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떻게 혼자 해요?”
사람은 본인이 되고 싶은 만큼 크기의 그릇이 있대요.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어떻게든 방법이 보이지만,
안 된다고 믿으면 그 자리에서 멈춘대요.
아… 해볼게요.
“혼자서 할 땐, 막대기 들고 해 보세요.”
케이블에서 원레그 데드리프트를 시키던 동쌤님.
혼자 서는 게 불안한 나에게 외발로 서서 배꼽 회전까지 하라고 시킨다.
나는 혼자서는 못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단순했다.
못하는 게 아니고,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그랬다.
새로운 운동을 배우는 것 같아도,
기본만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형태를 바꿔 다르게 할 수 있다.
운동에 ‘운’ 자도 모르고, 몸이 하염없이 무겁기만 했던 때의 나는
인생도 늘 모 아니면 도였다.
전력질주하다 안 되면 번아웃.
그걸 여러 번 반복했다.
명절도 그랬다.
교대근무하는 남편 스케줄로 명절에 단 한 번도 우리 엄마를 먼저 보러 간 적이 없었다.
당연한 건 없는데 늘 남편 스케줄이 먼저였고,
몇 시간을 걸려 내려가도 내려가서는 눈치 보며 일하느라
명절이 마음 편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은,
엄마랑 지지고 볶아도 싸우며 밥 한 끼 먹어봤으면
서운한 마음도 같이 욕 한 번 해보며 풀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켭켭이 쌓였던 서운함은
명절이 임박해서야 준비도 하기 전에 감정싸움으로 터져 나왔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던 사람들이, 그제야 같은 시간에 부딪히는 방식으로.
엄마가 사고로 다치신 후 알았다.
다른 병도 회복이 중요하지만,
뇌병변은 골든타임을 놓치면 회복이 더 어렵다는 걸.
엄마는 수십 년 전 아빠의 구타로 한쪽 귀 신경이 멈춰 있었고,
먹고살기 위해 했던 야간 식당 일로 어깨와 몸이 이미 많이 무너져 있었다.
정상인도 힘든데,
엄마는 이미 만신창이였다.
그 상태에서 골든타임까지 놓치고,
시간이 길어지니 엄마가 마음도 놓아버린 것 같았다.
열심히 운동을 한다고 해도
고관절에 힘이 빠졌고,
지금은 휠체어 없이는 거동이 어렵다.
그리고 나는,
엄마 인생을 두고 내 아이를 봐달라고 해서 같이 살았던 세월이 떠오른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었지만,
내가 엄마와 살지 않았더라면
엄마가 지금보다 조금은 편하게 살지 않았을까.
그 죄책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몸은 시댁에 있었지만
한시도 편하지 않았던 명절.
맏며느리라 시댁에 가는 게 아니라,
등치만 컸지 쓸쓸하게 혼자 하얀 밥에 밥 말아먹는 엄마에게 가서
같이 밥 말아먹어도 되는 거였다.
엄마가 아무 말 없어도,
지지고 볶아도,
엄마 보러 가도 되는 거였다.
전력질주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후회 없이,
본질을 해결해 보며 살아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