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 종일 결론 없는 에너지 소비가 심했다. 무슨 정신으로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뇌가 일하는 날은 반작용하듯, 그냥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 같다.
어제 일을 정리하고 출근하면서, 오늘은 도련님과 먼저 시댁에 내려가시는 어머니께 전화드렸다. 전후 사정을 말씀드리는데 뭐가 그리 서러웠던 걸까.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아침부터 길에 서서 펑펑 울었다.
한바탕 울고 나니 속이 조금 풀린 듯 출근했다. 말없이 묵묵히 짊어지고 있었던 짐들이 버거웠나 보다. 진정으로 내려놓고 싶었던 건가 보다.
일하는 내내 “그만두고 도망가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별거 아니게 들리던 말들도 자꾸 곡(곡해)으로 들렸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니 운동 갈까, 공부할까 싶었는데… 이 정신에 무슨 운동이고 공부냐 싶었다. 어제 마무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방암 환자로 15년.
도망도 가봤다. 회피하는 남편으로 시작했다.
포기도 여러 번 해봤다.
도망가면 그때뿐이다.
포기하면 그때뿐이다.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 상황만 바뀔 뿐, 해결하지 못한 일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타인이 변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고 이겨내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도 다른 방향으로 바뀐다.
나는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생각했고,
도망가도 끝이 안 난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또 한 번 다른 방법으로 남편과 이야기하기로 했다.
운서역에서 만나 김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스타벅스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눈앞의 숫자가 전부가 아니다.
전체를 보고 구조를 조율하면,
지금 상황이 전부가 아니라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내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던 남편.
처음에는 내가 정리한 내용을 볼 생각도 없던 사람이
마음이 동했는지 결국 본다.
순간의 편함이 아니라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삶의 질이 올라갈 수 있다는 걸
남편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몇 가지 이야기를 듣고,
해결할 수 있게 방법을 찾고,
우리는 십여 년 동안 시작은 했었지만 포기했던걸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집(은행 집?)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내가 나에게 칭찬해주는 건,
머리 회전이 된다는 것.
내가 다 떠안지 않기로 한것
나무만 보지 않고 숲 전체를 보기 시작했다는 것.
피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방법을 찾아 하기 시작했다는 것.
아파서 못했던 것들.
여기 이사 왔던 본래 이유.
그걸 다시 찾아, 조금더 탄탄해진 모습으로 다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