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서
오랜만에 비가 오는 늦겨울이었다.
흐린 하늘, 약하게 내리는 비.
코트만으로 넉넉히 막을 수 있는 정도의 추위.
나는 친구를 만나러 서울로 향하는 광역버스 정류장에 줄을 섰다.
네댓 명 앞에 있었다.
그런데 내 바로 앞에 선 여자가 우산도 없이 서 있었다.
비가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우산이 없어도 될 정도는 아니었다.
우산이 없나 보다.
나는 말없이 우산을 슬쩍 앞으로 기울였다.
줄 선 간격이 좁아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같이 쓸 수 있었다.
기척을 느낀 그녀가 고개를 들더니,
뒤를 돌아보며 얼른 인사했다.
“앗, 감사합니다.”
“아, 비를 맞고 계시길래…“
나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지었다.
앳된 소녀였다.
많아야 중학생 정도 되었을까.
급하게 나오느라 우산을 안 챙겨 왔나.
딸이 생각났다.
우리 딸도 좀 더 크면 이렇게 혼자 다니겠지.
앞의 소녀에게 어디까지 가느냐,
묻고 싶었지만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우산만 계속 같이 썼다.
버스가 도착하자, 소녀는 다시 뒤돌아보며
”감사합니다ㅡ“
라고 인사했다.
나는 미소 지었다.
겨울의 끝자락.
봄을 부르는 비는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