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도는 낮고, 반응속도는 빠른 인간
내게는 빠르게 괜찮은 이성을 스캔하는
레이더가 장착되어 있지 않다.
대신,
빠르게 위험을 감지하는 센서는 있다.
문제는…
정확도는 떨어지고 반응 속도는 빠르다는 점이다.
꽤 오래전 대형 서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매대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저… 차 한 잔 하시겠어요?”
“…네?”
“아, 스타일이 제 취향이어서요.
괜찮으시면 잠깐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요.”
나는 아주 잠깐 말문을 잃었다.
“아… 네?
아, 아니, 저는 괜찮습니다.”
나는 재차 말을 걸려는 그에게
무조건 손사래부터 쳤다.
“아니요! 괜찮아요!”
라고 외치며 부리나케 자리를 떴다.
남겨진 남자의 눈에는 내가 아마
무서운 걸 보고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돌이켜보면 그가 민망했을 것 같아 조금 미안하지만,
그때는 정말 ‘36계 줄행랑’이라는 선택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때 두 개의 시스템이 동시에 돌아갔다.
먼저 남자의 인상.
20대 정도로 추정되는 마른 인물.
딱히 특정되지 않는 외모.
딱 그 두 가지였다.
애석하게도 내 레이더는 더 이상의 데이터를 남겨두지 않았다.
다른 쪽 시스템.
‘내가 꾸민 것도 아니고 티셔츠에 청바지 대충 입었는데,
취향? 대체 무슨 꿍꿍이지?
혹시 보험?
아니면 다단계?
설마 인신매매?
혹시…
도를 아십니까 신종 버전?’
나는 헌팅이 아니라,
포교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냅다 도망쳤다.
돌이켜보니 그는 그냥 말을 걸었을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당시 내 안의 보안요원반은
전혀 다른 의심부터 했다.
내 보안 시스템은 최신형이었지만,
에러도 그만큼 잦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안요원반은 상시 가동됐다.
친구 결혼식 다녀오는 길,
강남대로에서 젊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길을 묻는 줄 알고 잠깐 친절을 장착했다가,
아니라는 걸 알자마자
“아니요!”
하고 바로 철수했다.
그가 무슨 말을 꺼냈는진 기억나지 않는다.
항상 내 발은 판단보다 빨랐다.
그래서 나는 확인하기도 전에 도망친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헌팅과 포교를 구분 못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