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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전의기량 Dec 30. 2020

깨끗해져 가는 엄마의 머리





지난 7월 엄마한테 찾아온 병 '뇌경색'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을 했고 건강에 좋은 음식만 먹는 엄마였기에 재활병원에서  열심히 재활하면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대학병원에서 한 달 정도 입원하면 입원하면서 치료할 게 없다는 이유로  재활병원 전원을  하고는 하는데

환자 상태에 따라  개인 간병을 붙일지 아니면 통합 간병에서 재활을 할지  결정하게 된다. 

대학병원 있는 내내 재활도 잘 받고    의사나 간호사 선생님의  묻는 말에 대답을 잘하는 엄마

겉으로 봐서는,  뇌경색 환자들 중에는 너무나 건강한 사람이었다.


재활병원으로 전원 가기 전까지 개인간병을 할지 말지에 대해 고민했었는데 코로나로 병원에서 직접 간병해보지 못한 자식들은  전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재활병원으로 옮겨져 통합 간병 병실에 입원하게 된 엄마는  하루에 한 번씩 나에게 전화해   속상한 마음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  엄마가 입원했는데 한 번도 와보지 않으면서 추운 바닥에서  얇은 옷 입고 어떻게 자라고 하는 거냐!!!

나 죽으면 얼마나 후회하려고 그러니?'"

엄마가 재활병원으로 전원 간 건 8월 말이었는데 춥다니 말이 안 된다 생각했다. 

그러나, 더 안타까웠던 건 코로나로 인해  병원에 갈 수도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자기 혼자 다 해야 직성이 풀리던 엄마는  병원에 있는 시간들이 적응이 되지 않았고  빨리 집에 가서 생활하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는 밤에 한번 잠을 자기 시작하면 새벽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가는데  통합 간병 병실에 입원하게 되면  화장실 갈 때  벨을 눌러서 요양보호사님과 함께  가게 되는 시스템이다.


분명, 화장실 갈 때는 벨을 누르라했었는데 엄마는 빨리 걸어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한 번씩 독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다.  조심히 잘 다녀오면 좋을렸만 독단적인 행동은 사고를 불렀고 뇌 병변 있으신 분들이 절대 생기면 안 되는 낙상사고가  재활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 반 만에 세 번이나 일어나게 되었다.


더 이상,  엄마를 통합 간병에서 모실 수 없다는 생각에 개인간병을 하기로 동생과 의논해서 결정했고 개인간병이 구해지는 동안  내가 엄마를  간병하기 위해 병원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개인간병으로 옮기며 내가 병원에 있으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엄마의 상태를 꼼꼼히 지켜보니 엄마는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고집이 세고 배고픈 것을 참지 못하고 혼자 일어서려고 움직이는 모습까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지만 중요한 것 하나가 내 마음속을 찢어지게 아프게 했다. 


우리 엄마의 좌우명이 하나 있었는데  정신력 하나면 세상 사는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누가 물어보면 10초도 안돼서  대답해 주던 엄마의 머릿속이 깨끗해져가고 있었다.  가족 생일이며 전화번호는 물론  누가 멀 좋아하는지 다 기억하던 엄마는 아픔과 동시에 모든 것을 지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몸이 아프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치료를 받으면 된다.  그러나 마음이 아프면  한번 놓아버린 정신은  다시 돌려보려 해도 돌이킬 수 없기에 아니길 바랬다.   평생을 고생만 하고  호강 한번 못하고 살던 엄마에게 치매만큼은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배고픔을 못 참는 엄마였지만 밥을 먹고는 다른 건 원래 먹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밥을 먹고도 배고프다면서 밥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밥 달라 얘기하는 엄마

드라마에서 나오는 치매환자 이야기가 우리 엄마에게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치매도  알츠하이머 치매, 혈관성 치매, 전투 측두엽 치매, 알콜성 치매 등 치매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치매는 점자 인지능력을 잃어가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본성만 가지게 되는데  모든 것을 머릿속에 기억하며 살다 보니 스트레스로 혈관이 막혀 혈관성 치매가 찾아온 것이다.


엄마는 머릿속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것 말고는 가장 최근의 기억도 가장 오래된 기억도 없다.  점차적으로   시간에 대한 압박과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평생을 고생하던 사람이  멍 때리고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과 함께   말수가 적어지고  행동도 차츰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지워져 가는 기억은 뒤로 한채,  엄마는 자식들 잘 되길만을  바란다.  


한 번은 내가 개인 간병하러 갔는데 엄마가  나 괜찮다고 집에 보내 달라며 서러움에 울기 시작했다.  울면서도 나를 막내 동생이라고 알아보면서 시집 못 가고 있는 있는 딸이 안타까워  병원에 있는 다른 환자분들에게 나를 막내 동생이라 소개하면서 남자 친구 알아봐 달라고 얘기하고 다녔다.  자식일이라고 생각하면  없던 기운이 생기는  밝은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낫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다.  하지만 엄마의 머릿속은 깨끗해져 가면서  인지능력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매일 전화로  속상한 마음을 얘기하던 엄마. 언제부턴가 엄마의 전화가 뜸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한 나.  가슴속이 먹먹했다. 엄마는 전화기 버튼을 사용하는 것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실감이 나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살뜰히 챙김을 받아본 적이 없는 엄마라 하지만 몸이 편치 않은 이모에게 안부전화도 하고 했었다. 전화번호도 전화를 할 줄 아는 방법도 잃어버린 엄마가  이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내 마음을 저리게 했다. 


누군가 대신 전화해주어야 전화할 수 있는 엄마는  저녁때마다 꼭 전화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 딸이었다.

"할머니 얼른 나아서 나랑 같이 놀러 가요."  돼지라 애칭을 기억하며 말하는 엄마에게 살갑게 말해주는 딸과의 안부전화가 아마도 엄마에게는 아기 때부터 지금의 클 때까지 내 딸과 함께  가족이 다 모여 살며 살던 기억이 엄마한텐  즐거웠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후회가 사무친다.  아이 낳고 일을 그만두게 되면 경력이 단절될까 두려웠고  다른 곳에 맡길 수 없는 나는  엄마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사위랑 사는 공동체 삶이 쉽기만 할 수 있던가. 나는  엄마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같이 사는 내내 일하는데 바쁘단 이유로  살뜰히 챙겨주지 못했다.  엄마는 속상한 것을 그때그때 풀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는 성격이었는데 이것이 한 번씩 터지게 되면  서로에 관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엄마랑 싸우지 않았으면 아니 내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엄마랑 같이 살지 않았다면 이렇게 까지 아프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리 가고 싶다던 여행은  몇 번이었는지 손꼽아 보며 남편과 회한을 나누었다. 몸에 좋은 음식만 먹고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하루에 3시간 이상 운동은 필수요.  병원 가야 하는 날엔  빼먹지 않고 꼭 챙기지는 엄마였기에 그런 병이 찾아올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기에 정정할 줄만 알았던 엄마. 준비되지 않은 정신적 이별은 그렇게 우리 모두를 덮쳤다.   마음이 아파 병원생활이 편치 않았던 엄마는 동생네 집으로  퇴원해서 노인학교를 다니며 생활하고 있지만  늘 불안과 걱정에 휩싸인다. 






첫 번째 유방암 수술을 하고  아이는 생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감사하게  신의 축복으로 생긴 아이를 낳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지만 않았다.  조리원에서 조리 시작함과 동시에 생긴 유선염으로 아이를 낳을 때보다 가슴이 단단한 돌덩이처럼 아파서 몇 날 며칠을  눈물로 지새웠는지 모른다.  


 아파서  아이에게 젖도 짜주지 못해  우울했는데  내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엄마는  임신 후 부기 빠지는데 좋다며 호박과 함께 약을 지어가지고 조리원으로 왔었다.  온몸이 퉁퉁 붓고 몸과 마음이 지친 나에게  그 무엇보다 따뜻했던 한마디 " 너부터 나아야 아이도 볼 수 있으니 너 몸부터 챙겨."


살뜰히 누구에게 챙김을 받아보지 못했던 엄마에게 들었던 한마디라 더 마음이 따뜻해졌는지 모른다. 

깨끗해져 가는 엄마의 머리를 뒤로 하고 따뜻하게 불러주던 목소리가 떠오를 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따뜻한 온기가 차오른다. 부디  속도가  더디었으면 좋겠고,  더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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