날 아내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돌봤다. 그는 아침을 먹자마자 집을 나섰다. 두어 시간 거리의 시골에서 텃밭 농사를 지으며 홀로 지내는 장모는 갑자기 들이닥친 그를 보고 놀랐다. 딸이 아프다니까 영문도 모르고 따라나섰다.
아내가 출산할 때마다 집에 와서 몸조리를 도왔기 때문에 장모가 이참에 올라와서 같이 지내도 좋겠다 싶었다. 맵짠 살림으로 혼자 딸을 키워낸 장모는 성격이 칼칼한 편이었다. 장모는 걱정했던 것보다 멀쩡한 아내를 보고는 안심하는 눈치였다. 집안 꼴을 보고 간간이 잔소리를 했지만 한나절 만에 집 안을 반들반들하게 정리했다. 장모에게 아내를 맡기고 그는 월요일에 일을 나갔다. 그런데 퇴근해서 돌아오니 장모가 가버리고 없었다.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장모는 밤이 늦어서야 통화가 되었다.
정서방, 수아 에미 걱정 말게. 지가 호강에 겨워 그렇지 몬 우울증이야. 수아 에미한테 단단히 일렀으니까 그런 일로 자네 상심하지도 말게.
장모의 말대로 상태가 더 심해지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우울증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갈 무렵 장모의 건강이 나빠졌다. 그가 집으로 모셔오자고 했지만,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간간이 어린이집 종일반에 아이들을 맡기고 아내 혼자 장모에게 다녀왔다. 장모가 가는 날까지도 그에겐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전부였다. 장모의 장례는 2일장으로 간단히 치렀다. 장례 후 말이 없어진 아내를 보면서 우울증이 도지나 걱정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공부에 빠져들었다.
빈손으로 집을 나온 정씨는 무료하게 아파트 산책로를 걸었다. 차 키를 챙겼더라면 트럭에 두고 다니는 잔돈이라도 꺼내서 맥주 한 캔 정도는 사서 마실 수 있었을 거였다. 그는 걸을수록 화가 났다. 이게 다 그놈의 택배 박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인데, 아내는 심각하게 무언가를 공부하느라 바빴다. 한번 시작하면 사생결단을 낼 듯이 컴퓨터에 매달렸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다시 다른 공부를 시작하는 식이었다. 그런 열정으로 고시를 했으면 벌써 판검사가 되었을 거였다. 그렇게 취득한 국가공인 자격증도 여러 개였지만, 자격증을 사용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남들은 아이들이 크면 나가서 학원 비라도 번다는데, 그쪽으론 요지부동이었다.
어차피 아내는 연구대상이었다. 그의 박봉을 비난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이 편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는 데다, 유일하게 배운 것이 화물차 운송업자인 그로서는 교육적인 부모 노릇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을 챙기는 아내가 있는 건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내가 아이들을 붙들고 이야기하는 비전이니 자아실현이니 하는 말들은 그저 소설 파먹는 소리로만 들렸다. 도무지 현실성이 없는 그 따위 말이 아내의 정신에 기생하면서 아내를 허영 속으로 끌고 가는 것만 같았다.
화물차 운송업에 몸담고 살아온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가 맡은 일이 고정된 건 아니었다. 박스 공장 배달직으로 신혼 기간을 보낸 그는 둘째가 태어날 무렵 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택배회사로 옮겨갔다. 택배 일을 하는 동안 갖은 일을 다 겪었다. 아침 7시에 물류센터에 도착해서 당일 배송할 물건을 분류하고 배송 차량에 물건을 싣는 데만 여섯 시간이 걸렸다. 허겁지겁 점심을 먹고 배송을 시작하면 밤 10시가 되어야 끝나는 일이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명절이면 밀려드는 물량 때문에 철야를 하고 차 안에서 쪽잠을 자야했다. 며칠 동안 피로가 몰려 졸음운전을 하다가 가로수를 들이받은 적도 있었다. 자신의 과실로 사고를 낸 경우 차량 수리비는 배달원의 몫이었다. 때려치우고 싶은 고비도 여러 번 겪었다.
거절하기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자기 물건을 먼저 배송해달라고 부탁하는 고객들의 요구는 처음엔 그를 괴롭혔다. 구역을 건너뛰고 달려가서 물건 다 내리고 해당 고객의 택배를 배달하고 나면 나머지 물량을 배송하는 시간이 연장되어 다른 고객들에게 항의를 받았다.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나중엔 요령이 생겨 정중히 거절할 줄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아파트가 아닌 경우 고객이 지시한 장소에 물건을 놓고 갔는데도 분실되었다며 배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박스가 작은 것은 배전반 안에 넣어두기도 했고, 옥상에 올려놓거나 계단 밑에 숨겨놓고 일일이 연락을 해줘야 했다.
어떤 유별난 아파트에서는 택배 트럭이 드나들지 못하게 해서 주변 상가를 피해 먼 거리에 트럭을 세워놓고 카트에 물건을 옮겨 싣고 동마다 끌고 다니며 배송을 하느라 녹초가 되었다. 하필 그가 맡은 구역인 데다 단지가 커서 거의 매일 배송할 물량이 있었다. 그 아파트에 배송을 마치고 다리가 후들거려 남은 물량을 배달하느라 오후 내 개고생을 했던 기억은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결국 몇몇 택배회사들이 담합을 해서 그 아파트로 배송되는 물건에 반송사유서를 붙여서 반송했고, 불이익을 당한 주민들이 입주자 대표회의와 관리실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택배 차량 진입이 제한적으로 허락되었다.
그런 일상을 겪으면서 그의 입은 거칠어졌다. 화장실을 찾지 못해 소변을 참고 다니는 건 다반사였다.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좁은 주택가에 배달을 하다가 딱지를 끊기도 했다. 알고 보니 스쿨 존이었다. 하루 일당을 날리는 게 실로 순간이었다. 한번은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아파트 경비실에 맡겼는데, 같은 이름의 아파트에 오류 배송을 한 걸 뒤늦게 알았다. 다음날 고객의 항의를 받고 진땀을 흘리며 차아다 주느라 시간을 낭비해서 늦은 밤까지 일한 적도 있었다.
유치하게 아이들이 말하는 머피의 법칙을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날이 있었다. 배송 시간을 독촉하는 고객들의 전화는 쏟아지고, 고층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유난히 사용자가 많아 몇 층씩 계단을 헉헉대며 뛰어오를 때, 방해물이 널려 있는 비상계단에서 들고 있는 짐들이 무거워 진땀을 흘리는. 하필 부재중에 배송을 마친 물건을 다른 배송지로 가져다 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고객의 전화라 짜증이 치미는데, 감정대로 상대할 수는 없어 코스를 확인하면서 먼저 약속한 고객과의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해 좌절에 빠지는 그런 상황 말이다.
포장된 물건은 내용물을 모르기 때문에 늘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지만, 고가의 물건을 떨어뜨려 배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 경우 회사에서 50퍼센트를 부담하고 나머지 50퍼센트는 담당 배달원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그건 원칙일 뿐이고 현실은 판이했다. 갑질하는 회사 위에 갑질하는 고객이 있었다. 물건 값을 배상한다고 모든 책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약속된 날짜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을 막는 것도 결국은 돈, 피해 배상금이었다.
아무리 치사하고 억울해도 일을 그만둘 처지가 못 된다는 것이 기가 막힐 뿐이었다. 월요일이나 토요일에 비해 평일엔 택배 물량이 서너 배는 많아서 그는 늘 피곤에 절어 있었다. 전투적으로 일과를 마치고 밤늦게 퇴근하는 날엔 가족들의 따스한 환대가 몹시 그리웠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채워지지 않았다. 일요일 내내 잠을 보충하고 나면 또다시 월요일이었다. 휴가는 고사하고, 잠이라도 실컷 잘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만성 허리 통증과 근육통을 얻었지만, 그래도 그에겐 택배업에 대한 일종의 자부심이 있었다. 직업이란 정직해야 하고, 일하는 만큼의 소득을 얻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을 날마다 채워주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아파트 융자금을 조금이라도 빨리 갚아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커가는 아이들이 그에겐 위안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지금도 울퉁불퉁 화만 내는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없던 힘이 생겼다. 못 배운 아비 만나 자가용 한 번 태워주지 못한 걸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졌다. 문제는 아내였다. 아내는 잠자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내와 잠자리를 하려면 몇 날 며칠 눈치를 봐야 했다. 갱년기라 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인데도 마지못해 의무방어를 하는 듯 감응하지 않았다. 덩달아 그의 젊음도 시들어버리는 것만 같아서 씁쓸했다.
화물 트럭을 구입해서 직영물류센터의 자영업자로 전환하면서부터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금을 얻어 트럭을 구입했기에 이자 부담이 생긴 데다, 차량 유지비도 만만치 않아서 조급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지입차주 대우로 수수료 분배가 높아졌고, 집하 거래처가 차츰 늘어나 수입도 늘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차량 구입에 들어간 대출금을 계획보다 앞당겨서 갚아가고 있었다. 앞으로 두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에 들어가면 교육비 지출이 많아질 거였다. 서둘러 차량 대출금과 집 융자금을 갚고 두 아이의 교육비도 마련한다는 것이 그가 날마다 궁리하는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