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웬일로 병원에 데려다준단다.
오늘 주사 맞으러 가기 전에 코감기가 너무 심해서
이비인후과도 같이 들르려 했는데,
자다 못 갈 뻔했다.
그런데 남편이 차로 데려다준다길래
괜히 마음이 한 번 들떴다.
이비인후과에서 약을 처방받고,
주사 맞으러 가는 길도 혼자 가지 않으니 좋았다.
‘남의 편’이라고 농담하지만,
그래도 내 편이 옆에 있어주는 건 확실히 다르다.
폐경이 아니라,
폐경을 유도하는 루피아 데포 주사.
배에 살이 더 많았을 때보다
지금이 오히려 더 아프다.
남편은 “뱃살 좀 찌워”라고 했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아 웃음이 났다.
점심은 남편도 좋아할 만한 밥집에서
뜨끈하게 먹었다.
빵집에 들를까 하다가
커피에 디저트까지 하면 돈이 얼마냐 싶어 멈췄다.
대신 내가 예전에 “50 되면 남편한테 사준다”고 했던
BMW를 떠올렸다.
마침 센터가 집에서 멀지 않아 구경을 갔다.
나는 차에 큰 관심이 없는데도,
줄줄이 늘어선 차 앞에서 설명하는 남편이 괜히 귀엽더라.
복부인처럼 탑승해서 인증샷도 찍고,
부릉부릉 오토바이도 타봤다.
‘남의 편’이랑 같이 해보니 은근 재미있었다.
짬이 나 스벅에 가서 공부하려 했더니
남편도 같이 가겠단다.
“시작이 어디냐.”
그 말이 이상하게 멋지게 들렸다.
저녁은 60계냐 보드람이냐 하다가 결국 보드람.
남편 회사 동생이 합류해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수다꽃도 피웠다.
남편과 나는 많이 다른 것 같아도,
많이 닮아 있었다.
장녀와 장남으로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러도
묵묵히 해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온 사람들.
사는 게 힘들어 이해받고 싶어도
담아낼 그릇의 여백이 부족했고,
그 세월이 켜켜이 쌓여
말문을 닫고 살게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암 환자로 살았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15년의 시간.
죽을 만큼 아파보니 알겠더라.
어깨를 누르는 책임감도,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의 상처도,
그 그릇을 깰 수 있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버리기로 선택하는 순간’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