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썸을 못 봤고, 남들은 다 봤다
“와— 너무 좋다!”
C는 멋진 자연경관을 보며
거의 환호에 가까운 톤으로 말했다.
동호회 멤버 몇 명이서
근처 야외에 나들이를 나왔을 때였다.
C가 좋다는 말을 몇 번이나 연발하길래
나는 이런 데가 처음인가 보다 했다.
힘들었겠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C는 근처에 서 있던 남자 선배에게 말했다.
“선배, 나 좀 들어 올려줘 봐요.”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들어 올리려면, 안아야 한다.
둘은 아무 관계도 아니었다.
다른 여러 멤버들 눈에 뜨일 것이 자명했다.
내 머릿속에서 그 장면이 즉각 상영되기 시작했다.
아. 이건 그림이 좀 이상한데?
다행히 바람과 물소리에 묻혀
C의 말은 선배에게 닿지 않은 듯했다.
다들 떨어져 있어 나만 들은 모양이었다.
그 틈을 타 재빨리 물었다.
“너, 저 선배한테 관심 있었어?”
순간이었지만 C의 표정이 살짝 뾰로통해 보였다.
“아니.”
“아니, 그럼 왜…?”
나는 멍청하게 되물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뒤 C는 표정을 바꾸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외쳤다.
“와— 너무 좋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방금 내가 들은 건 분명 “들어 올려줘”였는데,
지금 C는 “좋다”만 남기고
그 사이를 통째로 지워버렸다.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다.
C는 자기가 어떻게 보이는지 잘 모르는 사람 같다고.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이상한 건 C의 행동인데,
왜 자꾸 내가 뭘 놓친 사람처럼 느껴졌는지.
그날 나는 C를
'가끔 뭘 잘 모르는 사람’으로 분류했다.
이전에도 뭔가 흡사한 일들을 겪은 바 있기에,
그 판단은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뒤,
더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동호회의 다른 여자 멤버들이 C에 대해 ‘여우’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여우? 뭘 잘 모르던데?’
나의 이런 생각과는 반대로,
그녀들은 한 남자 후배를 걱정했다.
그가 C를 좋아한다는 것.
그는 아주 순수한데 이러다가 일 터질 것 같다고.
그는 그날 나들이에 함께 했던 멤버였다.
게다가 그 자리에 C를 좋아하는 남자가
두어 명 더 있었다고 했다.
나는 전혀 몰랐다.
그저 확대해석이려니 넘어갔다.
며칠 뒤 나는 C와의 통화에서,
C가 그 순수하다는 남자에게 고백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백받으면 사귈 거냐는 내 질문에,
그럴 마음은 전혀 없지만
오로지 순수한 그 남자의 고백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논리에 잠시 멍해졌다.
‘그럼 고백하자마자 차인 그 남자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전화를 끊었다.
사귈 생각이 없는데
고백은 받고 싶다라니.
하지만 C의 바람은 무산되었던 것 같다.
동호회의 다른 여자 멤버들이 C에게 따졌고,
이튿날 C가 탈퇴하자 남자 멤버들이 화를 냈다.
그들은 내게 전화했고, 하소연했다.
나는 진지하게 통화했다.
공감하고 달래고,
이치가 안 맞는 부분엔 침묵하면서.
C는 다시 돌아왔고 남자 멤버들도 잠잠해졌지만,
이후 C의 활동은 훨씬 줄었다.
이후 고백은 있었는지 없었는지, 나는 끝내 몰랐다.
십 수년이 지나 생각의 조각을 맞춰보니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상황은 아귀가 너무 딱 맞았다.
무심코 ‘저 선배를 좋아하냐’라고 묻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C가 원한대로 흘러갔다면?
그랬다면 내가 즐겁게 추억하는
바람을 쐬고 사진도 찍고,
서로 놀리는 모양을 보고 깔깔 웃었던 그 나들이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C는 그저 고백을 받고 싶었던 사람이고,
나는 고백을 원한다면 ‘계약 의사’가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이제와 보니
썸과 여지에 관한 진짜 ‘뭘 모르는 사람’은
그때의 나였다.
나는 애매함 혹은 여지를 남기는 상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
나는 정보를 못 받은 게 아니다.
다른 멤버들이 정보를 떠 먹여주다시피 했다.
게다가 직접 본 것들이 다 정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못 알아봤다.
정보들을 연결할 개념이 전무했다.
내 질문은 지우개였다.
그때의 나는
내가 뭘 지우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궁금한 걸 물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알아차렸다.
내가 남의 ‘썸’을 지웠다는 걸.
그리고 C의 뾰로통한 표정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단 사실도.
나는 눈치 없다고 항의받을 당사자였음에도,
C와 그 남자 후배들의 민원을 번갈아 접수받는
콜센터 상담원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