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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든 Nov 23. 2017

어느 폐암 환자의 독백

암 치료를 위한 제언 및 사례들 9

“정말 착하게 살았는데, 그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내가 암에 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30대 중반의 증권사 직원이었던 그는 폐암 말기였다. 약간 수척해 보였을 뿐, 처음엔 암 환자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자마자 그가 깊은 병에 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말을 꺼낼 때 기침이 한 번 터지면 도무지 멈출 줄 몰랐다. 앞에 서 있는 게 미안할 정도로, 폐와 기관지를 몸 밖으로 꺼내기라도 하려는 듯 기침은 그를 그 자리에 주저앉게 만들어버리곤 했다. 겨우 기침이 멈춘 그의 눈엔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한 해 전 건강검진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었던 그였다. 검진에서 흔히 쓰이는 흉부 X선 검사에서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몸에도 별 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6개월 전부터 자꾸 기침이 나오거나 몸이 피곤해지고 혈담(血痰)이 나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장 근처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아무래도 폐에 이상이 있는 것 같은데, 소견서를 써 줄 테니 큰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아 볼 것을 권하더란다. 

처음엔 믿고 싶지 않았다. 건강검진을 받은 지 불과 1년도 안 됐는데 갑자기 몸에 문제가 생기다니, 앞이 캄캄했다. 소견서를 들고 찾아간 종합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역시나 암이었다. 그것도 폐암 말기였다. 그는 정말 억울했다.

“일 년 전에도 멀쩡했는데, 갑자기 암 말기라니…….”     


폐암, 그는 억울했다.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치료의 시작이다.


암은 조기 발견하면 치유가 가능하다고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종양 크기가 1cm 내외가 되어야 관찰이 된다. 이 상태를 1기 암이라고 하며, 1기 암의 세포 수는 약 10억 개 정도다. 10억 개의 세포에 이상이 생긴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암이 발생한 곳의 국부적인 문제일 뿐인가? 하물며 발견하자마자 말기 암 진단을 받는 경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것도 나이 30대요, 전에 이렇다 할 병력도 없던 사람이고, 자기가 생각해도 정말 착하게만 살아왔는데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긴 것일까? 

현대의학이 발달했다고 해도 아직 암의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된 것은 없다. 이것은 곧 암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생겨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유전적 소인이 강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병원 검진 시 가족 병력을 묻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암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여러 가지 주변 환경과 심리적 요인 또한 암이 생기는데 일조를 한다. 심리적 요인은 쉽게 말해서 울화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속이 답답해서 생기는 병인데,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가 아프거나 두통이 오는 사람이 있다. 흔히 신경성이라고 말하는 이러한 증상들은 심리 상태에 따라서 우리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암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말은 아주 좋은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그에 못지않게 부정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는 착했으므로 다른 사람 몫까지 쉬지 않고 일을 했을 것이고, 착했기 때문에 누군가 자기 험담을 해도 속으로만 삭이며 화가 난 감정을 억눌렀을 것이다. 또한 착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 같은 것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가 오랜 시간 지속되는 가운데 어떤 이유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지면 세포 스스로 돌연변이로 변하거나, 아니면 바이러스 등 외부 요인에 의해서 암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 될 수 있으면 화학조미료나 농약 덜 친 음식을 찾아 가려먹는 인내가 필요하고, 아무리 술 권하는 사회일지라도 자신에게 연거푸 돌아오는 술잔을 사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운동을 위해 퇴근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배짱도 때론 필요한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행동은 착하다는 의미의 반대편에 있는 행동들이다. 남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법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굳이 착하다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      


그가 만약 폐암 초기 판정을 받았다고 한들 크게 달라질 건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폐는 암이 생겼다고 해서 잘라내기도 어렵거니와,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상당 부분 암이 진행된 경우가 적지 않다.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다. 힘들겠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누구든 이런 경우와 맞닥뜨릴 수 있기 때문에, 이 글이 비록 암 환자에 관한 경험담일지라도 건강한 사람들 역시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그와 함께 생활한 며칠 동안 나는 가장 걸음이 느린 그를 위해 산책길에서 맨 뒤에 서곤 했는데, 소나무 옆구리에 손을 대고 기대어 한참 동안 기침을 하던 그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내뱉은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왜 암에 걸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 삶이 그러하듯, 암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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