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야 할 것은 병이 아니라 패턴이었다

by 역전의기량

23년 7월, 아산병원 유방외과 교수님이 말했다.

“유방암 수술 후 방사선치료는 보통 세트로 가는데요.

유방 전체를 치료하는 방사선치료는, 이미 한 번 받은 부위에는 다시 적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부분절제가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수술 부위만 방사선을 하는 방식은 재발 위험을 무시하기 어렵고,

아직 젊은 나이니까… 또 재발하지 말라는 법도 없어요.

이번에는 전체절제를 하는 게 더 안전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몸보다 내 마음이 먼저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지금

세 번째 유방암 진단으로

오른쪽 유방 전체절제 수술을 앞두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묻힐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더라.

해결되지 않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모습만 바꿔서,

다시 나타난다.


“무엇을 놓치고 있었기에 다시 왔을까.”

그 질문이 요즘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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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내가 자주 보던 드라마가 떠올랐다.


오래전 한 사건이 있었다.

힘 있는 사람들의 압력으로 진실은 묻혔고,

누군가는 죄인이 되었고,

누군가는 침묵했고,

누군가는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 사건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7년이 지나

그 이야기가 영화와 소설로 다시 세상에 나오면서

묻힌 진실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끝난 줄 알았던 일은 끝나지 않는다.”

그 드라마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인생도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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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두 번째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그랬다.

‘전체절제’라는 말에

진료실 앞에서 펑펑 울었다.


전절제는 비용도 부담이었고

‘가슴을 잘라낸다’는 사실이

하루도 마음 편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검사 결과를 다시 듣고

수술 방법이 전절제에서 부분절제로 바뀌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천만다행이다.’

‘이번이 마지막일 거야.’


그리고 정말 마지막이라고 믿었다.


수술 후에는

“나를 소중히 여기겠다”며

체중 관리도 하고 운동도 했다.

건강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잠시였다.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다시 ‘나’보다 ‘일상’을 먼저 살았다.

본질이 바뀌지 않았으니,

결과도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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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수술 이후,

다니던 회사가 경영 악화로 오래 못 갔고

나는 쉬는 법을 몰라

생계 걱정에 또 일을 찾았다.


그러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서

일을 멈추게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력단절이 되기까지

내 인생에 ‘일’ 말고 다른 걸 세워본 적이 없었다.


거기다 2019년,

코로나가 왔고

아이와 함께 집에 갇힌 시간은

상실감과 우울감으로 이어졌다.


이후에도 나는 뭔가를 했다.

푸드 인플루언서,

브런치 작가,

전자책 집필…


겉으로 보기엔 계속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를 위한 목표’가 아니라

‘나를 잊기 위한 분주함’이었던 것 같아서.


나는 칭찬 대신 비난을,

휴식 대신 채찍을,

회복 대신 버팀을 선택하며 살았다.


그 사이 엄마는 사고로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장녀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은

내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그 무거움이

시간이 지나면서 차곡차곡 쌓였고,

내 몸속의 혹들이

좋지 않은 혹으로 변해간 건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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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상상한다.


“6년 전에,

전절제를 피하지 않고 수술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그 이후,

정말 ‘나’를 먼저 챙겼더라면 어땠을까?”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오늘은 바꿀 수 있다.


눈앞의 상황만 모면하려고

전체를 못 보고 지나치면

당장은 편해도

그 문제는 다른 이름으로 돌아와

다시 시련을 준다.


나는 이제 안다.


더 이상 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감정에 흔들리더라도,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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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오른쪽 유방 전체절제 수술로

내 몸의 혹들을 걷어낼 것이다.


그리고 그건

‘잘라내는 수술’만이 아니라

내가 나를 미뤄두던 패턴을

함께 끝내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도록.

이번엔

끝까지 직면하고,

끝까지 회복하고,

끝까지 나를 챙기기로.


나, 역전의 기량은

이번 수술을 지나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


이번에는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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