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을을 봤고, 남들은 미남을 봤다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나는 못 보고, 남들은 다 봤다는
그 잘생긴 남자.
꽤 오래전, 도쿄에서 큰 아쉬탕가 요가 워크숍이 열렸다.
한국 아쉬탕가 요가계의 꿈나무였던 우리는
아쉬탕가 요가 센터의 선생님을 따라 단체로 그 워크숍에 참석했다.
그 워크숍에는 일본인은 물론, 서양인 수련자들도 있었다.
사실, 아쉬탕가 요가할 때는 외모가 뒷전이다.
끝까지 따라가기만 해도 버겁고,
차크라 아사나로 몇 번 바닥을 구르면
머리카락이 늘 산발이 된다.
그래서 나는 아쉬탕가 요가를 이렇게 생각해 왔다.
‘머리 단정 유지 불가’.
매일 아침 같은 시간,
우리는 워크숍 진행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아쉬탕가 요가를 수련했다.
한 사나흘쯤 지나서였다.
또래들과 수다 떠는 시간이었다.
“그 남자 봤어? 나랑 같은 줄에서 수련하는 남자.”
“봤지, 그 잘 생긴 남자!”
“완전 잘 생겼던데? 일본사람인 모양이더라.”
나만 빼고 다들 그의 외모를 칭찬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외모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할 말도 없었다.
나도 사실 그 남자가 누군지는 안다.
맨날 같은 자리에 앉아
웃통을 벗고 수련했다니까.
그 남자의 뒷모습은 매일 봤다.
하지만 얼굴은 못 봤다.
끝까지.
굳이 보겠다는 의지도,
호기심도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뒷모습을 봤고,
남들은 얼굴을 봤다.
다른 날, 또래들끼리 하라주쿠를 구경하고
신주쿠 숙소로 걸어 돌아가던 날이었다.
내 시야엔 고층 건물 뒤로
짙어지는 노을빛이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방금 봤어, 봤어?!”
앞에서 일행이 소리쳤다.
“봤지! 대박!”
연예인급으로 잘생긴 남자가
방금 지나갔다고 했다.
이미 지나간 후였다.
나는 뒤늦게
“어디에~?”
라고 물었지만
당연히 아무도 대답해 줄 수 없었다.
나는 노을을 봤고,
남들은 미남을 봤다.
세상에는 내가 못 본
미남이 많은 모양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등을 활처럼 젖혀 정수리를 바닥에 대는 물고기자세.
목을 뒤로 완전 젖히기 때문에,
아쉬탕가 요가의 웃자이 호흡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자세에서도
뒷사람의 자태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 자세에서도 무너지지 않더라.”
그 와중에 자태를 본다니.
진짜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 호흡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였으니까.
나는 호흡했고,
남들은 자태를 감상했다.
아쉬탕가 요가를 하다 보면 도전 과제가 계속 주어진다.
그중 하나. 다리 간격을 넓게 두고 서서, 상체를 굽히는 자세가 있다.
이름은 프라사리타 파도타나 아사나.
그 자세 옵션 C에서는 등뒤로 양손을 깍지 껴서 최대한 바닥에 닿게 젖힌다. 우리 일행 중에서는 딱 한 사람만 바닥에 손이 닿았다.
그녀는 정수리를 먼저 바닥에 대고,
그 힘으로 팔을 더 젖히면 닿는다고 했다.
나는 그 비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아침 수련 시간.
“프라사리타 파도타나 아사나 C.”
나는 다리 간격을
평소보다 더 넓게 벌렸다.
안정성은 당연히 떨어졌다.
정수리를 겨우 바닥에 대고
양팔을 뒤로 젖혔다.
아직 닿지 않았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아, 닿았다!
데구루루.
체중이 앞으로 쏠리며
나는 아주 깔끔하게 굴러버렸다.
작게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노 차크라.”
선생님이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웃음기 어린 목소리였다.
이미 나는 번개같이 일어나
아무 일 없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간 뒤였다.
하지만 이미
우리 일행 사이에선 소문이 돌고 있었다.
“언니, 분명히 앞으로 구른 걸 봤거든?
다시 보니까 없어. 빛의 속도로 사라졌더라.”
엉뚱한 구르기를 한 학생으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나는 수련했고,
남들은 관람했다.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몇 년 후에 들었다.
내가 그 팀에서 1,2위를 다투던 수련생이었다고.
그 말을 전해준 사람도,
나도 모르는 내 ‘라이벌’이라고 지목된 사람도,
손이 바닥에 닿는 비결을 가르쳐 준
그 친구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굴렀고,
다시 섰다.
그리고 다음 날에도
또 섰다.
매일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만 더
해보려고 했을 뿐이었다.
1, 2위라는 말은
그저 카더라에 가까웠다.
우리는 각자 수련도, 일도
제 갈 길을 갔다.
그리고 훗날,
함께 요가 촬영을 하고
교본도 공저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