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월
운전면허 두 번 떨어진 날, 나는 ‘프로’가 되고 싶었다
기량엄마 : 사모님, 시간 괜찮으세요?
사모님 : 기량씨. 네, 괜찮아요. 무슨 일 있어요?
기량엄마 : 아니에요… 울고 싶은데 맘 놓고 울 데가 없어서요.
사모님 : 그랬구나. 무슨 일이에요.
기량엄마 : 제가 운전면허 시험을 또 떨어졌어요.
사모님 : 속상했구나, 기량씨.
기량엄마 : 장내기능 시험 준비만 18시간을 했는데 이번엔 붙을 줄 알았어요.
사모님 : 고생했네. 이번 주에 여원이도 다쳐서 놀랐을 텐데 시험까지… 무슨 정신이 있었겠어요.
그래도 최선을 다한 기량씨가 대단한 거지. 기량씨처럼 아무나 못 해요.
엄마 병원 챙기지, 아이 챙기지, 운전면허 준비도 하지…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 많지 않아요.
기량엄마 : 흑흑… 저는 맨날 뭐 하나를 해도 오래 걸려요.
남들은 어렵지 않게 가는 길도 저는 늘 진을 다 빼고 가요.
사모님 : 아니야. 뭐든 쉽지 않지요.
앞에서 진을 뺀 만큼, 뒤에 더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기량엄마 : 감사합니다…
때는 2023년 5월 20일, 금요일 오후.
강서면허시험장 근처 벤치에 앉아 나는 목 놓아 울었다.
장내기능시험을 준비하려고
운전학원에서 두 시간씩 네 번 교육을 받았고,
그것도 모자라 실내연습장에 가서 여덟 시간 연습했다.
그런데 결과는 ‘강제 실격’.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물이 더 났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교회 사모님께 전화로 달랬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둬도 되잖아.
그만큼 애썼으면 됐지. 인생 공부했다고 생각하고 털어버려.”
그 말이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아니야.
이번에 이걸 못 넘으면 나는 평생 여기까지만 살 것 같아.
학원에서 8시간 교육을 받아도
직각주차 하나 제대로 외우지 못했잖아.
그래도 실내연습장에서 연습하면서 외웠어.
그 주엔 아이도 다쳤고,
엄마 병원도 가야 했고,
이사 준비로 정신이 없었고,
이사가기 전엔 면허를 따야 한다는 압박감까지 있었다.
힘들면 쉬어가면 되는데,
나는 쉬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더 아팠던 것 같다.
‘빨리 가는 사람도 있고, 거북이처럼 늦게 가는 사람도 있는 거야.
거북이라고 채찍만 주지 말고, 가끔 당근도 주면서 조금만 더 해보면 어떨까…’
그날 내 안에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끝까지 해내고 싶은 마음이 같이 있었다.
나는 원래 운전이 ‘꿈’이었던 사람도 아니다.
사실, 소원 아닌 소원이 하나 있었다.
“기사도 두고, 자동차 있는 집에 시집가는 거.”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고도 슬픈 소원이다.)
그런데 현실은,
차도 없고 집도 없는 집에 시집와서
대중교통으로만 16년 넘게 사회생활을 했다.
운전은 내 인생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왜 갑자기 운전을 하려 했을까.
어쩌면 나는
‘차가 생기면 편해질 거야’가 아니라,
‘이걸 못하면 나는 또, 내 한계를 내 손으로 정해버릴 거야’
그게 더 무서웠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늘 정답 하나만 믿는 사람이었다.
A는 더하기, B는, C.
C가 아니면 실패.
그럴 수 있는 다른 답(D, E)은 처음부터 생각을 안 했다.
한 번만 더 생각하면 다르게 보일 수 있는데
나는 늘 상자 안에서만 답을 찾았다.
그러니 답답할 수밖에.
그 무렵,
여원이 때문에 ‘마음튼튼 놀이터’를 시작했었다.
아이 마음이 궁금해서 기질검사(TCI)를 했는데
결과지를 보면서 내가 먼저 멍해졌다.
기량엄마 : 저는… 여원이 기질검사를 받으려고 했는데요.
결과지를 보니 여원이가 아니라 완전 전데요.
튼튼쌤 : 여원이가 엄마 기질을 닮았네요.
그 순간,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위험회피가 높으면
불확실한 상황, 낯선 상황에 대한 긴장이 높고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별로 위험하지 않아도 걱정하고 긴장할 수 있어요.
맞다.
나는 별일 아닌데도 늘 깜짝깜짝 놀라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 다녀오면
엄마 장사를 도우러 나갔고
엄마가 떠난 뒤엔
어린 나이에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다.
엄마 없는 집에서
세 자매가 싸우는 날이면 이어지던 아빠의 구타.
그 낯선 상황들이 내 몸에 쌓였나 보다.
뒷목이 늘 경직된 채로.
튼튼쌤 : “걱정하지 마”보다는
불안과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세요.
어릴 때부터 여러 방면으로 배출구를 만들어두는 게 좋아요.
가장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이 있나요?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멈췄다.
나는 ‘비우는 법’을 몰랐다.
쓰레기통도 꽉 차면 비워야 하는데
나는 미래에 오지도 않은 걱정으로 머리를 꽉 채우기만 했다.
그래서 매순간 숨이 찼던 거다.
그때 문득 이런 문장이 머리에 박혔다.
프로는 문제를 단순화한다.
아마추어는 문제를 떠안고만 산다.
나는 늘 문제를 ‘내가 떠안아야 할 짐’으로 만들었다.
그걸 ‘문제’로만 두지 못하고,
내 자존심, 내 가치, 내 능력으로 엮어버렸다.
그래서 운전면허 한 번 떨어진 것도
그냥 ‘시험’이 아니라
‘나는 또 못했어’로 커져버렸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세상일이 계획대로 안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나를 자책하지 말자.
눈에 보이는 실패와 시행착오가 아플 수는 있어도,
그건 돈 주고도 못 사는 경험(자산)이 되어
더 나은 나를 만들어줄 것이다.
오늘은 프로가 되는 연습을 한다.
문제를 단순화하고,
한 걸음씩만 간다.
거북이여도 괜찮다.
그냥, 멈추지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