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권력게임을 잘 못 한다
나는 권력게임을 잘 못 한다.
정확히는, 게임이 시작됐다는 걸
대체로 너무 늦게 안다.
아니, 알아도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가끔은 내가 인간 사회에 연수 나온 외계인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연수는 왔는데 설명서는 못 받았다.)
1. 조숙여아 무리에서 살아남지 못한 이유
중학생 때,
공부 좀 잘하는 여자애들끼리 자연스럽게 뭉친 무리가 있었다.
내 첫 시험 성적이 잘 나왔던 날,
활달한 애가 먼저 다가와 친해지자고 했다.
나는 순진하게 좋아했다.
그리고 그 애가 속해 있는
대여섯 명의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활달하고 시원시원하고, 놀기도 잘 놀고,
뭔가 눈에 띄는 그런 여자애들의 무리.
한 번은 그 무리 중 한 아이 집에 놀러 갔는데,
내 이름이 맨 위에 쓰여 있었다.
<라이벌>이라는 제목 아래.
그냥 공부 잘하는 아이 이름을 두서없이 썼다는
그 친구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느 순간부터 끌어들였다가,
미워했다가,
밀어냈다가,
시비를 걸었다가,
손을 내밀었다가.
내 눈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러다 이런 적도 있었다.
나는 어릴 적 그림을 잘 그렸고,
특히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서 상복이 좋은 편이었다.
미술시간 끝나고 배경칠을 마친 내 포스터를 보고 있는데,
“이것도 그림이냐?”
누가 시비를 걸었다.
그 무리 중 한 아이였다.
걔도 그림에 욕심 있는 아이였다.
“이것도 그림이냐니ㅡ
그럼 네 그림은 어떤데?”
내가 반격하자,
그 아이는 갑자기 무너져 울었다.
나는 공격수였던 그 아이가 도대체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이유 없이 공격받은 게 억울해서, 그냥 같이 울었다.
친구들이 와서 우리 둘을 달랬다.
뭐 때문에 그 애가 운 건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어느 날 시험기간, 그 무리의 애들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너 시험지 잘 가려.
네 옆자리 애가 너 답지 보더라.”
황당한 것은, 그 커닝한 애도 그 무리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말했다.
“그래? 알려줘서 고마워. 조심할게.”
그리고 그대로 혼자 편안히 집에 갔다.
2. 눈치는 없지만 서울은 갑니다
시간이 꽤 흘러, 이번엔 동호회였다.
사람들 관계가 조금 더 세련되었을 뿐,
게임의 구조는 같았다.
어쩌다 즉흥적으로 우리 외할아버지 펜션에
몇몇이 함께 카풀로 놀러 가기로 했다.
나는 그 동호회에서 제법 유명한 남자의 차를 탔다.
스포츠카였다. 뒷좌석이었다. 천장이 낮았다.
사람이 탈 자리가 아니라
가방 자리 같은 뒷좌석이었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머리가 쿵.
“머리 부딪혀.”
내가 말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네 키에도 거기 부딪히냐?”
…아. 이건 농담인데 뼈 있는 농담이다.
그땐 그냥 불쾌한 농담 하나로 넘겼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 어머니가 맞아준 펜션에서
일행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또다시 내 키로 시비를 걸었다.
이전 모임에서도 그는 내 키를 지적한 전력이 있었다.
그때도 반박했는데, 이번엔 제대로 들이받았다.
"아, 오빠도 키가 작으면서.
왜 자꾸 시비예요?!"
애들이 옆에서 말려 그쯤에서 멈췄다.
사실 나는 그를 아래에 둔다거나,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냥 자꾸 툭툭 시비를 걸지 않았으면 했다.
그게 다였다.
그는 이전에도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냥 사실을 말한 거야.”
그래서 나도 사실을 말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먼저 내 키를 꺼냈고,
나는 같은 방식으로 되돌려 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상호 적용되는 규칙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그날 이후 전보다 훨씬 날이 서 있었다.
나는 그게 왜 그렇게 화가 날 일인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이해했다.
'사실'이 위로 올라오는 건, 금지에 가까웠던 거다.
이튿날 돌아오는 길, 차는 막혔고 그는 점점 짜증을 냈다.
“아니 길이 이따위로 막히는데 왜 통행료를 ‘처’ 받아!”
차 안 공기가 슬슬 험악해졌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자 멤버가 먼저 내리며 말했다.
“언니, 불편하면... 여기서 내려서 버스 타도 될 거 같아.”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 타고 가기로 했다.
“아니야. 괜찮아.”
그리고 조수석으로 옮겨 앉았다.
꿋꿋하게.
내가 내려야 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날 나는 돌부처 모드로 전환해
그의 짜증과 침묵과 기분을 다 튕겨내며
서울까지 갔다.
돌이라서, 들어올 데가 없었다.
그의 눈에는 내가 서울까지 배송 완료해야 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내가 중간에 내려주길
아마 진심으로 바랐을 것이다.
사실 꽤 불편했다.
그러나 불편과 상처는 다르다.
불편은 목적지에 도착하면 끝날 문제였다.
훗날 이 얘기를 들은 동호회 멤버가 말했다.
“그래도 언니가 먼저 인사하면
그 오빠도 아닌 척 좋아하면서 받아줄 거예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알았다.
아.
이게 게임이었구나.
나는 어릴 때도, 지금도 같았다.
사람들은 게임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냥 내 갈 길을 갔다.
그래서 나는 권력게임을 못 한다.
중학생 때 커닝사건은
“무리에 다시 들어와도 된다”는 신호였다는 걸,
나는 먼 훗날에야 알았다.
그때는 이미 문이 닫혀 있었다.
내가 닫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그 무리 안에는
오래가도 좋을 ‘진짜 친구’ 후보는 애초에 없었다.
그래서 크게 상처도 남지 않았다.
다만, 중학교라는 작은 사회 위에서
잠깐 게임에 끌려들어 갔다 나와버린
외계인 연수생 한 명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게임은 상대방 혼자 했고,
나는 목적지만 찍었다.
권력게임에서 지는 사람은 분노하지만
연수생은 그냥 서울로 갔다. 배송 완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