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대화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왜 내가 그렇게까지 버텼는지, 오늘은 그 이야기를 적어본다.
그런데 이 결심은 어제 하루에만 생긴 게 아니었다.
우리 집은 열심히 달리긴 했지만, 아이 출산 이후부터 서로 다른 시간을 살게 되었다. 남편은 가장 역할을 다하기 위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하지만, 그 ‘최선’은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편해지지 않았다.
남편의 손길이 간절하게 필요했던 시기에, 나는 혼자 버텨야 했다. 빈자리보다 함께 계획을 세우고 조율할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나은 시절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자꾸 생각하게 된다.
남편은 가장 역할을 최선을 다하기 위해 달렸고, 나는 엄마와도 함께 살아야 했기에 엄마의 생계를 책임지며 열심히 일했다. 힘에 부치면 쉬어가도 되는데, 나는 늘 오늘이 최선인 것처럼 달렸다. 내가 아니면 엄마와 우리 집의 삶이 무너질 것 같았고, 내 아이를 봐주시는 엄마를 책임져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달리기만 열심이었던 나는, 결국 남는 게 없다는 걸 한참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엄마를 지킨 것도 아니고, 나를 지킨 것도 아니었다. 다시 돌이킬 수도 없었다. 이미 엉망진창인 것을 개선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만신창이가 된 뒤에야, 엄마가 사고로 뇌경색에 치매까지 얻고 나서야, 울면서 실감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코로나로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일밖에 모르던 내가 아이 때문에 일을 쉬게 되었고, 그 와중에 엄마는 사고로 아팠다. 장녀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생각에 더 무너졌다.
아이 학교 가는 날이 고정되지 않아 일을 안정적으로 할 수 없던 때, 보험설계사 권유로 교육을 받았다. 시간이 자유롭다는 말에 ‘할 수 있겠다’ 싶어 자격증도 취득했고, 고객도 만나러 다녔다. 하루에 전화 몇백 통을 하고, 운전도 못하던 내가 뚜벅이로 하루 3만 보 가까이 걸어다니며 이번 달은 어떻게든 성사시키려고 매 순간 진심으로 달렸다.
그런데 달려보니 알게 됐다. 보험도 오랜 공부와 피나는 노력이 쌓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한 달 한 달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나는 결국 이 일을 지속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면접을 보고 회사에 들어갔다. 경력단절 여성이 경력을 살리지 못한 채 직업을 바꾸면 몸도 마음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매 순간 진심이었지만, 회사에서도 편치 못했고 집에 와서도 편하지 못했다. 서로 다른 시간에 사는 남편과, ‘다른 시간에 사는 법’을 배우며 자라는 딸을 보면서 하나씩 개선해보려 갖은 방법을 다 해봤지만 마음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잘 살아보겠다고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곳으로 출퇴근도 했지만, 쌓인 건 돈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었다.
여기 이사 와서도 해결되지 못했던 것들. 처음엔 수술하고 병원 다니느라 못 봤다. 이후에는 ‘나부터 살자’며 운동하고 공부하며 버텼지만, 결국 내가 운동을 삶의 일부로만 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도피처가 되어버린 순간들이 있었다.
현실을 인정하는 건 씁쓸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조금 다른 모습으로 시작해보려 한다. 전처럼 다 짊어지려 하지 않고, 역할과 책임을 분리하면서.
이제는 다 짊어지지 않기 위한, 내 방식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