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멈췄던 날 이후

운동을 배우다, 인생을 배우다

by 역전의기량

동석쌤 : 인바디 재볼까요?
기량 : 네.
동석쌤 : 핸드폰 번호 누르고요. 팔은 넓게, 인바디 버튼 잡아보세요.

때는 2024.05.30.
세 번째 유방암 수술과 항암치료 후, 부종과 항호르몬제 부작용(관절통)을 어떻게든 개선해보겠다고 운동을 시작한 뒤, 네 번째 인바디를 찍는 날이었다.
인바디를 재는데 체중이 표기되는 순간, 내 얼굴이 점점 썩어간다.

동석쌤 : 와— 회원님 살 잘 빼셨는데요.
기량 : 그래요?
동석쌤 : 그럼요. 몸무게 빼는 건 쉬운데, 체지방 빼는 건 얼마나 어려운데요.
그런데도 체지방이 약 1.7kg 빠졌네요. 퍼센트로 보면 거의 3%예요.
그뿐인가요. 그 빼기 어려운 내장지방도 지난번 대비 2p 내려갔어요.
몸무게는 0.6kg 늘었지만 인바디 점수도 5점 올랐고요. 전체적으로 엄청 잘했어요.
식사도 잘하고 계시고, 운동 강도도 이제 조금씩 늘릴 거니까, 이대로 꾸준히 해나가면서 12kg 정도만 더 빼면 될 것 같아요.

기량 : 또 뭐 시키시게요… ㅡ ㅡ
동석쌤 : ㅎㅎ 저희 5k 마라톤 다시 뛰어보려면요. 마무리 운동 때 뛰는 달리기를 늘려야 될 것 같은데요!
오늘부터 3k씩 뛰어봐요. 대신 처음부터 속도 높이지 말고요.
지난번 마라톤 뛰던 것처럼 처음 0.5k~1k는 걷는 느낌으로 심호흡도 하고,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하며 뛰다가 점차 속도를 올리는 거예요.
실질적으로 뛰는 건 2k 정도 되는 셈이죠.

기량 : 네…
동석쌤 : 그럼 저희 운동하러 가볼까요?

분명 잘했는데, 네 번째 인바디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바디 때마다 미션이 하나씩 추가된다. 5월에는 식단에서 야채 비중이 늘었고, 유산소 방식도 싸이클에서 러닝으로 바뀌었다.

세 번째 인바디에서 변화가 보이니까, ‘이렇게 하면 언제쯤 예전으로 돌아가겠구나’ 싶었다.
방법도 바꾸어 달렸으니, 이번에는 40평생 친근하게 함께한 몸무게 ‘6’으로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3k 달리기를 하고 동쌤 카톡에 인증하며 집에 가는데 마음이 답답했다.

세 번째 유방암 수술로 인해 생긴 변화는 이런 것들이다.

1) 감시림프절 5개 절제
2) 복부절개 유방복원술로 울룩불룩해진 배 (배에 물찰까 복대 착용)
3) 3개월 항암치료로 생긴 부종
4) 항호르몬제로 인한 관절통, 매일 붓기
5) 안면홍조, 식은땀 같은 호르몬 변화(갱년기)

28살 첫 번째 수술, 36살 두 번째 수술 때 했던 체중감량과 식단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그때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히 했으니 속상함이 더 컸던 것 같다.

운동 시작하고 치료 때문에 샀던 큰 사이즈 옷들과 이별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직은 저 멀리, 이루기 어려운 큰 꿈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량 : 이거 입어봐도 될까요?
옷집 점원 : 네. 여기 탈의실에서 입어보시면 되세요.
기량 : (지퍼가 올라갈 것 같았는데 올라가다 멈추니 당황하며) 저… 혹시 이 옷보다 사이즈 큰 건 없나요?
옷집 점원 : 이 옷이 요새 여성분들한테 인기가 많은데요. 옷이 작게 나와서 입어보신 옷보다 큰 사이즈는 없어요.
기량 : 네… 다음에 올게요.

때는 정확히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산병원 유방암 검진을 받고 볼일이 있어 강변역을 지나던 날이었다.
매대에 예쁜 옷이 있어서 입어보기를 시도했다.

그때도 수술 후 식단과 운동을 나름 하고 있었으니
‘이 정도 옷은 예쁘게 입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입지 못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예쁜 옷을 사는 건 나에게 이루어질 수 없는 한 조각 꿈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TV에서 ‘나래님’이 나온다.

옷집 점원 : 왜 이렇게 날씬해지셨어요!
나래님 : ㅎㅎ 조금 뺐습니다.
매번 옷을 온라인으로만 사다가, 살 빼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사보고 싶어서 왔어요.
그나저나 이 작은 스몰 사이즈가 맞을까…?

반신반의하며 추천해준 옷을 입어본 나래님.
걱정과 달리 완벽하게 사는 옷태.
운동과 식단으로 4개월간 피나는 노력을 하며 바디프로필을 찍고도 운동에 재미 붙여 꾸준히 하시는 나래님은
허리 32인치에서 25인치로 변신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걸 보며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느리더라도, 차곡차곡 쌓아가면
나도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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