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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강한 킴진지 Nov 27. 2018

감성적 인간을 연성(鍊成)하다

김한샘 작가 개인전 《FORBIDDEN ALCHEMY》를 다녀와서

김한샘 작가의 개인전을 감상하며, '감성적 인간'에 대해 떠올렸다. 인공지능과 컴퓨터가 사람의 자리를 대체하는 미래에는 '감성적 인간'이 살아남지 않을까? 감각적으로 더 많이 느끼고, 종합적인 감동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주도권을 가진 시대가 올 것 같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일단 전시와 작품을 경험한 과정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한다.


전시를 보러 가다.


금지된 연금술이 자행되는 듯 비밀스런 전시 장소 <공간 형>으로 올라가는 계단.


정말 남들의 눈을 피해 금지된 연금술을 하는 곳인가? 언뜻 전시장을 찾기 어려웠다. 을지로 낡은 건물의 계단 입구에 있던 포스터가 유일한 힌트였다. 포스터를 따라 좁은 계단을 오르자 전자음이 들리는 흰색 철문이 있었다. 이런 작은 골방에서 전시를 한다니. 일반 사람들은 호기심에 와보기는 힘든 장소였다. 어떠려나. 나는 기대감을 품고 전시장의 문을 열었다.


《FORBIDDEN ALCHEMY》 전시장 전경
전시 제목과 동명의 게임. 레트로 게임같다.


이 비밀스러운 곳에 들어서니, 하얗게 칠해진 작은 공간이 들어왔다. 벽을 따라 다섯 개의 작품이 자리하고 있었다. 흰 벽과 대비되 하나하나 강렬한 형태와 색감이 눈에 띄었다. 문 옆 구석에 하나의 게임기가 놓였고, 띠-띠-띠띠-거리는 8bit의 BGM(레트로 게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던 익숙한 전자음)이 흘러나와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사실 다소 당황스러웠다. 신비로운 작품들에는 아무런 텍스트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지어 제목도 없었다. 보통 해설에 의지해서 전시를 이해하던 나는 잠시 길을 잃었다. 제대로 보고 있나 하는 의심과 이렇게 보는게 맞나 하는 걱정이 아른거렸다.


나는 되는대로 관람을 시작했다. 그저 온전히 스스로 전시를 느껴야 했다. 일단 조이패드를 들고 눈에 보이는 대로 게임의 start를 선택했다.



간략한 오프닝에서 연금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진리에 도달한 천사가 신의 노여움을 받아 영, 혼, 육체로 분리되었다느니. 영은 유니콘이 되어 미래로, 혼은 사슴이 되어 과거로, 육체는 숲이 되어 현재에 남았다느니. 결국 그들이 만나려고 하고 있다느니 하는 그런 스토리였다. 게임은 현재의 숲 속에서 미래에서 온 유니콘 사이보그(?)와 과거에서 온 사슴 마술사(?)가 대전 하는 방식이었다. 최초한의 요소로만 만들어진 게임같았다.



그리고 게임 속 시크릿룸에는 전시 작품의 제목을 알 수 있는 작은 메뉴가 있었다. 다섯 개의 각 문을 향해 천사를 움직이면 제목과 캔버스의 크기 등의 설명을 볼 수 있었다. 이 속에 숨겨져 있던 거구나. 관람도 게임처럼 느껴진다.


(좌)신에게 반역을 꾀하는 천사 (우) 영과 혼의 조우

게임을 힌트로 작품을 보기 시작했다. 금지된 연금술을 주제로 한 강한 색감의 작품들은 각자 이야기를 전하며 눈길을 끌었다. 허전한 듯 비어 있는 공간이라 각 작품이 더 강하게 발언하는 듯 했다. 각 작품들이 놓여있는 모습이 마치 게임 스토리의 역사를 담고 있는 명예의 전당처럼 느껴졌다. 그림은 신화처럼 보였고 색색의 프레임은 기념 뱃지처럼 보였다. '갖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좌) 영과 혼이 분리된 천사, (중간) 진리를 마주한 천사, (우) 숲으로 변하는 껍데기


감각적 프레임으로 느끼다.


감각적으로 장식된 프레임이 인상적이었다. 자기 주장을 하는 프레임이 내용에 영향을 끼치고 있달까. 프레임의 힘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심지어 ‘영과 혼의 조우’라는 작품에서는 그림을 반으로 쪼개 버릴 정도다.(직접가서 확인하길 추천한다.) 프레임(액자)의 변화가 작품의 가장 큰 특징으로 다가왔다. 작가는 수동적인 프레임(액자)을 능동적인 프레임(관점)으로 바꾸어 버렸다. 개인이 느끼는 느낌이나 감정을 프레임에 담아 표현했다. 우리는 그 느낌에 영향을 받으며 그림을 보게 된다. 이 감각적 프레임을 통해 단순히 회화만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아주 강렬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현대인들은 늘 신에게 도전하게 된다. 신의 자리에 있는 열매을 얻고자 한다.


전시작 중에서 '신에게 반역을 꾀하는 천사'가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이 그림에서도 프레임이 감상에 영향을 준다. 천사가 있는 아래 쪽은 아무 것도 없는 수풀이고, 신이 있는 위 쪽에는 붉고 탐스런 과실이 맺혀있다. 단순히 천사가 신에게 대항하는 (어쩌면 평범한) 내용을 보다 더 감각적으로 풍부하게 대비되어 느낄 수 있었다. 작품들을 보다보니, 무언가를 볼 때 자신만의 느낌으로 보는 감각적 관점(프레임)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뻔한 사건도 어떻게 감각을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이렇듯 감각적 프레임을 잘 다루며 색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앞으로 강한 힘을 가지지 않을까. 바로 감성적 인간들 말이다.



감성적 인간으로 나아가다.


요즘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하는 에세이가 흥하고, 사람들은 국내고 해외고 여행을 다닌다. 일하는 시간은 줄이고 여가 시간은 늘린다. 행복이 무엇인가 고민한다. 이제 우리는 무언가를 소유하기 보다는 점차 경험을 통해 즐거움을 느낀다. 새로운 물건이 아닌 새로운 경험을 찾고 있다. 감성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때문에 새로운 인류인 '감성적 인간'이 점차 힘을 가질 것이다. 감성적 인간들은 같은 경험을 해도 남들보다 더 감각적으로 느낀다. 감각들을 종합한 어떤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느낀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도 하고, 전혀 다른 감성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이들은 새로운 경험 창조하는 인류다.


진보된 인류, 감성적 인간이려나...


감성을 키우기 위해 전시장을 자주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예술이야말로 감성을 키우는 미적이면서 지적인 유희가 아닐까? 우리가 예술을 찾는 이유는, 우리가 감성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고도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도 하다. 그래서 이 전시는 유익(?)했다. 전시를 통해 한 사람의 감성적 인간으로 재연성된 기분이었기에. 작가는 전시 제목처럼 새로운 인간을 만드는 (금지된) 연금술을 자행하고 있다.


당신은 이 전시에서 어떤 '감성'을 느끼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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