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배우다, 인생을 배우다
왜 지난번에 고기 들고 찾아오려 했는데 집을 몰라 못 갔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기량님이 나한테 고기 쿠폰 보냈었잖아요.
쿠폰 말고 나중에 밥 먹자고 괜찮다 해서 돌려보냈어요.
내가 그걸 받으면,
기량님 아팠을 때 생각날 수도 있고,
내가 못 챙겨주면 서운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내가 기량님 아팠을 때
그렇게 못할 수도 있잖아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 ‘거래’가 되면
그 관계는 오래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동쌤 말을 듣다가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당신 좀 괜찮아진 것 같으니까
나 친구 아버님 장례식 다녀올게요.”
벌써 5년쯤 됐나.
코로나 안 걸리겠다고 백신 3차까지 맞았는데
아이가 먼저 걸리고 결국 나도 옮았어요.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
침 삼키기도 힘들고
물 마시는 것도 고통이었어요.
회사도 못 가고 강제로 쉬는데
먹는 것도 시원치 않았어요.
남편이 챙겨준다 했지만
마트 죽이 전부였고,
입맛도 없는데 전자렌지에 데워 먹으며
지금 생각하면 그 성질을 매일 어떻게 냈나 싶어요.
아이 는 며칠 지나 괜찮아졌는데
나는 좀처럼 회복이 안 되더라고요.
그때 생각났어요.
남편이 코로나로 격리됐을 때,
나는 출근하면서도
방 앞에 삼시세끼 차려놓고,
격리 끝나고도 회복해야 한다며
회복주사 맞으라 하고
영양제까지 챙겨줬던 거.
해준 만큼 받길 바랐던 걸까.
그게 그렇게 서운했나 봐요.
코로나는 격리보다 회복이 중요한데,
몸도 힘든 사람 두고 장례식 간다는 말에
온갖 짜증을 다 냈었어요.
격리 끝나고 출근했는데
때마침 생일이었어요.
뭔가 축하받고 싶었나 봐요.
조용한 사무실.
남편은 근무,
아이는 친구들이랑 영화 보러 간다 하고.
별거 아닌데
방에서 혼자 실컷 울었어요.
엄마가 아프기 전엔
생일이면 미역국이라도 해주셨는데,
이젠 내가 나를 챙겨야 하는 상황.
그날은 내가 아프니까
더 서러웠던 것 같아요.
몇백 명 카톡 챙기며 살던 나.
뭔가 해야 하는 줄 알았던 나.
그런데 내 생일엔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고 있었어요.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내 상태도 모르면서
상대 기쁘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믿고 살았던 거죠.
가족이라도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이 아니면
부담이 되고 눈치 보게 되는데,
지인 관계라고 다를까 싶어요.
이제는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 전에
나부터 돌아보려고요.
바라지 말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나부터 단단해지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