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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전의기량 Dec 28. 2020

아이의 거울  "엄마"





"엄마가 열심히 사는 게 싫어?"

 

어느 날 내 딸에게 물었다.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가기 시작하고부터 일을 쉬기 시작했는데

일할 때 보다 더  바쁘게  나를 위해 움직이는 나를 보고 아이는 엄마가 바빠서 싫다고 얘기할 줄 알았다.

 

"아니, 더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어.!!"

 

일을 하면서는 볼 수 없었던 엄마의 모습,  상실감을 뒤로하고 자신을 위해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매끼 식사를 책임지며  요리를 했는데 요리를 할 때마다 아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도왔다. 요리도 같이 만들며 하루 24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엄마의 모습이 아이가 보기엔  좋아 보였던 것이다.

 

예상과는 다르게 얘기하는 아이의 한마디에 마음 한구석이 저리며 어릴 적 나를 기억나게 했다.

그랬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랑 같이 요리도 하고 놀러도 가고 싶었다.

엄마는 같이 요리를 하기보다  혼자 모든 것을 만들어 주려 했다.

내가 거들기라도 하면 시간이 두배가 걸렸고 치우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렸으니까.

 

 나는 다른 집에서 한 번쯤 해봤을 법 한 별거 아닌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더 슬픈 건,  다른 집처럼 징징대면 들어주었던 엄마에게 '나는 한 번도 엄마와 함께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라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린아이의 눈에도  내가 보고 있었던 엄마는 늘 녹록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기에  나의 소박한 바람까지 더해 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이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나고서야  아이의 입에서 들었던 생각지 못한 답으로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했던 것이다.

내 아이와 요리를 함께 하면서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따뜻해졌었는데  엄마와 함께 요리하는 것이 무엇이 건데  그리도 하고 싶었을까?

 

  


 

 

살면서 내 삶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쯤, 한 번씩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엄마가 가족을 희생하는 삶이 아니라 엄마답게 삶을 살았었다면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이의 거울은 엄마라 했다. 싫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엄마의 삶을 따라 하고 있는 나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랬다. 나는 그 흔한 놀이공원 한번 가본 적이 없었다. 그 흔한 영화관도 가본 적이 없었다. 내가 늘 아쉬웠던 것은 먹고 입는 거 외에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 줄 수 없는 부모님 아래에 살면서 나는 늘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나갈 수 없는 출입구에 서서 문 열어달라고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아빠가 다니던 회사를 관두기 시작하면서 시작한 엄마의 장사

아빠도 노점 장사를 시작했는데 엄마도 혼자 벌어서 딸 셋을 키울 수 없다며 장사를 시작하셨다.

그렇게 우리 부모님은 먹고사는 일로 한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셨다.

 

어린 나이부터 학교 다녀오면  엄마의 장사일을 밤늦게 까지 도와드리면서 자란 나에게 삶은 늘 무겁고 부담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였는지 내 인생은 어릴 때부터 순탄치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현실만 부정하며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할 뿐,  한 번도  내 인생의 설계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저 삶을 사는 매 순간이 고민처럼 느껴졌다.

 

아이를 낳은 다음부터는 더했다. 살뜰히 챙김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또 무엇을 하겠다고 떼써본 적이 없는 내가  아이를  살뜰하게 챙긴다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하는 것보다도 쉽지 않았다.  늘 진을 빼면서 애를 쓸 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진은 있는 대로 빼고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하기엔 언제나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다.

 

일을 쉬는 주말이면 음식을 만들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도 되는 것인데 무언가 하면서 진을 빼는 것보다 아이에게 물질적으로 보상하는 것이 편했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와 가보고 싶었던 것을 아이와 간다던가 아이가 갖고 싶은 것을 사준다던가 하는 종류의 것 말이다.  내가 받지 못한 따뜻한 마음의 교감을 아이에게 주며 서로 공감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엄마와 똑같은 삶을 살지 않으려면 그러면 안된다 하며 아이를 대하려는 마음과는 달리,  행동이 먼저 나가면서 곧 남편과 싸움으로 직행했다.

 

남편은 꼭 싸우고 나면  가슴에 파묻히는 말 한마디를 하곤 했는데 '변한다면서 무엇이 변했는지 모르겠다 장모님이랑 다를 게 없다'라는 남편의 말 한마디는 싸움의 불씨를 끄지 못하고 우리 부부를 오랜 시간 싸우게 했고 싸운 날은 나를 이렇게 키운 엄마를 원망하기 시작했다.안 한다 하면서 나는 엄마를 너무나 닮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에게 회계 관련 어려운 점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면서  내가 회계를 업으로 하고 있었던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유 중 하나가  신기하게도 숫자를 한번 들으면 잊어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의 주민번호는 물론이요. 반복 연산과  회사의 매출과 연관된 숫자는 들으면 잊어 먹지 않았다.  숫자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는 사람들은 내가 숫자를 잘 외우는 것을 보면 다들 신기하다 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어떻게 숫자를 외우는 것을 좋아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어려운 가정형편에서도  엄마가  나를 유일하게 보냈던 학원이 있었는데  '주산학원'이었다.

물론 주산하고 재능도 흥미도  없던 나는 대충 학원에서 하라고 하는 것만 하고 친구들하고 놀려 왔다 갔다를 반복하며 엄마가 원하는 자격증 취득은 하지 못했지만 학원을 다니면서 적어도 나에게 남는 것은 있었던 것이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웃음보다는  마음 한구석이 저리기 시작했다.

" 엄마가 나한테 그 학원을 빼먹지 않고 보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지난 7월, 엄마에게 오지 않았으면 하는 병이 찾아왔다.'뇌경색'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다면  지금쯤이면 완쾌되었을 엄마는  안타깝게도 혈관성 치매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만 보면 해주던 말이 있었다.

 

 
다시 일해.  열심히 살면 언젠가 보답이 있다.

 

 

우리 엄마는 여덞 남매의 부잣집 막내딸로 어디 남 부러울 곳이 없는  집에서 자랐다.

엄마의 꿈은 선생님이었는데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꿈 위해 대학교를 가고 싶었으나

외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 혼자 가정을 이끄셨기에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교는 꿈도 꾸지 못했다.

 

꿈도 포기해가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은 생각도 없던 사람이었는데,  외 할머니가 아파서 원하지 않은 결혼과 동시에 시작한 현실 생활

엄마는 아들 아들 하는 집에 시집와  아들은 세 번이나 유산하고 딸 셋을 낳았다.

 

아빠의 실직으로 딸을 낳고도 마음 편히 쉬어본 적 없이 딸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엄마였다.

 

아마도 엄마는  자기가 살아왔던 방식대로

내가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돈을 만지는 직업을 가지면 했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아프고 난 다음 들리는 엄마의 간절한 목소리

 

늘 불평불만만 하며 내가  엄마에게 부족하다 느꼈던 것은 사실은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도 받아 본 적이 없기에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서툴렀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에게 진을 빼며 대화를 시도하듯 엄마가 줄 수 있는 것이 이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엄마가 받았던 것보다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겨울에는 호떡장사로, 여름에는  포장마차로  한순간도 자신을 위해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고

쉬어본 적이 없는 엄마가 자신이 힘들게 살아왔던  엄마의 인생을 닮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더 많이 행복하게 살기 바라는 바람에서 나에게 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엄마에 대한 원망은 거두기로 했다.엄마의 바람처럼 할수 있는 일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진만 빼고 했던 옛날과는 다르게 세상을 밝게 바라보며 누리며 살면서 말이다.

조금은 서툴겠지만  내 아이게는  삶의 진정한 참 모습을 남겨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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