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나치기엔 마음이 불편했다
그냥 어울려 놀았던 이유
국민학교 4학년,
나와 키가 비슷해 짝이 된 여자아이는
안경을 쓰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편이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나래,
예쁜 이름이었다.
어릴 때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에서
나비가 되는 어여쁜 여주인공의 이름이라서 더.
담임 선생님은 그 이름으로 농담을 하시곤 했다.
“야, 0나래! 집중 안 해?
날개 달고 날아갈래?”
나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는
주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친구들과 가끔 공기놀이 정도는 했지만,
수다에는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래라는 아이와는 짝이어서
아주 친한 것은 아니지만 가끔 어울렸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그 아이네 집에 놀러 갔다.
나래 부모님이 하시는 문방구에서 판매하는
‘아폴로’라는 군것질을 먹고 놀았다.
어느 날, 청소 시간이었다.
당시 국민학교에서는 종례 후
당번인 조가 돌아가며 교실 청소를 하고 귀가했다.
학급생 대부분이 귀가하고
청소 시간에 남은 몇 아이들이 나래에 대해 쑥덕거렸다.
아이들은 나래의 자리를 두고 수군거렸다.
의자에서 냄새가 난다느니,
무슨 병에 걸린 것 같다는 식의 말들이었다.
나도 떠밀리듯 그 분위기에 잠시 휩쓸렸지만,
그 말들이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들의 뒷담화에 가타부타 말은 거의 섞지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반박할 자신도 없었다.
다만 내가 당사자라면 남들이 그런 소문을 낼 때
속상하고 기분 나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 기억 속
특정인을 향한 근거 없는 뒷담화의 첫 목격이었다.
다음 날, 아이들은 나래를 슬금슬금 피하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내가 보니 그 애는 아픈 곳 없이 건강해 보였다.
그 뒷담화를 들려줄까도 싶었지만,
왠지 옮기기도 불편해서 그만두었다.
대신 그냥 어울려 놀았다.
친구로 오래가지 못한 것은,
수업시간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같이 장난을 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친구네 집에 간 날
그 이듬해, 5학년 즈음.
나는 이런 말을 들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는 네가 처음이야.
고마워.”
동급생의 집에 한 번 놀러 갔을 때,
그 친구가 한 말은 수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조용히 혼자 지낸 친구가 있었다.
아마 전학을 왔던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처럼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름과 인상이 기억에 남는다.
흔하지는 않은 차 씨 성을 가졌고,
하얀 얼굴에 커다랗고 동그란 안경을 썼다.
나는 그 애가 착실한 성격 같다고 느꼈다.
차분하고 선하다고도 생각했다.
그 외에 눈에 띄는 다른 특별한 점은 없었다.
둘이 함께 당번이라 학급 정리를 마치고 집에 귀가할 때였다.
내가 뭐라고 말을 걸었는지,
어쩌다 갑자기 그 친구네 가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그 친구네 집 작은 문 앞에 걸려있던
푸른색 발이 기억난다.
바구니에 알록달록한 실과 뜨개질한 것들이 여럿 쌓여 있었다.
목도리, 모자, 장갑 등.
“뜨개질한 게 많네. 혹시 네가 짠 거야?”
“응.”
“와, 너 실력이 되게 좋구나! 부럽다.”
“많이 해서 그렇지, 그리 잘하진 않아.”
내 감탄에 그 아이는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뜨개질 외에 학교 생활에 대해서도 짧게 대화를 나누었다.
딱히 친한 친구가 없다고 했다.
‘이렇게 선하고 괜찮은 아이가 왜 혼자인 거지?
착한데 왜?’
마음이 조금 아려왔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이 아이의 좋은 점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날 이후 나는 이 친구와 특별히 친밀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여럿이 함께 뛰어놀 때가 아니면
제자리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렸고,
주변을 살피며 지내는 편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 애와 더 친해질 생각은 못 해본 것 같다.
다만,
그 아이의 말만큼은 또렷이 기억한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나한테 친절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혼자 남아 있는 누군가가 보이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