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가 끝난 뒤, 시작된 진짜싸움

운동을 배우다, 인생을 배우다

by 역전의기량

2024년 1월,
길고도 고된 항암치료가 끝났다.

“이제 끝났으니,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겠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달랐다.

내가 투여받았던 항암제는 도시탁셀이었다.
허리가 끊어질 듯한 근육통,
혀가 굳어 맛조차 느낄 수 없는 부작용이 이어졌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먹었던 음식들은 전신 부종으로 이어졌고,
몸은 임신 말기처럼 무겁게 부어 올랐다.

유방 재건 수술 후
복부 절개 부위를 감싸는 복대를 착용한 채
숨 쉬는 것조차 불편했다.

치료가 끝났다는 안도감은 잠시,
내 몸은 이미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통증이었다.
항암 치료 중 겪었던 고통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었다.

치료 후 복용하게 된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 치료제 페마라의 부작용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다.

팔다리는 쑤셨고
손가락은 펴진 나무판처럼 굳어 있었다.
손을 굽히기 위해
늘 핫팩을 들고 다녀야 했다.

갱년기 증상도 무서웠다.
식은땀에 젖어 두 시간마다 깼고,
하루에도 수차례 오르내리는 열감에
감정기복도 심해졌다.

그러나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다리와 손의 관절 통증이었다.

내 몸이
90살 노인의 몸이 된 것 같았다.

어느 날, 통증에 지쳐
울며 남편에게 말했다.

“나 다시 암 걸리면… 그냥 버려줘.”

그만큼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무너질 순 없었다.
울고 있을 때마다 떠오른 얼굴들이 있었다.
늘 내 곁에 있어준 남편과 아이, 그리고 동생.

세 번의 유방암 수술,
생사의 경계에서 버텨낸 항암치료.

나는 살아야 했다.

방법을 찾고 싶었다.
암 환우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증상을 겪은 사람들의 글을 읽었고,
그중 침 치료 후기가 눈에 들어왔다.

아파서 울며 잠 못 잔 다음 날,
요양 중 다녔던 한방병원을 다시 찾았다.
남편 손을 꼭 붙잡고 침을 맞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여기저기 시도해봐도 큰 변화가 없자
마지막으로 떠오른 건 운동이었다.

몸이 이렇게 아픈데 운동이라니.
말도 안 되는 선택 같았지만,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운서역 PT, ‘토크스퀘어’였다.

2024년 2월,
나는 항암 치료 이후 시작된 갱년기 증상과 싸우며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한 걸음 떼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트레이너의 손을 빌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그리고 한 주.

통증이 당장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의지’가
조용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던 내가,
느리기만 하던 내가
하나둘씩 안 되던 동작을 해내며
깨달았다.

나도 변화할 수 있구나.

지금도 통증은 있다.
갱년기 증상도 여전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나는 다시 움직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조금씩 나를 되찾고 있다는 것.

나는 다시 나를 살리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작은 발걸음 하나가
내 인생을 다시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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